일요일일요일일요일

최성애

오늘을 건너뛰고 일요일이 온다

하루가 없어진 것도 모르는 채 온다

햇빛이 거실까지 들어와서
입을 크게 벌린다

소파가 고양이처럼
길게 누워 햇볕을 쬐고 있다

일주일 동안 자란
털을 그루밍한다

구두를 신지 않고
슬리퍼를 신는다

성당에 갈 때는
슬리퍼까지 벗는다

성당은 조용해서

발바닥까지
일주일의 잘못을 싹싹 핥는다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일요일일요일일요일..
하는데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눈을 감고 발을
가지런히 모은다

잠깐이면 된다

- P98

두부

고영민


저녁은 어디에서 오나
두부가 엉기듯

갓 만든 저녁은
살이 부드럽고 아직 따뜻하고

종일 불려놓은 시간을
맷돌에 곱게 갈아
끓여 베보자기에 걸러 짠
살며시 누름돌을 올려놓은

이 초저녁은
순두부처럼 후룩후룩 웃물과 함께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좋을 듯한데

저녁이 오는 것은
두부가 오는 것

오늘도 어스름 녘
딸랑딸랑 두부장수 종소리가 들리고
두부를 사러 가는 소년이 있고
두붓집 주인이 커다란 손으로
찬물에 담가둔 두부 한모를 건져
검은 봉지에 담아주면

저녁이 오는 것
두부가 오는 것

ㅡ2021겨울호<시로여는세상>pp.236-7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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