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미*
철옹성이 무너지네 단절의 벽이 무너지네 울음통이 출렁거리네
돌무덤 오워를 돌며 목울대를 세워 길 떠나는 검은 말을세우네
다문 입술 안으로 쟁여둔 더운 눈물이 제 안의 현을 두들길 때 문득 다가서는 너와 나와의 거리, 떠나간 이들이 손 내미는 한걸음의 거리
잠들지 않는 시름에 목젖은 붓고 명치 아래 통증은 깊어지네
마두금 두 줄 안에서 넘실거리는 강물
뿌리까지 붉게 물든 피뿌리꽃,
빗장을 열고 푸른 천상으로
낮고 깊은 내 안의 이야기를 토하네
꽃 피우고 꽃 진 자리
털어내고 길 나서네
• 흐미 khoomei : 몽골 투바족 전통 음악의 한 창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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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당기기
몸 안엔 누구나 자석이 있다네요
말 한마디 걸지 않아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사랑의 눈길로 당신을 지켜보면
왠지 절로 뒤돌아보게 된다네요
앞마당에 늦게 핀 배롱나무가
한여름 햇살 아래서 간지럽다고 몸을 비틀어요
배를 잡고 열일곱 살 계집애처럼 배실거려요
꽃분홍 살갗을 핥는 바람의 혀 때문에
배롱나무가 나를 끌어당기는 것일까요
내가 배롱나무를 잡아당기는 것일까요
내 발등으로 떨어진 이파리 하나
날 올려다보네요
안아달라고 보채는 아이처럼
밀당을 하자네요
끌어당겨도 내달리는 모순의 계절에 서서
배롱나무가 저리 손만 대도 웃네요
버틸 도리가 없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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