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을 끌어안다


가파른 산정으로 오를수록
너럭바위가 팔 뻗쳐 길을 막는다
제 안에 각을 부수고
잡아당긴다 끌어안는다
말 건넨 적 없고 표정도 없지만
긴 팔이 쑥 나온다
길 잃은 이도 불러들인다
호주머니에서 삐져나오는 카드 영수증
연락 끊긴 전화번호와 전하지 못한 쪽지
비집고 뛰쳐나갈 용기가 없어
귀갓길에 운전대를 잡고 내지르는 비명
다 털어버리라고 잡아당긴다
너럭바위가 각진 모서리를 끌어안는다
빗물과 짠 눈물바람으로 닳도록 두들겨
수직과 수평 그 틈새로 링거병을 꽂는다
진달래와 얼레지꽃, 붉은병꽃 수액을 넣는다
황사에 미세먼지에 앞길이 막막해도
북악산 도봉산 청계산 관악산 산마다
비집고 들어갈 뜨거운 혈을 만든다

각이 무너진다.
봄이 둥그렇게 길을 연다



- P20

바이칼, 둥근 자궁

잇속이 시렸어 만년설산 치마를 두른 삼신할매가 기다리고 있었나봐 조약돌이 쓸려갔다 되돌아오는 물결소리가잠든 우물문을 열었어 자궁 안에서 지켜내지 못한 별이 된아이가 날 불렀어 엄마 품을 파고들던 내 아이가 보였어

지구를 끌어안은 서낭당 나무에 속울음이 가지마다 홍이로 박혀있었어 바람도 오색으로 물들어 성물을 세우고잉태를 점치는 오색 깃발에 눈물을 매달았어

몇 날 며칠을 지치지 않고 달려온 내게서 어미냄새가 났을까 아기별이 머리 위에 어깨 위에 손바닥에 내려앉았어내 품에 안겨 꼼지락거렸어 바이칼호수는 내 어머니의 어머니에서부터 둥근 자궁이었던 거야 난 여전히 엄마였던거야 - P41

붉은 모래, 키잘쿰


깔보지 마라
모래는 불멸의 꽃
사막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명체

하찮은 것에서
가장 단단한 살의로 견뎌낸 詩

맨발로 우는 붉은 모래
귀가 아프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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