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번째 천산갑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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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잡을 수 없는 제목이었다. “천산갑”은 뭐고, “67번째”는 웬 말인가. 천쓰홍이라는 이름만 의지해서 다소 두꺼운 이 책을 읽어 냈다. 읽으면서 놀랐던 사실은 책에는 ‘67번째 천산갑’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책의 끝에 이르자 이 제목이 소설의 중심을 영리하게 가리키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 리뷰에서는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할 것이지만, 그것으로도 꽤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천산갑”
천산갑, 멸종위기 동물이다. 연약하고, 소심하고, 예민해 쉽게 죽어 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의 두 주인공인 ‘그’와 ‘그녀’ 역시 천산갑처럼 취약한 자들이다. 한 명은 잠을 푹 자지 못하는 여성, 한 명은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게이 남성이다.

잠들지 못한다는 것은 이완되지 못한다는 것이며, 말하지 못한다는 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그가 속한 사회에서 이완되지도, 발화하지도 못하는 자들. ‘사회적 약자’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더라도, 이것은 ‘그’와 ‘그녀’가 살아가는 삶의 단면이다.

“67번째”
그럼 ‘67번째’ 천산갑은 무슨 의미일까? ‘그’와 ‘그녀’가 함께 찍은 영화에 그 실마리가 있다. 아역 배우였던 그들은 천산갑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을 찍는다. 그러나 천산갑들은 말이 통하지 않고, 통제할 수 없는 비인간동물이다. 감독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자, ‘어른들’은 그 자리에서 모든 천산갑을 죽이고, 그 사체를 미장센에 맞게 배치해 촬영을 끝마친다. 어렸던 ‘그’와 ‘그녀’는 천산갑들을 지키지 못했다. 천산갑은 그들의 촬영을 위해 희생당했고, 그들 앞에서 파괴되었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 등장하는 천산갑, 그러니까 죽임당한 천산갑은 총 66마리이다. 따라서 67번째 천산갑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죽지도 않았다. 여기서 빛나는 역설이 발생한다. 67번째 천산갑은 아직 죽지 않았으므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와 ‘그녀’가 지켜 낼 가능성이 남아 있다.

다시 말해, 67번째 천산갑은 삶에서 패배와 좌절을 거듭해 온 두 인물에게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생명력이다. 어쩌면 아직 파괴되지 않은 그들 자신의 여생이며, ‘그녀’의 아들일 수도 있다. 그들의 삶은 66번이나 파괴되어 버린 연약한 삶이다. 동시에, 66번이나 파괴되었음에도 아직 패배하지는 않은 삶이다.

그러므로 67번째 천산갑은 그들에게 삶의 의미와 윤리를 부과하는 책무이며 희망이다.

낭트로 향하는 둘의 여행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 삶에는 지켜야 할 것이 있고, 아름다운 것이, 귀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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