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자, 장자크 상페 그림, 박종대 역자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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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표지 빛깔에 매료됐다.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는 시기에 흔히 볼수 있는 자연에의 빛깔이다. 20대 중반부터였을까. 이 빛깔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래서였을까, 반갑게 맞이한 책이다.
책 표지도 인상적이다. 체스판 위에 말의 형상으로 있는 주인공 ‘장’의 모습. ‘장’은 ‘승부’에서 고독한 싸움을 했다. 그는 한치의 실수도 범하지 않으며 상대가 두는 수를 꼼꼼하게 따지면서 이성적으로 상대했다. 그런데 ‘장’과 ‘젊은이’의 체스를 지켜보는 구경꾼들의 관점이 흥미롭다. 아니 ‘장’마저도 구경꾼들과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장’을 응원하는 이가 없으며, ‘장’이 패배할 거라고 생각한다. 체스를 지켜보는 구경꾼들은 도전하는 젊은이에게 매료되었고, ‘장’이 패배하기를 소원했다.
내용을 읽어내려가다, ‘왜그런거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장’에게 도전했다 패배를 경험했던 이들의 시기심인가? 그런데 도대체 왜 도전하는 젊은이에게 매료되어 그의 어이없는 수에도 다른 의도가 있을거라며, 고수는 다르다고 생각한 걸까?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장’과 ‘젊은이’의 외모부터, 체스를 두는 방식에 대해 비교한다. 매우 대조적이다. ‘장’은 일흔정도의 노인이며, 왜소하고, 외모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드런난다. 세월의 흔적에는 ‘장고’ 즉 신중함도 함께 한다. 반면 젊은이는 어떤가? 외모도 매력적이지만, 진취적이고 과감하다. 그에게 망설임은 없다. 자신감만이 있다.
구경꾼들은 젊은이와 자신들을 동일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현실에서는 그렇게 될수도 할수도 없지만 말이다. 이 대목이 그것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자신감에 넘치는 손길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구경꾼들은 눈가가 촉촉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자신들은 그렇게 두고 싶지만 감히 두지 못하는 수를 이 젊은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실행에 옮기고 있지 않은가!......저 친구가 지금 목숨을 건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음을 예감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 젊은이처럼 두고 싶다. 저렇게 당당하고, 승리의 자신감에 넘치고 나폴레옹처럼 영웅적으로 싸우고 싶다. 장처럼 소심하게 망설이듯이 질질 끌며 두고 싶지는 않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 자신이 실전에서는 장과 똑같이 두기 때문이다. > p34
이 대목을 읽은 후, 구경꾼들은 젊음을 동경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 ‘장’마저도.
젊음은 진취적, 도전적이다. 패배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 패배의 순간에도 깨닫고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선택의 매순간, 승리를 경험하기도 하고 패배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인생의 ‘자산’이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선택을 두려워하고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한다. 패배를 허용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우 고독해진다. 그리고 지나간 ‘젊음’을 동경한다. 그렇게 ‘늙음’을 느낀다.
구경꾼들에게 도전하는 젊은이는 ‘젊음’으로 표상된다. 그리고 ‘장’ 은 ‘늙음’으로 표상된다. 구경꾸들는 ‘젊음’의 진취성과 패기를 동경하며, ‘늙음’의 완숙함과 신중함을 무시하며 시기했다.
그래서였을거다. 패배한 젊은이가 매우 무례하게 킹을 쓰러뜨리고 패배를 인정하고 자리를 뜬 순간, 구경꾼들은 창피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지나간 젊음을 동경한다고 그때로 돌아가지도 않을뿐더러, 늙음이 갖고 있는 완숙함과 신중함을 무시하였던 자신들의 모습에 그들 스스로도 창피하였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현재의 삶을, 다가올 미래의 삶을 부정한거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챔피언 ‘장’ 본인도 그랬다.
<이번 승리는 그의 삶에서 가장 역겨운 승리였다. 왜냐하면 그는 이 승리를 피하려고 체스를 두는 내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욕보였고, 그로써 천하의 그 한심한 풋내기에게 항복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p64
챔피언 ‘장’은 실제로 패배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현재를 부정하면서 생긴 싸움의 과정이었기에.
그리고 그는 체스를 영원히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승부의 정신적 요소를 별로 요구하지 않는 마냥 즐겁기만 한 놀이를 하기로.
이제 그에게 젊음에 대한 동경도, 늙음에 대한 부정도 없다. 바로 현재의 삶에 대한 ‘수용’만 있을뿐. 역겨운 패배를 인정하고, 역겨운 패배과정에서 보인 자신의 모습을 처절히 깨달았기에. 승부를 가르려 하기보다는 인생의 마지막을 놀이의 장으로 만들어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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