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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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교류가 보다 심화되면서, 정치경제 분야는 물론이고 문화 분야의 아이템들도 국내로 속속 수입이 되고 있다. 그 동안의 교류부진으로 인해 국내에는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 예술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점차 늘어나게 된 것이다. <허삼관 매혈기>로 널리 알려진 위화의 뒤를 이어, 이번엔 중국의 국민작가라 일컬어지는 류진운의 작품집 <닭털 같은 나날>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대단한 작가다! 문학이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 황석영
류진운, 20세기의 20대 중국 작가에 선정 - <중국평론전선>, 2000년
<닭털같은 나날>, 20세기 세계 100대 명작에 선정 - <중국도서일보>, 2000년
<닭털같은 나날>, 백화상白花賞 수상 - <중국소설월보>, 1991년
<1942년을 돌아보다>, 중화문학선간상中華文學選刊賞 수상 - <중국소설월보>, 1993년

류진운에게 쏟아진 찬사들이다. 중국에서는 국민작가로 대표되는 모양이던데, 중국 현대문학의 수입이 최근에서야 이루어지는 바람에 그의 이름 마저도 생소하기만 했었다. 중국문화에 비교적 정통한 지인의 얘기를 미루어, 그가 자국 내에서 가지는 인지도는, 대략 국내에서 황석영이 가지는 그것에 버금갈만한 수준인 듯했다. 그러니, 황석영조차도 저렇게 극찬을 했을테지. 비록 나에게는 생소했지만.

인지도도 인지도지만 실제로 글의 느낌도 얼마간은 황석영과 그것과 비슷하다. 삶을 제법 깊고 육중하게 훑어내리면서도, 우회하기보다는 정공법을 써서 그 중심을 꿰뚫어 버린다. 많은 얘기들이 생략되어 있으나 행간 읽기를 독자의 몫으로 돌린 것일 뿐, 삶이 지고 있는 고락을 적나라하게 해부한다. 나른하기만 한 일상, 살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서푼어치 이상은 될 수 없는 인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글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다. 나른하고도 허망하기만 한 인생의 국면들을 블랙 코미디적 화법으로 풍자하는데, 이 지점에서 '인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일상의 우스꽝스러운 용달차'로 변이된다. '장엄'이 '경망'으로, '상흔'이 '딱쟁이'로 희석되는 순간이다. 수십 년을 지켜왔던 자존심의 허리춤에 닭장사들이나 차고 다니는 전대가 둘러쳐지는 것도 이에 다름없다.

중국의 민생을 살펴보는 일도 재미있다. 위화의 작품들처럼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인접국가이기는 해도 고유의 문화가 다소 달라 약간은 생소하기도 하지만, 서민의 마음은 서민이 잘 아는 법.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쩌면 저자는 등장인물들의 인생을 고스란히 살아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리도 적나라하게 휘갈겨 낼 수가 있었겠는가.

세 편의 중편소설이 한 권을 이룬다. 매일 반복되는 서민의 무료한 일상을 담은 <닭털 같은 나날, 個人>, 근엄한 지위에 있는 자들의 졸렬한 암투를 다룬 <관리들 만세, 組織>, 대기근이 일었던 1942년의 흉흉한 풍경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 낸 <1942년을 돌아보다, 歷史>, 이렇게 세 편의 작품들이 일상을 얘기한다. 하루하루가 허허롭다. 권력도 허허롭다. 그리고 생사(生死)도 허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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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사랑 - 추둘란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수필집
추둘란 지음 / 소나무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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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사랑’은 서울에서 처녀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충청도의 어느 시골에서 남편과 다운 증후군에 걸린 아들 민서와 유기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는 추둘란 씨의 산문집이다. 저자는 서울에서 살았을 때는 나이도 젊었거니와 대도시의 정서도 그러해서 나름대로 성공도 꿈꿔가며 치열하게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고 고백을 한다. 건조한 대인관계와 따지고 보면 길고도 긴 인생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회적 일상들의 무상함을 깨달은 건 결국 모든 욕심들을 버리고 귀농을 한 이후란다.

저자는, 귀농을 한 이래로 보기만 해도 정겨운 이웃들 그리고 외따로 안겨도 포근하기 만한 대자연과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니 이제는 그냥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전한다. 도시생활이었다면 밀물처럼 밀려오고도 남았을 법한 스트레스를 더 이상 받을 필요도 없고, 스트레스를 얼마간 받았다손 치더라도 기분 좋게 치고 받아가며 해소할 이웃과 자연이 있으니 그녀는 참으로 행복하단다. 게다가 적적한 시골생활에 이내 식상해할 무수한 몽상적 귀농주의자들과는 달리 그녀는 진심으로 그녀를 둘러 싼 그녀의 이웃들과 환경을 사랑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축복일는지?

사회적 약자라고 일컬어지는 소외 계층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미덕이다. 이 책은 다운증후군에 걸린 저자의 아들 민서의 이야기를 통해서 장애우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한 꺼풀 벗겨내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한다. 장애우들도 결국은 귀중한 하나의 인격이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저자는 시종일관 평온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그리고, 책의 어느 곳엔가에서 마침내 그녀 부부는 이렇게 얘기한다. ‘민서, 이 놈이 어떤 때는 장애아인지 정상아인지 도대체 구분이 안 간다니까!’

비단 그 뿐만이 아니다. 세상이 점차 첨단화 되어 가면서 이제는 경로효친사상의 미덕도 점차 희미해져가고 있다. 물론 위계질서 상의 상하분리구조는 사라져야 마땅하겠지만, 적어도 선험자들의 깊이에 대한 존중과 그들이 일구어 우리에게 제공한 지금의 환경들을 감사하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조차도 기능적 가치로 평가되는 이 시점에서 못 배우고 못 가진 이 땅의 어르신들이 그들의 공덕에 대한 존중을 얻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말로는 효도라고 하지만 더디고 촌스럽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기가 십상인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의 이웃이자 우리의 선배들이기도 한 여러 노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저마다 소박하지만 그만큼 넉넉하기도 하다. 소녀처럼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야학장에서 열심히 글을 배우고 있기도 하고, 더불어 사는 이웃이라 하여 없는 살림에 저자의 가족에게 음식이며 살림살이들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러고도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그 살가운 모습이라니. 우리는 더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어르신들의 태도에 대해서 논리적 비판을 가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의 내리사랑만큼은 감당할 수가 없지 않던가?

저자의 필력은 그녀가 전문적인 작가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적어도 전문작가의 것이지만 게으른 글쓰기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들에 비하자면 훨씬 더 수준급이다. 게다가 사람과 자연에 부대껴 가며 직접 체득한 삶에 대한 성찰들에서 적지 않은 공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언뜻 보면 흔한 글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글을 살피다보면 분명히 글들 간에 비슷한 정서가 반복되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글 속에 파묻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글의 깊이를 미루어, 어쩌면 그런 와중에 자신의 눈에 눈물이 살짝 글썽이더라도 창피해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당신의 정서는 지극히 정상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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