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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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르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이제까지의 장강명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소설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에 의해 창조된 하나의 또 다른 세계라면, 지금까지 장강명의 소설을 읽을 때 난 원의 외부에 위치해 있었다. 그 곳에서 원 안의 모습을 바라보며, 사회라는 존재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강한 힘으로 나를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 안으로 잡아당겼다. 매 장면이 마치 내가 경험한 일처럼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소설은 크게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에게 살해당한 동급생의 어머니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하지만 그 순서는 온통 뒤죽박죽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남자와 닮아있다. 우주 알이 몸에 들어온 이후, 남자가 바라보는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 그리고 여자의 실수로 인해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남자가 쓴 우주 알 이야기처럼 이 소설의 순서 또한 비일관성을 띄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읽고 혼란스러운 내 머릿속과도 같았다.

 

 내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던 까닭은 남자의 인생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자신을 괴롭히던 동급생을 살해하고, 감옥에서 9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출소한 이후에도 자신이 죽인 동급생의 어머니로 인해 피 말리는 삶을 살게 된다. 비참한 인생이라고 생각되는 시간들을 이 남자는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의 죽음이 곧 닥쳐올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생각한다.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그는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있었다. 행복에 겨운 웃음조차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을 이 남자의 삶은, 여자의 존재만으로 몇 번이고 그 시간을 반복 할 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여자의 존재가 주는 행복이 어쩌면 전부였을 이 남자의 삶에서 기쁨과 행복 따위의 어떤 것들이란,‘그믐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지는, 해가 뜨기 직전 잠깐 볼 수 있는 그믐달은 남자의 삶에서 여자를 만났던 짧은 시간 잠깐 맛볼 수 있었던 인생의 단맛이 아니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네 인생은 남자의 삶과는 다르다. 우주 알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다가와 시·공간 연속체가 뒤틀리는 멋진 경험을 선사해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가는 동안 그믐달을 마주할 것이라는 건 확실하다. 비록 우리가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인 낮에는 너무 가느다랗고 희미해서 볼 수는 없지만, 해가 뜨기 전 잠깐 보이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제 그믐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그믐과 같은 행복의 존재를, 기쁨의 존재를 우리는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우리에게 은은한 달빛처럼 스며들어와 우주 알과 같은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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