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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곰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함정임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받아보기 전에는 곰의 그 눈빛이 슬퍼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나서는 그 곰의 눈이 결코 슬퍼보여서는 되는 눈이 아니란 걸 알았다.
제목이 큰~ 곰이더니 그 만큼이나 큰~ 책이 도착하여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대강 책을 넘겨가며 그림만을 먼저 보고선 원시시대의 인류와 곰과의 생존을 위한 싸움에 관한 건가 생각을 했다.
보통 이런 양장의 동화책 같은 경우는 아들아이를 옆에 끼고 읽어주며 책과의 첫만남을 갖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책을 많이 즐겨하지 않는 아들아이에게 그나마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헌데 그러기에는 양이 일단 버겁다는 생각에 먼저 위의 딸아이(초등 3학년)가 먼저 읽게 했다.
읽고 나서 어떤 느낌이더냐고 물었더니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적은 글인데 그때의 생활하는 모습을 알 수 있게 해 줘요."
참 심심한 답이었다.
분명 책의 소개글은 아주 심오하다고 되어있었는데.
그리고 딸아이가 제법 책을 많이 읽고, 책의 내용을 잘 파악하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을 보니 너무 심오하여 초등3학년인 딸이 이해를 못하고 정말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만을 읽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 곰이 뭐였냐고 물었더니
"곰은 카올을 지켜주는 정령같은 거예요."라고 한다. 그것은 엇비슷하게 알아 맞춘 것 같다.
내용은 원시 인류(화석인류)의 생활을 얘기하는 것이 맞다.
곧선 사람이라고 표현되어있는 화석인류인 나와와 우옹은 아기를 낳는다.
나와는 아기를 낳는 날 꿈속에서 곰을 만난다. 그리고서 카올을 나은 것이다.
어린 카올은 삼촌 트라오의 반대에도 부족의 사냥에 따라 나서고, 탕다와 눈을 마주치게 된다.
이것은 금기시 된 행동으로 결국 부족에서 쫒겨날 처지가 된다.
그래서 혼자 대지의 입구에 잠자는 큰 동물을 잡아 자신의 용기를 보이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대지의 입구에 잠자는 큰 동물에게 상처를 입는다.
이 때 프랑과 티아를 만나 도움을 받게되고 성인이 된 카올은 두 사람과 함께 자신의 종족에게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트라오로 부터 떠날 것을 강요 받지만 결국은 자신의 힘을 알리고 종족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게 된다.
사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동화책이겠거니 하고 읽어 가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일 것 같다.
과연 곰은 어떤 존재인가?
글이 어떤 짜임으로 되어있는가?
가장 안 좋은 글 읽는 습관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쪼개보고 뜯어보며 읽는 것이라지만
이 책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뭘 읽은거지?'라는 말이 나올 것 같으니 말이다.
이 책은 두 주인공을 두고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곰이라는 주인공과 카올이라는 주인공.
곰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물이고, 카올은 이 곰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그리고 이 곰은 카올의 엄마 나와가 꾼 태몽속의 곰이며 주인공 카올을 통해서 문명이전의 인류의 생활을 아주 서정적인 그림과 글로 표현하고 있으며 인류의 문화의 발달을 카올의 행동들에서 직접 간접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책을 읽다보면 또 특히 눈에 띄는 표현들이 있다.
'어둠의 나라로 떠나는 여행', ' 나뭇가지 모양의 머리','생명의 꽃','달 빛을 띄고 있는 물고기'처럼.
이런 표현들은 눈을 지긋이 감고 오래도록 생각을 하면 그 그림이 떠오르는 듯한 표현인 듯하다.
또 다른 책을 읽을 때와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글의 표현이다.
인물들의 행동이나 말들을 정말 원시부족들이 썼을 법한 그런 어딘지 조금은 어색한 듯, 어슬픈 듯한 표현이 낯설면서도 오히려 어울린다는 생각이든다. 예컨데
"나뭇가지 모양 머리들은 자부심이 강해....카올은 또래 아이들과 남아 있어!"
"아니야, 카올은 힘이 세! 카올은 아무 것도 무섭지 않아!"
어쩌면 '아이를 달랠 때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인데 뭐'라고 하겠지만 아직은 인칭 대명사를 쓰지 않은 문명이전의 그런 느낌을 주기에 알맞은 번역이라고 여겨진다.(어쩜 나만의 느낌일수도..)
책이 심오하다고 생각하고 읽어내려가다보니 어쩌면 내가 판 함정에 빠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 편의 방대한 서사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는게 솔직한 느낌이다. 그리고 이렇게 받아들인 내가 옳게 받아들인 것인지 아닌지 결론을 내리기도 솔직히 힘들다.
이렇다보니 아직은 아이들에게 읽고 내가 느낀 무엇인가를 느끼라고 강요하긴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초등 고학년이되고 중고등학교를 다녀서 이런 은유적 표현의 느낌을 알 수 있을 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읽어보길 권할 만 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