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 - 젊은 인문학자의 발칙한 고전 읽기
오세정.조현우 지음 / 이숲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에는 우리나라 열두 가지 고전을 그야말로 ‘뒤집어 읽은’ 묘한 독서가 실려 있다. 묘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재미로 듣거나 읽고 마는 ‘나무꾼과 선녀’ 같은 이야기에 딴지를 걸기 때문이다. 선녀의 옷을 ‘훔치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 나무꾼. 잘 나가는 사대부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그저 나무나 해다 팔아먹고 근근 연명하는 노총각이 ‘선녀’를 강탈한 것이다. 게다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시집살이까지 해야 하는 선녀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이 스토리는 얼마 전 유행하던 일본 변태 ‘감금’ 영화 못지않다. 그래서 3년 만에 나무꾼이 마음을 놓고 아내에게 날개옷을 보여주자, 선녀는 아이들까지 버리고 하늘나라로 냅다 도망쳤다는 것이다. 저자는 묻는다. 만약 선녀가 지상에서 나무꾼과 사는 삶이 행복했더라면 날개옷을 입고 도망쳤겠느냐고.

어쨌든 이런 식으로 우리 고전을 ‘비틀어’ 읽는 저자의 시각이 매우 신선하다. 특히, 이생규장전을 분석하면서 영화 ‘원스’를 언급한 대목에서는 뭉클! 한 구석도 있다. 아...진정한 사랑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뛴다. 특히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하지만 나는 다른 모든 에피소드보다 ‘옹고집전’에 확 꽃혔다. 왜냐. 내 전공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옛날에 나는 옹고집전을 일요일 저녁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영화로 봤다. 물론, 흑백영화였고 못된 성격의 옹고집 역은 허장강 씨가 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의 저자는 옹고집전에서 인간복제의 문제를 다룬다. 뭐,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멋진 신세계, 블래이드 러너, 여섯 번째 날, 아일랜드 등 소설과 영화에서 인간복제의 문제는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옹고집전을 이야기하면서 특히 아일랜드를 텍스트로 삼아 흥미로운 담론을 펼친다. 그간 인간복제를 다룬 작품을 소개한 다른 책들도 나왔지만, 이 책의 흥미는 단지 인간복제의 현상을 소개하기보다는 ‘내가 복제되었을 때 원본과 사본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다시 말해 ‘내가 나임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라는 치명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데 있다. 아... 잘 생각해보니, 정말 내가 나임을 증명하기란 간단치 않다. 저자는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신체적 특성, 나만의 고유한 기억, 유전자 검사, 주변의 인정 등 여러 가지 수단을 소개하면서, 그것들이 결코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확실한’ 방법이 될 수 없음을 밝힌다. 예를 들어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DNA 검사도 일란성 쌍둥이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게다가 ‘복제인간’은 나의 세포에서 번식한 존재이기에 유전자 검사는 전혀 분별력이 없다.

저자는 이처럼 나의 ‘자아정체성’을 밝히는 일이 몹시 어렵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다시 말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흠...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조금 각도를 달리해서 바라보고 싶다. 원본과 사본을 구별하는 ‘방법’이 없다는 것은, 원본과 사본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만약, 내가 복제되어 나와 똑같은 나2가 세상에 존재하고, 그 역시 자신을 원본이라고 믿고 있다면(블레이드 런너나 아일랜드의 사이버그들은 처음에 그들이 복제품임을 모른다), ‘나’의 정체성은 구별의 문제가 아니라 본격적인 존재론적 문제로 변환된다. 나2는 분명히 나와 별개의 물리적 현실체이지만, 과연 독립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인가? 신체와 기억과 감정과 존재감마저 완벽하게 동일한 나2는 분명히 나1만큼의 자아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다. 그가 보기에 나1은 오히려 복사본이며 잘해야 동일한 버전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1과 나2는 무엇이 다른가. 설령, 내가 나임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똑같은 두 개의 개체가 있으니 둘 다 ‘진짜’라고 인정할 수는 없다. 나1과 나2에게 아무도 신분을 증명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나1과 나2에게는 서로 상대가 가짜이고 내가 진짜임을 확인하는 어떤 기준, 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설령 나1인 내가 알고 보니 사이버그였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엄청난 충격을 받더라도, 진실을 밝힐 방법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철학에 그 답이 있다. 아주 간단하다. 나1의 탄생에는 ‘의도’가 없었지만, 나2의 탄생에는 의도가 있었다. 실존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나1은 ‘존재’하는 존재, 즉 실존적 존재이지만, 나2는 ‘있는’ 존재, 즉 본질적 존재이다. 나2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그를 탄생시킬 ‘의도’가 있었고, ‘쓰임새’가 있었다. 볼펜이나, 자전거나, 컴퓨터를 만들 때, 머릿속에서 모델을 그려보고, 기능을 살펴서 그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듯이, 나2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그는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무 의도나 용도나 계획 없이 태어난 실존적 존재 나1에게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없고,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진본’의 특징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방법을 따진다면, 함구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그러나 분명히 ‘진짜’와 ‘가짜’는 존재한다. 그 존재가 실존적인가, 본질적인가에 따라 지구상에서 둘은 전혀 다른 존재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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