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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식가 - 솔로 미식가의 도쿄 맛집 산책, 증보판 ㅣ 고독한 미식가 1
구스미 마사유키 원작,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정임 옮김 / 이숲 / 2010년 5월
평점 :
우리나라 문화의 문제는 무엇인가. 쏠림현상이다. 누가 뭐가 좋다고 하면 너도나도 그쪽으로 몰린다. 어느 필자의 책이 유명하다면 필자나 책의 내용을 잘 몰라도 무조건 사고 본다. 품절이 된다는 소문이 돌면, 읽지 않을거라도 웃돈을 주고 산다... 유명한 배우, 엄청난 광고비, 대중의 유행에 맞춰 대형 영화를 제작하면 영화관 앞에 우르르 줄을 선다. 독립영화가 상업성이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독립영화가 이처럼 맥을 못 추는 나라도 드물다. 왜 그럴까. 영화의 내용보다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영화관 앞에 아침부터 줄을 서는 관객들의 선호 때문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진정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추억과 사연이 깃든 음식을 찾기보다는 어디 식당이 유명하더라...는 소리만 들리면 무턱대고 그곳에 찾아가 줄을 선다. 그렇게 책도 영화도 음식도 눈먼 선호 때문에 양극화가 심하다. 내용보다는 지명도가 문화를 지배한다. 그런데 과연 유명한 것만이 반드시 좋은 것일까.
이 만화가 내게 와 닿은 구석은 고로라는 인물의 '자존심'이었다. 일화 곳곳에서 그의 사고가 언뜻언뜻 비친다. 알바생을 못살게 구는 심술궂고 거친 햄버그 스테이크집 주인의 팔을 꺾으며 그는 말한다. 조용히 혼자 식사하고 가려고 했는데, 당신이 시끄럽게 굴어서 음식을 즐기는 기쁨을 빼앗아 갔다고.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어느 다른 식당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자, 그는 '음식을 즐기기 위해 줄을 서는 건 싫다'며 그 자리를 떠난다. 자연식을 파는 식당에 대한 혹평을 들었지만, 고로는 직접 그 식당에 들어가 맛을 보고 분위기를 돌아보며 그것이 편견이었음을 확인한다. 다시 말해 고로는 남의 얘기에 따라 음식을 고르거나 휩쓸려 식당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입맛대로 음식을 즐기고 평가한다.
요리만화라는 장르가 생겨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읽어보면 한결같이 '구라빨'이다. 수십 년전 어느 도인이 개발한 조리법인데, 어찌어찌 하여 유실되었고, 손자가 그 비법을 찾아냈는데 수백 년 묵은 어떤 식재료를 가지고 어떤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조리하니 어떤 맛을 내더라.... 라이벌과 콘테스트에 나갔는데, 상대는 어떤 비술을 썼고, 나는 어떤 방법을 썼는데 재료를 다루는 비법 덕에 그를 이겼다... 물론, 만화가 그 '황당함'이나 '자유로운 상상력'의 소산인 것은 분명하나, 그런 만화를 보면 너무 진한 양념 때문에 실제 음식의 본체, 솔직한 식재료의 맛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음식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이 만화는 그런 조작의 정반대편에 서 있다. 그래서 진한 양념에 익숙한 독자들은 이런 만화가 '밍밍하고 싱겁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만화에서는 독자가 유심히 읽고 '찾아내야 할'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다. 고로는 왜 사랑하던 애인이 떠나는 것을 속수무책 바라보고만 있었을까? 파리에서 헤어진 여배우와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왜 수입상이 되었을까? 왜 오래된 맛집을 찾아다니는 걸까? 보아 하니 중년인 것 같은데, 왜 결혼을 안 했을까? 누이는 왜 이혼했고, 조카는 어떻게 야구선수가 되었을까? 그리고 야구장까지 찾아가서 왜 조카에게 아는 척하지 않았을까? 무수히 많은 의문이 생기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는 여기저기에 주어져 있다. 단지, 독자가 읽는 만큼, 찾아내는 만큼, 상상하는 만큼만 그 대답이 허락될 뿐이다.
음식에 대해,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자유와 구속, 사랑과 이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만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