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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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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상 수상집을 읽을 때면 늘 선물 상자를 여는 것처럼 설레고는 한다.

 

이번 수상자인 황정은 작가는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했고, 그의 전작들도 인상 깊게 읽은 만큼 기대하는 바가 컸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 작가가 정말 큰 그림을 그리며 이 작품을 썼다는 인상을 받았다.

 

상실을 경험한 개인과 우리 사회 전체의 결함 그 사이 공간에서 가만히 혁명의 1번지를 향해 걷는 사람들.

 

" 이것은 망가지지 않는다.

자신있게 말하는 인간은 더러 보았지만 이것을 관리하는 인간, 망가지지 않도록 하는 인간을 d는 본 적이 없었다. 여기 사람들은 그저 망가지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농담처럼 그들의 믿음을, 그것도 부주의한 믿음을 말이다. 그러나 여기 이렇게 균열들이 있다. 멀쩡하다는 것과 더는 멀쩡하지 않게 되는 순간은 앞면과 뒷면일 뿐. 언젠가는 뒤집어진다. 믿음은 뒤집어지고, 거기서 쏟아져내린 것으로 사람들의 얼굴은 지저분해질 것이다..."

 

방황과 이어짐. 불시에 일어나는 일들. 가령 버스에서 몸이 튕겨나가거나,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들. 그럼에도 우리의 것들은 망가지지 않을 거라는 부주의한 믿음. 이 넓은 이야기를 황정은은 백 페이지 안 되는 소설로 담아냈다. 아마 이것이 그의 저력일 것이다.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거나 움직일 때,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생각하지 않을 때, 나는 죽음을 느껴요. 매우 정지된 지금을요. 너무 정지되어서, 지금 바로 뒤를 나는 상상할 수 없고요 궁금하지도 않아요."

 

누군가는 혁명을 바라지만, 누군가는 비상한 일이 벌어지는 때가 따로 있는가, 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따로 있다면, 이렇게 끝날 조짐도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이미 하루가, 지금이 죽음과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을 상실한 사람. 그 경험을 지닌 사람. 늘 "나의 사랑하는 사람은 왜 함께 오지 않았나", 아니 왜 그러지 못했나 생각하는 사람. 계속해서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 혹은 스스로를 떠올리게 되는 시간이었다.

 

황정은의 웃는 남자 외에도 김숨의 이혼을 인상 깊게 읽었다. 사실 더 잘 읽히는 것은 김숨의 것이었다. 웃는 남자를 읽다가 중간에 넘어가 단숨에 읽은 것이 이혼이었다. 편혜영의 개의 시간을 비롯하여 대다수 작품이 현 시대 우리의 진실된 장면들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기호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었는데 가벼운 이야기 속 방심할 수 없는 통찰이 숨겨 있는 듯했다. 이것이 작가의 스타일인지는 다른 작품들을 더 읽어봐야 알겠다. 수상집의 가장 큰 매력은 이 작가들의 다른 작을 읽게 되는 것이니까.

 

dd를 만난 이후로는 dd가 d의 신성한 것이 되었다. dd는 d에게 계속되어야 하는 말, 처음 만난 상태 그대로, 온전해야 하는 몸이었다. d는 dd를 만나 자신의 노동이 신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을 가진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으며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는 마음만으로도 인간은 서글퍼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인간의 마음은 턱에 있다고 d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턱이 아팠으니까.

d는 자신의 방에서, 공중전화기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통화하는 중국인이나 한국인의 말을 들었다. 상대의 말이 들리지 않았으므로 일방적인 발성으로 들리는 말들이었다. 돈을 보냈다거나 돈을 더 보내달라거나. 건강을 묻거나 어딘가 좀 아프다거나. 보고 싶다거나 아주 죽여버릴 것이라거나.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산 사람들은, 가장 방심한 얼굴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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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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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휴가 동안 쉽게 읽다 덮었다, 다시 읽으며 즐기기 좋은 책이었다.

누군가의 사유, 그것도 재미있게 글을 풀어내는 사람의 사유를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그리고 왜인지 책보다도 서평이 재밌는 순간도 있다.

실제로 금정연은 굉장히 유쾌한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하도 친근한 말투여서 덕분에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인데도 어디선가 만나면 반가울 것만 같다.

 

페이지를 넘기며 예쁜 노란 색지에 얹힌 고전의 한 줄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문장에 대하여 저자 금정연은 명랑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전에 다른 알라딘 MD의 인터뷰에서도 "자고 일어나면 책이 한 권도 남김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금정연 씨 역시 "그러니까 문제는 책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책을 가까이하는 이들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분명 서른 권의 책을 가방 두 개에 나눠 담아 외출하면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또다시 "책 때문에 미칠 지경인데 또 책을 떠올린"다.

무거워하면서도 실은 그 무게만큼 그들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무시무시한 책 사랑이 느껴졌다.

 

읽으면서 생각보다 옛날 글들도 있어서 놀랐다. 이렇게 몇 년 전에 쓴 글이라고? 왜 이렇게 올드한 느낌이 없지?

밝히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출판사에서 굳이 이 시간들을 지우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둔 건 그 글이 쓰일 당시의 문맥을 살피라는 의미로 보였다. 글이 기고되었던 잡지의 특성을 살피는 것도 소소한 재미이기도 했다.

 

읽기 전부터 궁금했던 것은 왜 부제가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인지였다.

이것은 작법에 관한 책인가? -그렇지만 서문에서 "문장론"에 관한 책이 아니라고 밝히 적혀 있었다.

의도를 곰곰 고민해보니 다만 고전의 위엄에 깔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던 게 아닐까, 싶었다. 자신의 글을 적는 데에 망설이지 말라는 것. 이렇게 금정연처럼 적어도 상관없다는 것을 남기려던 건 아닐까.

 

그렇기에 실패를 모른다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책을 다 읽고 나니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이 유명 저자들의 말일뿐 아니라 금정연의 글이기도 하다는 맹랑한 생각이 든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책들의 사태를 바라보며 나는 습관적으로 한 권의 책을 떠올린다. 책 때문에 미칠 지경인데 또 책을 떠올린다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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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서 - 이민혜 그림 에세이
이민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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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혜 작가의 그림 에세이 


세수도 안 하시고 소파에 누워 주무시는, 들어가서 주무시라 해도 대꾸도 안 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공감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많은 집의 모습인 줄 몰랐다. 그만큼 많은 엄마들의 삶이 고단하다는 것이겠지.


나에게 엄마는 때론 닮고 싶지 않으면서도 '나는 엄마만큼 잘 해내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존재였다. 그래서 표지 그림을 봤을 때 공감이 되었나 보다.

멀어지고 싶어도 늘 떨어질 수 없는, 그런 엄마와 딸의 관계가 녹아 있는 책.

엄마와 나는 다르다. 우리는 서로 다른 만큼이나 서로를 걱정하고 사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가까이에서 이토록 부딪히는지도 모르겠다.

딸이기에 느끼는 더 서운한 것들이 있다.
엄마이기에 느끼는 더 안타까운 것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원망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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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손을 빌려 드립니다 웅진 모두의 그림책 2
김채완 지음, 조원희 그림 / 웅진주니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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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한 하루를 위하여.

엄마와 아빠 사이를 잇는 기특한 고양이.
하지만 더 기특한 것은 자신의 일을 멈추고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
이 책을 이 시대의 맞벌이 부부들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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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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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구역질이 날 듯 울렁거렸다.

어느 이에게도 할 수 없었던 말들과

그 말을 삼킬 때, 그리곤 안에 고였을 때 느꼈던 것들이

메스꺼울 정도로 탁월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작품 초반, 다소 복잡하게 쓰여진 인물 관계도는 이야기의 중심부와 그 속성을 같이 한다고 느꼈다.

황현경 평론가의 말처럼 '저 참혹한 삶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차곡차곡 엉켜왔는지를' 우리는

강윤희 씨의 가계를 짚어가며 골몰하기 때문이다.


작가 최은미는 2016년 내내 강윤희를 생각했다고 했다. 길을 걷다가 건너편 횡단보도에서도, 집의 천장과 벽과 침대와 현관문을 보면서도. 그래서 그렇게 강윤희씨는 생생한 병든 몸을 입었나보다.

자신의 유년과 성조숙증에 걸린 딸과 피임 수술을 한사코 거절하는 남편, 이름만 들어도 마음 한 구석이 웅크려지는 사람과 그의 자식이 삶에서 통제를 벗어나 섞일 때

강윤희가 겪는 그 모든 것들은 상황의 특수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보편적인 어두움을, 메스꺼움을, 지옥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강윤희가 가장 외로운 순간은 자신이 왜 그토록 안전한 피임을 원하는지 백은호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였다. 백아영이 성조숙증 확진을 받았을 때도, 틱 증상이 왔을 때도 아무도 자신만큼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강윤희는 생각했다. 강윤희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세상 한가운데서 혼자서만 노를 젓고 혼자서만 책임지며 혼자서만 비난받는 것 같았다." p. 69


"하지만 강윤희가 정말로 묻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엄마는 어떻게 세상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인지 강윤희는 궁금했다. 어떤 믿음이 열한 살 딸과 스물세 살 시동생 둘만 남겨놓고 여행을 갈 수 있게 했던 것인지. 강윤희는 살아생전에 그런 얘기들을 엄마와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생각했다." p.74


남편조차 모르는, 자신을 낳은 엄마마저 모르는 비밀을 갖고 살아가는 인생의 홀로 삼키는 약처럼 쓴 외로움과 고달픔을 작가는 참으로 섬세하게 그려낸다.


책을 읽고 나니 강중식의 울음과, 그 아들 강민서의 기이한 힘을 채우던 시선이 뇌리에 남는다.

다 녹아버려서 흑미만 둥둥 떠있는 눈사람 화분도, 그 흑미가 징그럽게 느껴지는 순간도. 

기억하고 싶은 장면은 딱히 아닌데, 이 책의 모든 장면은 어쩌면 그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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