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지붕의 나나 시공 청소년 문학 55
선자은 지음 / 시공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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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빨려들어갔다. 책 뒤의 '작가의 말'을 보니, 처음에는 <빨간 지붕의 나나>라는 제목만 있었던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것도 작가가 먼저 떠올린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제목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라고 해서 시작되었단다(뭔가 작가의 주변 인물답다.^^;). 그렇게 제목과 작가와의 만남은 갑작스러웠지만, 작가는 '오래전부터 이 이야기를 알고 있던 사람처럼 써 나가기 시작했다'(245쪽)고 한다. 책날개의 작가 소개란에 '취미는 상상하기, 특기도 상상하기다'라고 되어 있었던 것이 떠오른다. 그렇게 이 제목은 한 소녀의 강요된 기억과, 그 기억의 빗장을 스스로 열고 자신의 삶을 마주보려는 이야기의 세계가 되었다. 인간의 상상력, 이야기력(?)에 경배를!

 

나를 나라고 여기게 하는 근거는, 나의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다. 나의 지나온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니까. 하지만 열일곱 살 은요는, 아홉 할 때 유괴당해 그때까지의 기억이 모두 사라져버버린 이후 끝없이 '평범하고 무난한 척'해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한 조각이 빠져 완전하지 않은 사람'(32쪽)이 된 것이다. 한창 꿈을 키워가야 할 나이에, 모든 가족이 자신 때문에 틀어져 버렸다고 생각하고 자책하는 모습이 아프다. 그건 네 탓이 아닌데.

'그 일만 아니었더라면, 나만 아니라면 모두 행복했을 것이다. 정말 행복했을 것이다.'(32쪽)

 

자꾸만 나타나는 여자아이의 환영. 사건 후 외국에 나가있었던 사촌동생 미루가 내민 색칠공부 책과 그 속에 적혀있는 '빨간 지붕 나나 집' 의 주소. 어린 시절 그 사건이 있은 후로 가지 못했던 할머니 댁. 어린 시절 친구였던, 그리고 나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우진이와의 만남. 유일한 친구 민세가 보내주는 믿음과 응원... 그 속에서 은요는 8년 전의 시간과 장소로 돌아가서, 금지되어 있던 기억의 문을

열기 위해 노력한다. 어른들이 어떻게든 숨기려 했던 진실을 스스로의 힘으로 끝내 찾아내려 한다. 그 여정은 안쓰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찾아간다는 것은 쓰라린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기에 나도 은요를 힘차게 응원한다. 봉인된 기억 속에 갇혀 살기를 거부하고,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조금씩 나아가는 그애의 마음을.

 

앞으로 이 이야기를 읽을 분들을 위해 기억을 찾는 과정과 충격 결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하니...^^; 아 참,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은요의 친구 민세와, 또 민세에 대한 은요의 마음의 변화가 인상적이었다. 사실 내가 10대였다면 은요와는 별로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매사 시큰둥하고, 친구에게 별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만 갇혀 있는 좀 까다로운 아이. 하지만 민세는 그런 은요에게 한결같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다.

 

늘 민세의 관심을 부담스럽고 귀찮게 여겼었지만, 할머니 댁에 오고부터 민세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마음을 털어놓는 은요의 변화가 귀여웠다.^^ 처음에는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무작정 따랐던 작은아빠가 과거를 마주하는 일을 방해하자, 은요는 처음으로 작은아빠에게 반항하려고 한다. 서울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관성의 법칙(?)으로, 늘 고분고분했던 아이가 갑자기 바뀌기는 힘들다. 서울로 돌아가야 하지만 아직 알아야 할 게 남은 것 같아서 가기 싫다, 결국 가게 될 것 같지만... 이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표현한 은요의 메시지에 민세는 분명하게 답해준다.

'네가 오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해야 해. 너 자신을 믿어.'(184쪽)

그 말에 힘을 얻은 은요는, 처음으로 작은아빠의 말을 거역하여 그곳에 남고 비밀을 풀어간다. 친구의 말 한 마디가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주고 무한한 격려를 해 준 것이다.

 

나도 생각해보면, 친구의 말 한 마디, 작은 위로와 격려 한 마디가 나를 웃게 하고 울게 하고 성장시켰던 것을 기억한다. 힘든 여정을 마친 은요가, 민세와 웃으며 이야기하는 마지막 장면이 따스했다. 진실은 때론 잔혹해서 우리는 그것을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은요는 스스로 그 진실과 대면해내는 힘을 보여주었다. 혼자가 아니라 응원해주는 이들과 함께이기에 더욱 빛나는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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