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별아이 료마의 시간
신보 히로시 지음, 노인향 옮김 / 지식너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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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빠는 네가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료마에게서 배운 것이 정말 많단다. 다 안을 수도 없을 만큼 크나큰 감동과 고마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지. 사람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네가 나에게 알려주었어...

  정말 기쁘다. 앞으로의 삶이 지금처럼 평탄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도 아빠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료마가 힘을 내고 있는데 질 수는 없잖아. 앞으로도 너를 지킬 거야. 아빠는 언제나 너의 아빠니까 말이야."(119쪽, 료마의 열한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아빠의 편지 중에서)

 

"너는 아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단다... 네가 아빠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우연일지도 몰라. 하지만 너를 만나고 나서부터 아빠는 가치관도, 사고방식도, 삶의 태도까지 모든 것이 변했어. 그리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지. 너와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알지 못했을 귀중한 것들이야.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줘서 정말로 고맙다. 중요한 것을 알려줘서 고마워. 너에게는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라기만 해. 정말로 고맙다."(161쪽, 료마의 열네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아빠의 편지 중에서)

 

자폐증이 있는 아들을 혼자서 키우고 있는 아빠가 12년 동안 써내려갔던 일기. ​일기의 주인공은 세 살 때 소아 자폐증과 정신지체 판정을 받았던 료마다. 그리고 료마의 아빠와 료마의 할아버지, 할머니, 학교 선생님과 이웃 등이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이 일기는, 맑았다. 푸른 하늘을 연상하게 하는 책 표지처럼. 들여다보는 내 마음까지 덩달아 환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마음을 미리(?) 단단히 먹었던 마음 한구석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그리고 평범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일상 구석구석에 흠뻑 빠져들어간다.

 

처음에 료마 아빠는 마음속으로 뭔가 잘못된 거라고, 료마의 자폐증은 나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료마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얼마나 제발 꿈이기를 간절히 기도했을까. 매일 밤 꿈속에서 다른 아이들처럼 자신에게 말을 거는 료마를 보았고, 그러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단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는 료마를 보면서 좌절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료마가 4살 되던 해, 료마의 이름을 따온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인 고치로 떠난 3박 4일 자동차 여행. 하지만 료마는 느닷없이 패닉상태에 빠진다. 첫날부터 고민에 빠진 부부는 여행을 계속하기로 했으나 사흘 내내 료마의 패닉은 계속되었고, 나흘째 되던 날 료마와 아내를 신칸센에 태워 집에 보낸 료마의 아빠는 결심했다고 한다.'이제 그만 료마의 장애를 인정하자. 그리고 료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찾아보자'(28쪽)는 결심을.

 

그리고 료마의 아빠는 그 후 수많은 시간 동안 그 결심을 잊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다는 것, 사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료마의 아빠는 아무리 료마가 더디 가더라도, 료마의 눈높이에 맞추어 세상을 보고, 료마의 발걸음에 맞추어 함께 걷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료마가 아무리 늦더라도 한걸음씩 성장하고 있음을 믿었고, 그 믿음대로 료마는 조금씩 커 간다. 그리고 느린만큼, 료마의 성장에 대한 기쁨과 감사는 더욱 커진다.

 

우리 가족에게는 '당연히'라는 것은 없다고 하던 료마 아빠의 말이 기억난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것일지라도, 료마와 료마 아빠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장면이고 놀라움과 감동이 뒤섞인 사건이다. 다른 누구의 시간도 아닌 오직 료마의 시간에 맞춘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료마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한다는 것, 오직 그것만으로 하늘을 날듯이 기뻐하는 아빠의 모습. 료마야, 네 웃음이 그렇게 티없이 맑은 것은 그 때문이었구나. 네가 만들어 온, 수없이 많은 '기적'의 순간들을 함께 기뻐하는 아빠와 너를 떠올리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아빠가 패스한 공을 처음으로 다시 아빠에게 패스해 보여준 너. 입원하신 할머니께 편지를 전하는 생애 첫 심부름을 무사히 마쳤던 너. 부추 반찬을 더 달라고 하면서 "미역, 더 줘!"라고 자기 의사를 분명히 표현한 너. 멀리서 지나가는 버스를 보며 '버슈'를 외치며 눈을 반짝이던 너. 차가 출발하지 않자 자동차 엔진 소리를 흉내내어 "투~타타"하고 내뱉았던 너. 학교에서 스스로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옷을 갈아입었던 너. 처음으로 아빠 등에 수건을 대고 문질러줬던 너. 더위 때문에 잠들지 못하던 밤 처음으로 귓가에 "아빠!아빠!"하고 불렀던 너. 초등학교 졸업식 날 똑바로 걸어가 졸업장을 손에 꼭 쥐어 아빠 눈에 눈물을 흐르게 했던 너. 선생님이 그린 선에 맞춰 스스로 연필을 쥐고 그 위에 선을 그린 료마. 14년의 기다림 끝에 처음으로 아빠에게 '바이바이'라고 인사했던 너.

 

 그래, 이런 것이 바로 행복의 모습인 것을. 네 아빠가 말했었지. 처음으로 네가 아빠가 준 공을 패스해 준 날, 꿈이 현실이 되었다고. 너와 함께 공을 패스하며 노는 것이 평생 이룰 수 없는 꿈이라 여겼는데, 그 꿈이 이루어졌다고. 불과 1~2분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 네가 패스한 공이 꿈과 희망을 싣고 아빠의 가슴에 와 닿았고, 그 후로 아빠에게 '포기'란 단어는 사라져 버렸다고.

너는 정말로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행복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는구나. 왜 그렇게 다들 힘겹게, 안달복달하면서 그것을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 왔을까 싶어. 네 아빠 말이 맞아. 네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어. 문어별&바위별 아이인 료마야, 아니 이젠 문어별 청년이라 불러야 하겠구나. 앞으로도 아빠와 함께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행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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