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을 생각한다 이탈리아 - 시간이 빚어낸 가치
민혜련 지음, 김세윤 사진 / 멘토르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인정신'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본 이탈리아의 여러 명품들, 예술가들, 건축과 축제, 그리고 요리 이야기... 무척 다채롭고 풍요로웠다. 이탈리아에 대한 애정 가득한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여정이 내내 즐거웠다. 

 

1부에서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들의 창업 정신과 성공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2부에서는 르네상스 천재 장인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3부에서는 파스타, 피자, 젤라토와 에스프레소 등 세계인의 식탁을 사로잡은 이탈리아 요리 속 장인정신을 해부한다.

명품 브랜드 쪽에는 문외한이지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구치 가문의 이야기나 명품옷을 입은 공산당원 미우치아 프라다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디자이너 출신도 아닌 정치학을 전공했던 미우치아 프라다가 고급 트렁크를 보호하기 위해 덮어놓은 검정색 방수천을 보고 계시(?)를 받았다는 에피소드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고급 가죽으로 된 다른 명품 가방들과는 달리 왜 프라다의 가방은 나일론 소재로 되어있는지 안그래도 궁금했었는데(솔직히 장바구니 같은 핸드백이 왜그리 비싼지 의구심도 들었고), 아무튼 그당시 일반적인 명품 가방들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낙하산 만드는 나일론 원단을 쓴 프라다의 이런 시도는 경악에 가까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않았던 이 가방은 실용성을 원하는 시대의 흐름과 합치했고, 프라다는 유행을 이끄는 선두주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이탈리아가 낳은 천재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소개되는 2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스물여섯의 나이에 요절했던 천재 화가 마사초(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서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 다루어진 점이 살짝 아쉬웠다~)와 '건축의 시인' 렌초 피아노다.

많은 미술사가들이 현대 미술이 있게 한 선구자라고 손꼽는 마사초, 신이 아닌 인간의 눈으로 사물을 보려는 시도인 원근법을 최초로 시도했던 그가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젊디젊은 나이에 돌연사했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은 숨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보이는 원근법이라는 상식이, 14세기 초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마사초가 그린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성 삼위일체>를 처음 본 피렌체 시민들은 깜짝 놀라 벽 속으로 걸어들어 가려고 했다는 일화는 마치 만화 속 상황처럼 재미있으면서도 한편 상식이라는 것, 상식을 뛰어넘는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한 시대의 상식이 다른 시대에는 뒤집어지기는 것이 도리어 상식이 되기도 하고, 그 시대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시도로 동시대인들의 사고방식을 뒤흔드는 사람은 그 시대에는 이해받지 못하고 배척당한다는 것...

파리 퐁피두센터에 반한 이후로 쭉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렌초 피아노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도 즐겁게 읽었다. 기존의 틀을 깨고 제한 없이 다양한 건축 재료를 사용하는 등 실험정신이 강한 건축계의 반항아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실험정신 뒤에 깃든 명장의 따뜻한 인간애와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명품 브랜드와 예술 장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1,2부와 달리 이탈리아의 다채로운 요리를 이야기하는 3부에서는 이탈리아인들의 푸근하고 풍요로운 일상을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이탈리아 요리만큼 전 세계에서 널리 일반화되고 사랑받는 것은 없다는 것을 책장을 넘기며 거듭 실감했다. 커피, 파스타, 피자, 젤라토, 와인, 치즈, 프로슈토 햄... 특히 저자가 와인 전문가인만큼 와인에 대한 설명들이 참 알찼다. 특히 농가에서 포도주를 만들고 나서 남은 찌꺼기를 모아 증류시킨 토속주 '그라파'에 대한 이야기는 왜그리 감칠맛이 나는지, 복잡하고 오묘한 향을 가졌다는 그 술을 꼭 마셔보겠다고 벼르게 된다.^^

 

책을 덮으면서 저자가 나폴리에서 며칠 머물면서 관찰했다는, 골목의 가정집 저녁식사 풍경을 상상해본다. 식당 창문이 1층 길가로 나 있는 집들, 창문을 모두 활짝 열어놓고 다같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시간, 군침 도는 냄새가 솔솔 풍겨나오고... 저자가 그 골목을 지나 트라토리아(가정요리를 주로 파는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야경을 보고 들어올 때까지 매일 몇 시간이고 떠들면서 계속 식사를 했다는 그 흐뭇한 풍경을. 허겁지겁 밥을 먹는 것은 식사가 아니라 주유(注油)하는 거라고 늘 주장하는 나에게는 이상적인 풍경이 아닌가! 마음이 훈훈해지고 유쾌해졌다. 이탈리아의 풍요로운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