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역습
에드워드 테너 지음, 장희재 옮김 / 오늘의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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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역습>, 매혹적인 제목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서문을 펼쳐들었다가 헉! 놀랐다. ‘테크놀로지와 테크닉이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는 무려 16페이지나 되는 서문이 나를 반겨주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와 테크닉의 다른 점을 이제껏 특별히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나... 서문과 제 1테크놀로지를 읽으며 저자의 꼼꼼한 통찰력과 엄청난 자료 수집력에 연신 감탄했다.

저자는 이 책의 집필목적을 독자들이 평범한 것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 눈을 뜨는 것’(19)이라고 했는데, 책을 덮고 주변의 물건들을 바라보는 느낌이 어쩐지 새롭다. 앞으로는 운동화 끈을 매면서도 이 단순해 보이는 신발끈 속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숨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될지도. , 이 오래된 테크놀로지는 신고, 벗고, 걷고, 뛰는 단순한 몸의 테크닉도 꽤 가치 있으며, 이로 인해 급진적인 혁명 대신 점진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16)을 보여주기도 한다지, 이렇게.^^;

 

어떤 목적에 맞게 환경을 변형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테크놀로지라면, 테크닉은 이런 변형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즉 구조물, 도구,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테크놀로지이고, 우리가 이를 사용하는 방법이 테크닉인 것. 이 책은 이렇게 테크놀로지와 테크닉이라는 두 단어를 통해 일상의 사물들을 촘촘히 바라본다. 태어나 가장 먼저 접하는 테크놀로지인 젖병부터 시작해서, 우리 몸의 맨 아래 놓인 발에 신는 조리와 운동화, 그리고 업무용 의자와 안락의자, 음악 건반과 텍스트 자판, 그리고 안경과 헬멧까지... 9개의 일상적인 물건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몸의 테크닉을 보완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중요한 혁신 중 일부는 사물의 발명보다는 새로운 사용법의 발전에 있었다는 점을 다채로운 예들을 통해 촤라락~ 명쾌하게 논증해내는 점이 이 책의 백미이다. 역사에 걸쳐 나타나는 테크닉과 테크놀로지 사이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이렇게 꼼꼼하게 추적해냈을까 신기할 따름이다(서문에 나와 있었던, 책의 집필을 도와준 이들의 이름 기나긴 목록에 절로 수긍이 가는 순간).

 

저자가 여러 차례 강조하듯이, 일상의 물건들을 통해 살펴본 테크닉과 테크놀로지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다. 새로운 사물은 행동을 변화시키지만, 그 변화는 항상 발명가나 생산가들의 예상대로만 진행되지는 않는 것이라는 얘기다. 만든 이들조차 자신의 발명품이 어떻게 쓰일지 완전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언뜻 모순되어 보이지만, 이런 예측불가능성덕분에 인류 역사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 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물론 테크놀로지를 좋지 않은 방향으로 사용해서 인류에게 재앙이 된 경우도 많았지만). 사람들의 행동 변화는 새로운 도구의 영감이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도구는 이어서 더 많은 혁신을 낳는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경이롭게 느껴진다. 역시 호모 파베르,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기에 인간인가.

 

그리고 이 책은 범상치 않은 서문뿐 아니라 후기도 참 충실하다. 특히 우리 몸이 새로운 테크닉들에 익숙해지면서, 다른 테크닉은 잊혀버린다.’(398)는 내용에 진한 공감을 느꼈다. 인류학자들에게 알려진 휴식을 취하는 다양한 자세는 의자에 앉는 자세로 대체되었고, 원래 건강을 위한 도구였던 안락의자는 게으른 생활의 위험을 경고하는 상징이 되었다. 타자기와 컴퓨터 자판의 발달로 개인의 독특한 서체는 사라져 가며, 헬멧은 위험을 회피하게 하는 것만큼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껏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앞으로도 테크놀로지와 테크닉은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할 수가 있고, 더 많은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본질을 형성하는데 테크놀로지가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지혜롭게, ‘인간답게테크닉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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