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의 힘 - 과거를 바꾸고 미래는 만드는
에노모토 히로아키 지음, 홍성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1.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상상, 누구나 해 봤을 것이다. 딱히 후회를 많이 하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요즘 들어 타임머신 가동률이 부쩍 높아졌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하는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시간을 사는 나를 한참 맛보다가 현재로 짠! 돌아오는 순간은 늘 쌉싸래하다.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강한 충격은 현재가 과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는 고정불변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임머신을 타고 신나게 여행을 떠났다가 현재로 돌아오는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대로 차곡차곡 과거의 시간들은 접혀져 내 마음속 어딘가에 보관되는 거라고 상상하곤 했다.

저자는 분명히 이야기한다. ‘과거를 바꾸기 위해 타임머신을 탈 필요는 없다. 자신의 시점을 바꾸면 과거도 바뀌기 때문이다’(13)라고. 기억은 과거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과거를 만들어내는 기능이라고 한다. 많은 심리 실험을 통해 기억을 상기할 때의 심리 상태에 때라 기억되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은 흥미진진하고 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따라서 지금 여기에서 떠올린 기억에는 지금의 심리 상태와 가치관, 욕구가 크게 관계되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1600년 전에 인간의 기억에 대해 간파한 내용을 소개해주는데 퍽 인상적이었다.

 

마음은 위장과 같고, 기쁜 일과 슬픈 일은 달콤한 음식과 씁쓸한 음식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일이 일어난 시점에서는 달콤함과 씁쓸함을 맛보지만, 기억이 되면 위 속으로 들어가 맛볼 수 없게 된다. 떠올리는 것은 일단 위에 들어간 음식을 되새김질로 꺼내는 것이므로 그때의 혀로 맛보게 된다.’(30)

 

뭔가 근엄하게만 보이던 교부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비유를 생각해 냈다니.^^ 당장 내 기억 속에 입력시켜 놓았다. 앞으로 우울한 기억이 덮칠 때면 이 비유를 떠올릴 것이다. 힘든 기억도 내가 튼튼한 위장으로 소화시켜 놓았으니, 되새김질할 때 쓴 맛을 느낄 이유가 없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나의 성장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2. 올해 목표인 프랑스어 능력시험에 도전한다고 처음 광고(?)했을 때, 주변의 반응 중 적지 않았던 것이 "그래... 열심히 해 봐. 근데 지금은 힘들지 않을까?"였다. 그렇다. 우리는 기억력이라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감퇴한다는 것을 상식쯤으로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나처럼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더 해보고 싶은 분야가 우수수 늘어나는 사람에게는 이런 괴상한 상식이 참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공부는 때가 있다"라는 말도 거기에 맞장구치는 듯 하고. 하긴 이 말은 십대 청소년들을 꽉 잡아놓는 데 더 일조하고 있지만(물론 공부에 때가 있긴 하다. '살아있을 때'만 해야 하니까).

 

"흥미로운 것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나빠진다는 믿음이 확산되어 있는 문화권에서는 실제로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저하된다. 그런데 그런 믿음이 확산되어 있지 않은 문화권에서는 나이에 대한 기억력 저하는 거의 볼 수 없다."(136)

 

오호라! 책을 읽으며 무릎을 쳤다. 앞으로 내가 새 우물을 팔 때마다 시비 거는 사람이 있으면 꼭 이 얘기를 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신념은 우리의 기억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기억력이 해마다 나빠지는 것을 당연하게 믿는다면 기억력은 착실하게 저하되고, 내가 노력한다면 나이가 들어도 기억력은 쉽게 감퇴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기억력은 단련되고 오히려 더 발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척 격려가 되는 이야기다.

 

3. 우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그런 잠재기억을 저자는 발상의 보물창고라고 부른다. 인생에서 우리가 경험한 것은 전부 잠재의식 속에 들어있는데, ‘매일 특히 신경 써서 반복적으로 행한 일이나 강렬한 경험’(203)은 특히 잠재의식 속에서 꺼내어 활용하기 쉽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 늘 강렬한 경험을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피곤해서 48시간 안에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매사 진지하게 마음을 담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잠재의식을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203)이란다. 그렇다. 매일매일 별 달라질 것 없는 일상이라 하더라도, 소중하게 마음을 기울여 마주하는 것이 내 잠재기억을 돌보고 성장시키는 방법인 것이다.

 

이 책을 앞으로 종종 꺼내보게 될 것 같다. 공부하다가 바쁘다는 핑계, 나이 핑계대고 게을러지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우울한 기억이 불쑥 튀어나와 한없이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되돌릴 수 없다고 여겨질 때. 내 발상의 보물창고라는 잠재기억을 잘 키워서 뭔가 건져내 보고 싶을 때... 지금도 현재는 내 과거를, 그리고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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