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말 하얀 말 단비어린이 그림책 2
차오원쉬엔 글, 치엔이 그림, 김선화 옮김 / 단비어린이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표지부터가 무척 강렬한 느낌을 주는 그림책. 하얗고 커다란 달을 배경으로 하얀 말과 검은 말이 뒷다리를 든채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전체적인 책의 그림들이 모두 무채색이고, 그림책답지 않은 듯한(?)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의 거친 선들과 무거워보이는 듯한 분위기... 독특하다. 그린이가 <루쉰 작품전집>의 목판화 작품들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는데(찾아봤다. 역시 강렬하고 멋지다), 이 그림책에서도 그런 판화적인 색깔이 물씬 풍긴다.

 

좋은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감동을 주고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법이다. 이 그림책 <검은 말 하얀 말>도 역시, 길지 않은 이야기지만 어른들에게도 묵직한 울림과 교훈을 주고 있다. 상황에 따라 대상을 대하는 것이 너무나 쉽게 변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진정한 우정이란 것에 대해, 우리가 살면서 소중히 여기고 끝까지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이와 함께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봄여름가을겨울 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검은 망아지와 하얀 망아지는 점점 멋진 말로 자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라에 전쟁이 터지고 집집마다 말 한 마리씩을 전쟁에 내보내야 하게 되었다. 고심하던 주인이 항아리 안에서 꺼낸 돌은 하얀 돌... 그렇게 하얀 말은 전쟁에 나가게 되었다.

특히 전쟁터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 뒤섞인 말과 사람들, 전쟁터의 혼돈과 공포가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운 하얀 말은 큰 공을 세워 유명해지고 영웅 대접을 받게 된다. 고향에 잠시 들른 하얀 말을 서로 보기 위해 사람들은 모여든다. 맛있는 먹이를 가져다주고, 한 번이라도더 쓰다듬어 보려고 하고... 그에 비해 밤낮으로 묵묵히 농사일을 계속하는 검은 말. 하지만 검은 말은 하얀 말의 성공을 배 아파하기는커녕, 그의 소식을 듣는 것을 기뻐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은 바뀌게 된다. 하얀 말은 전쟁터에서 심하게 다쳐 마을로 돌아와야만 했고, 처음에는 잘 돌봐주던 주인은 얼마지나지 않아 '쓸모없는 말'이 되어버린 하얀 말을 언제까지 보살펴줘야 하느냐고 짜증을 낸다. 농사일을 하는 검은 말에게는 좋은 먹이를 주면서도 하얀 말에게는 누렇게 시든 풀만 주고...

전쟁터의 영웅으로 추켜세우며 자랑스러워 할 때는 언제고, 자신에게 쓸모없어져 버렸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주인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세상 사람들의 대다수가 이렇지 않은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몰려들면서 추락할 때는 외면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나 자신도 그런 적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검은 말은 상황이 변해도 한결같은 마음을 잃지 않는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검은 말과 하얀 말이 서로 몸을 기대어 있는 장면인데, 검은 말이 하얀 말을 감싸듯이 부드럽게 핥아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둘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서로 변함없이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가 느껴진다.

검은 말은 욕심쟁이 주인이 하얀 말에게도 좋은 먹이를 주도록 나름의 시위(?)를 펼치기도 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하얀 말을 놀리며 괴롭히는 아이들을 겁주기도 하며 꿋꿋하게 하얀 말을 격려한다. 마침내 친구의 정성으로 인해 일어서고, 예전처럼 다시 뛸 수 있게 된 하얀 말.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으로 끝이 난다.

 

"... 전쟁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지요.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던 날, 검은 말과 하얀 말은 강가에서 같이 풀을 뜯었어요. 멀리서 바라보니 검은 말과 하얀 말은 희미해져 같은 색으로 보였답니다."(39-40쪽)

사람들이 일으킨 전쟁은 하얀 말에게 영웅의 지위를 주기도 하고, 부상과 추락을 경험하게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 변함없이 자신을 믿어주고 위해주는 친구 검은 말이 있었다. 부디, '같은 색'이 되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두 말에게 앞으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다가오는 사람들에 의해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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