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기낙경 지음 / 오브제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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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어느덧 끝자락으로 접어들고 있다. 시간을 붙잡고 싶은 충동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계절, “서른을 넘기고서야 생의 반짝임을 조금씩 맛보고 있다”는 책날개에 있는 저자에 대한 소개글 맺음말이 인상적이었던 책을 만났다.

 ‘서른’을 이야기하는 많은 책들이 있지만 이 책은 느낌이 참 다르다. 서른이면 이런 걸 갖추어야한다는 자기 계발서의 목소리도 아니고 여러 공간에서 만난 의자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행기도 아니고... 그동안 만났던 풍경들, 마음을 두드린 책들, 시들, 음악들, 영화들을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오래 서로의 속내를 알고 지내서 편안한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듯이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따뜻했다.

 의자에 관한 글들이니만큼, 저자의 의자에 대한 시선은 특별하다. 특히 오래된 의자, 시간의 향기를 품어 온 의자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오래된 의자에는 차의 품격이 있다’(154쪽)라는 그의 말에 끄덕끄덕하며 내 기억 속의 오래된 의자들을 불러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래된 의자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감성의 깊이가 느껴졌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

 “비록 서럽도록 외롭고 쓸쓸할 테지만 그 의자가 지닌 멋은 쉽사리 흉내내지 못한다. 그렇게 떠도는 것을 멈추고 정주한 의자는 함부로 끌어내지 못한다. 다만 슬며시 앉아볼 뿐, 다만 슬며시 바라볼 뿐, 은은한 의자 향을 맞아볼 뿐이다. 무릇 시간의 옹이가 박힌 것들은 저마다 차향이 난다.”(155쪽)

 시겨 로스(Sigur Ros)의 음악을 들으면서,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읽었던 에세이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저자가 이 아이슬란드 밴드의 노래를 ‘음악이 주는 위로는 이렇듯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음의 흐름만으로도 가만히 마음으로 와 닿는 때가 있다’(121쪽)라고 말했듯이, 이 책은 갓 서른을 넘긴 나를 가만가만 마음으로 위로해 주는 느낌이었다. 가을과, 음악과, 차 한 잔의 여유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책.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공감할 수 있었고,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느낌이 좋았다.

“뒷모습으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법, 그 진실이 따뜻하고 소박한 것이기를 바라본다. 의자의 그것처럼, 누구나 다가가 앉을 수 있는, 거기 앉아 내려앉은 햇살과 잠시 놀고 갈 수 있는 그런 뒷모습을 염원한다.”(150쪽)

 이십 대 때의 내가 남들이 주목하는 나의 앞모습에만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나의 뒷모습에도 마음을 나눠주고 싶다. 저자가 말하듯이 나의 뒷모습이 말할 내 삶의 진실은 어떤 것이 되어가고 있을까? ‘내려앉은 햇살과 잠시 놀고 갈 수 있는’ 다정한 뒷모습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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