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는 문턱 - 총력전하 한국-타이완의 문화 구조 아이아 총서 102
한국-타이완 비교문화연구회 지음 / 그린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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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타이완에서 만난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타이완은 판타지(幻・まぼろし)로 존재한다"고.

타이완 섬은 뚜렷한 모양새로 존재하나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우리'의 범주는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타이완에 살게 된 경위도 다르고, 민족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저마다 가진 역사가 다르다.

그렇다면 분단 이후 한국은 '저항' 혹은 '반일' 정신 아래 과연 통합되었는가? 그랬다면 어째서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타이완은 과연 '친일'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왜 이러한 인식을 갖게 되었을까? 당연하게 생각되던 그것의 '부자연스러움'을 언젠가부터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런 의심에 조금은 속 시원한 느낌을 가져다 줄 이 책은, 협력과 저항의 틀로는 설명될 수 없는, 식민지를 살았던 사람들의 욕망이나 세계관 같은 것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전쟁 스펙터클'의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 'OO인-되기'를 무의식 중에 연기했던 정체성 문제, 당시의 사회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실제로 가졌던 불만을 엿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조선(한국)과 타이완의 일본 식민지 경험이라는 '같은' 사실과 그 안에서 벌어진 '다른' 경험들을 당시의 '문화'라는 코드를 통해 읽어낸다. 타이완-일본, 조선(한국)-일본이라는 식민 종주국과 식민지의 선긋기가 아닌, 식민지(한국, 조선)-식민지(타이완)를 나란히 놓고 바라본다는 점이 이 책이 귀하다고 생각되는 점이다(마치 <옥희의 영화>의 영화처럼;;). 
  
이 책의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당하는' 입장이 아닌 '하는'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차별화와 동화를 상황에 따라 변주했던 지배 논리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게 되는데, 1930년대, 전쟁 준비기에 돌입하며 일본이 조선에서 황국신민화 정책과 지원병 제도를 시작했을 때 조선인의 참전이 정치에 대한 참여 요구로 이어질 것을 경계하거나 창씨개명 실시에 대한 지배층 내부의 비판에 관한 대목들이 그 예다.

그리고 "주된 담론 생산자들에 의해 평평하게 획일화되고 균질화되어버린 하위 주체들의 흔적을 복원"하고, 동시에 위와 같은 정책/공적 이념을 드러내면서 그 둘 사이의 길항 구도를 드러내는 것 또한 이 책의 시도일 것이다.

한국 측 저자인 김예림은 한국과 타이완을 연결하는 구도 설정을 통해 "관계의 다각화와 관계 맺음의 다면화를 통해 공통의 기억과 체험을 나누어 가진 서로 다른 집단들의 소통이나 상호 발견을 자극"하고, "과거를 안고 있는 현재와 미래, 과거를 향하는 현재와 미래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타이완 측 저자인 류수친(柳書琴)은, 조선은 "전전(戰前)에는 '무국가 민족'이 되었다가 전후에는 '분단체제'를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타이완은 "민족 전체가 식민 상황에 편입된 것도 아니었고 또 국가 체제로 포스트 식민 상황에 처하게 된 적도 없"다며 두 식민 경험 국가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한다.  

특히, 소설을 통해 세계화를 앞서 경험한 두 식민도시(하얼빈과 타이베이)를 비교한 류수친의 글이 인상적인데, 식민화와 세계화를 동시에 겪으며 지역민의 삶이 어떻게 휩쓸려 갔는지 읽을 수 있다.  "사실 북만주 작가들의 비판적 관점은 세계 체계에서의 제국/식민지의 차별 현상과 주권의 파괴 및 국가 기능의 퇴화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식민지의 민족적 모순(식민자 대 피식민자) 혹은 현지 사회 내부의 모순(자산계급 대 무산계급)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116쪽).

안타까운 것은 1930년대의 하얼빈에 관해서 쓴, 류수친의 이 문장이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지금의 현실이다.

 

 

 

+) 사변적 이야기  

이십대 초반, 일상적으로 겪는 일들 혹은 상식들이 갑갑하게 느껴져 억지를 부려 20명의 친구들과 함께 비행기를 탔다. 그때의 해방감이 그립고 그리워 다음해에 다시 날아갔다. 전년도와 같은 중국의 동북지역이었으나 이번에는 혼자 살았다. '팀'이라는 울타리 없이 접촉한 최초의 '외부'였는데, 막상 겪어보니 늘상 그 외부(혹은 경계)를 느끼며 사는 게 생각보다 쓸쓸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이방인이다'라는 느낌을 끊임없이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는 사소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그저 피곤했던 것이다. 그러나 반 년 정도를 지났을 때부터 그들과 나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이나 공감대를 느끼기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것이 크게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흔히 말하는 '이미지'나 타자화를 의심하고 의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에게 무척 따뜻했던 중국의 친구들이 간혹 타이완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타이완에 대해 당시 그 친구들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치 '서울 깍쟁이'를 보는 시선이랄까. 타이완이 일본-미국과 친하다는 것도 미운털이 박힌 이유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타이완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해줄 수 없었다. 아는 게 없었다.

2008년 일본어를 배우고 있을 때 나와 함께 있어준 이들이 타이완 학생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일본 문화를 즐기는 80년대생들이었다(1949년에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과 구별되는 본성인本省人이고, 굳이 구분하자면 민진당民進党을 지지하는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이 아이들의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역사, 그딴 것'은 중국에 대한 혐오감, 한국에 대한 불쾌감, 일본에 대한 열등감이나 선망에 대한 근거로 사용될 때가 많다. 그래도 나와 친해진 덕분에 한국에 대한 불쾌감은 '이제 없다'고 했는데, 초반에는 비꼬는 뉘앙스의 질문도 많이 받았다. 

도대체 이 모든 것들이 왜 머릿속에 자리잡고 일상 속에서 사람들을 조종하는 걸까? 왜 나는 어디서든지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 걸까? 나는 그 국가에 대한 이미지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에 대해 질리고 말았다. 그러나 '타자'와 부대끼고 살면서 공감대를 느끼고 크게 위로 받았던 2003년의 경험도 잊지 못한다.  

그런 것들이 작용했는지 올해도 기어코 타이완에 갔고, 가기 전에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이러한 연구들을 지지한다. 평평하게 쓰여진 역사를 입체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매끈하게 쓰여진 역사, 그 밑에 숨겨진 다양한 층위의 '잡음들'에 귀 기울일 때, 조금 더 당시의 현장에 가까워질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자기가 '믿고 싶은' 진실이 있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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