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인간의 시간 창비시선 152
백무산 지음 / 창비 / 199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용주라는 시인이 있다. 그의 시집 '바람찬 날에 꽃이여 꽃이여'라는 시집은 그의 나이 열 여섯에 내 놓은 시집이다. 대학을 다닐 때, 사학을 전공하던 그와 같은 하숙집에서 생활을 했던 기억이 있다. 백무산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그가 대표적인 노동자시인이라는 이유 때문인 지, 박용주와 더불어 내게는 역사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시들로 기억된다. 한참 생각이 많던 시절, 내가 내 스스로의 삶의 선택방법을 이렇게 규정한 적이 있다. 난 흰색과 검은색 중에 하나만을 택한다. 그러나, 회색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회색의 끝을 선택하리라. '경계'라는 시를 읽다 보면, 궤변 같지만, 시인이 담고 있는 경계의 의미와 내가 생각했던 회색의 끝 사이에는 일맥상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 하다. 칼날 같은 경계,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변화무쌍한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서 있는 바로 이 곳이 아닌가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곳이 멀지 않다 민음의 시 80
나희덕 지음 / 민음사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께서는 글쓰기에 관심이 있던 나에게 공책을 한 권 사 주시면서 '조약돌'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다. 조약돌처럼 다져지고 다져져 좋은 글을 쓰라는 의미이기도 했고, 원만한 인간 관계(갑자기 찬기파랑가가 생각나네...)를 유지하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희덕의 '뜨거운 돌'이라는 시는 나의 지나온 삶들을 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작품이었다. 단 한 번도 뜨겁게 끌어안지 못한 이십대,도 지나고 화상(火傷)마저 늙어 가기 시작한 삼십대,가 된 나... 나이를 먹어 갈수록 예전에 지녔던 열정과 뜨거움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순수함도 잃어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윤동주가 이야기하고 있는 부끄러움의 미학도 이 작품과 통하고 있는 듯 하다. 나도 부끄럽다. 하지만, 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뜨거운 돌' 하나를 꼭 쥐고 죽을 때까지 순수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뼈아픈 후회 외 - 1994년 제8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지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199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시집에 들어 있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다림의 마음이 애틋하게 잘 드러나고 있다. 이토록 기다림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라는 시가 함께 떠오른다. 이 시에서도 사랑과 기다림을 주된 제재로 삼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늘 새롭게 만들어지는 기다림을 통해 극복해 나가겠다는 사랑의 굳은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한 때 나도 누군가를 생각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렇게 시를 썼던 기억이 있다. 사랑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는 그 말의 의미를...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윤도현의 '널 만나면'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노래 제목이 맞는 지는 모르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이 시를 읽고 있으려니 온통 머릿 속에 '사랑'이란 글자들이 지나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운 여우 창비시선 163
안도현 지음 / 창비 / 199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도현은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로 처음 만났었다. 또 중등학교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린 '우리가 눈발이라면'이라는 시로도 그를 만났었다. 이 시의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이라든지 '잠 못 든 이의 창문가','그 이의 깊고 붉고 상처'등에서 가난과 궁핍으로 소외된 삶이나, 양로원이나 고아원의 삶, 독재 정권 하에서의 억울한 탄압을 받은 삶 등을 살펴 볼 수 있었고, 시인이 그러한 삶들에 대해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겨울 강가에서'도 눈발들이 나오고 있다. 어린 눈발들이 강물 속으로 뛰어내려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이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안도현의 따뜻함과 순수함을 잘 드러내 주는 듯 하다. 하지만, 이렇게 예쁜(?) 시의 이면에는 시대 현실과 관련지어 절망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의지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설주의보 - 1982 제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18
최승호 지음 / 민음사 / 199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승호의 '인식의 힘'이란 시를 접하기 전에 나는 도마뱀, 하면 시인 최돈선을 먼저 떠올렸다. 시인 최돈선은 나의 중학 시절 국어선생님이셨던 분으로, 후에 고등학교 시절 교지 편집부 활동을 하면서 원고를 청탁드렸던 적이 있다. '나는 다만, 뜻 없이 기어갈 뿐이다'라는 제목의 그 글에는 문학을 사막에, 작가를 도마뱀에 비유하고 있다. '나는 도마뱀이다. 나는 꿈꾸는 먹이를 찾아 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기어 가야 하는 도마뱀이다. 사막은 끝없이 멀다. 어떤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최승호의 시 '인식의 힘'. 그 부제로 '절망한 자는 대담해지는 법이다-니체'를 가지고 있는 이 짧은 시는 절망에 대한 인식이 곧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앞서 소개한 끝없이 먼, 희망도 없는 사막을 작가가 도마뱀처럼 뜻없이 기어간다고 한 것은 결국, 절망을 바로 인식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절망 뒤에는 희망이라는, 도약이라는 다른 무언가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인식'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갑자기 고등학교 시절 교지편집부를 했을 때, 우리 학교의 교지를 '인식의 교지'라 명명하고 그럴싸하게 의미를 부여하며 침을 튀겼던 귀여운(?) 추억이 미소를 머금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