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약속이 있기 전

몇 시간 일찍 나갈 때가 있었다.

그럼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서점으로 향한다.

편하게 앉기 좋은 곳에서 무심코 집어든 책을 읽는다.

조금 읽다 말기를 반복하며 몇 권의 책을 훑어 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몇 시간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빠질 때가 있다.

나에게 '에쿠니 가오리'작가의 소설이 그랬다.

한번 읽으면 빠져드는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즐겁게 살자, 고민하지말고>,<벌거숭이들>..

에쿠니 가오리는 소설로 이야기하는 작가였다.

그런 그가 에세이를 내었다.



설은 작가의 작품을 읽는 느낌이라면 에세이는 정말로 작가와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

그녀의 읽기와 쓰기에 대해서,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과 꽃에 대해서.

에쿠니 가오리의 팬이라면 작가의 취향까지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다.

나는 작가가 술을 좋아하는 것과

철 지난 CD가게를 찾느라 돌아다니는 휴일을 알 수 있었고

시시한 농담을 건넬 줄 아는

에쿠니 가오리의 사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글자에는 질량이 있어 글자를 쓰면 내게 그 질량만큼의 조그만 구멍이 뚫린다. 가령 내가 안녕이라고 쓰면, 안녕이라는 두 글자만큼의 구멍이 내게 뚫려서, 그때껏 닫혀 있던 나의 안쪽이 바깥과 이어진다. 가령 이 계절이면 나는, 겨울이 되었네요 하고 편지에 쓸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그때껏 나의 안쪽에만 존재하던 나의 겨울이 바깥의 겨울과 이어진다.

쓴다는 것은, 자신을 조금 밖으로 흘리는 것이다. 글자가 뚫은 조그만 구멍으로.'

_52p

'쓴다는 것은 시간을 약간 멈추게 하는 것. 멈춰진 시간은 거기에 계속 머문다.'

_53p

쓴다는 것은 질량이 있어

그 질량만큼의 조그만 구멍이 뚫려 내 안에 있던 것과 바깥이 연결된다는

작가의 '씀'에 대한 이 구절이 와닿았다.

쓰는 것도 그렇지만

읽는 것 또한 그 글자만큼의 질량을 느끼며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읽음으로써 내 세계의 그것을 떠올리기도 하고

또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들이 그려지기도 하니까.


'여름날의 해질녘은 지금까지도 역시 특별하다. 불쑥,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의지할 곳 없는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 든다.'_197p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읽기가 편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에쿠니가오리의

일기같은 이야기를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아직 읽지 않았던 에쿠니가오리의 책들과

그녀가 '읽은 책'으로 소개해준 책들이 궁금해져 나는 다시 책을 집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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