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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약속이 있기 전
몇 시간 일찍 나갈 때가 있었다.
그럼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서점으로 향한다.
편하게 앉기 좋은 곳에서 무심코 집어든 책을 읽는다.
조금 읽다 말기를 반복하며 몇 권의 책을 훑어 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몇 시간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빠질 때가 있다.
나에게 '에쿠니 가오리'작가의 소설이 그랬다.
한번 읽으면 빠져드는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즐겁게 살자, 고민하지말고>,<벌거숭이들>..
에쿠니 가오리는 소설로 이야기하는 작가였다.
그런 그가 에세이를 내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711/pimg_7194521622603325.jpg)
소설은 작가의 작품을 읽는 느낌이라면 에세이는 정말로 작가와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
그녀의 읽기와 쓰기에 대해서,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과 꽃에 대해서.
에쿠니 가오리의 팬이라면 작가의 취향까지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다.
나는 작가가 술을 좋아하는 것과
철 지난 CD가게를 찾느라 돌아다니는 휴일을 알 수 있었고
시시한 농담을 건넬 줄 아는
에쿠니 가오리의 사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글자에는 질량이 있어 글자를 쓰면 내게 그 질량만큼의 조그만 구멍이 뚫린다. 가령 내가 안녕이라고 쓰면, 안녕이라는 두 글자만큼의 구멍이 내게 뚫려서, 그때껏 닫혀 있던 나의 안쪽이 바깥과 이어진다. 가령 이 계절이면 나는, 겨울이 되었네요 하고 편지에 쓸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그때껏 나의 안쪽에만 존재하던 나의 겨울이 바깥의 겨울과 이어진다.
쓴다는 것은, 자신을 조금 밖으로 흘리는 것이다. 글자가 뚫은 조그만 구멍으로.'
_52p
'쓴다는 것은 시간을 약간 멈추게 하는 것. 멈춰진 시간은 거기에 계속 머문다.'
_53p
쓴다는 것은 질량이 있어
그 질량만큼의 조그만 구멍이 뚫려 내 안에 있던 것과 바깥이 연결된다는
작가의 '씀'에 대한 이 구절이 와닿았다.
쓰는 것도 그렇지만
읽는 것 또한 그 글자만큼의 질량을 느끼며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읽음으로써 내 세계의 그것을 떠올리기도 하고
또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들이 그려지기도 하니까.
'여름날의 해질녘은 지금까지도 역시 특별하다. 불쑥,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의지할 곳 없는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 든다.'_197p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읽기가 편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에쿠니가오리의
일기같은 이야기를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아직 읽지 않았던 에쿠니가오리의 책들과
그녀가 '읽은 책'으로 소개해준 책들이 궁금해져 나는 다시 책을 집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