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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 -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 다섯 여자 이야기
핼리 루벤홀드 지음, 오윤성 옮김 / 북트리거 / 2022년 2월
평점 :
‘잭 더 리퍼’는 뮤지컬을 보기 시작한 즈음부터 캐스팅을 바꿔가며 꽤 자주 본 뮤지컬.
10년 전 처음 봤을 때도 상당히 폭력적이며 범죄자를 미화한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창작은 창작일 뿐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강산이 한번 변하는 10년, 사회의 통념과 개인의 사고방식은 훨씬 더 급하게 바뀌기 마련. 잭 더 리퍼가 왜 사람을 죽였는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왜 그들이 죽었는지, 정말 죽어 마땅한 여자들(매춘부) 이었는지, ‘더 파이브 –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 다섯 여자 이야기’에선 한껏 미화된 범죄자의 그늘에 가려진 이야기를 한다.
영국이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 불리던 빅토리아 시대, 한껏 팽창하는 수도 런던엔 한 조각의 햇살조차 들지 않는 거리가 있었다. 런던의 치부, 속살, 드러내고 싶지 않은 허물, ‘화이트 채플’에서 다섯 명의 여자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자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언론에선 매춘부니 연쇄 살인이니 한껏 자극적인 기사를 뽑아냈지만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 다섯 명 중 제각기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온 개인이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화이트 채플에서 살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름을 잃고 말았다.
주목해야 할 점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누군가의 딸, 자매, 연인, 엄마로 평범하게 살아온 그들이 왜 매일매일 하룻밤 몸 뉘일 곳을 찾아 헤매는 신세가 되었는가, 이다. 저자는 꼼꼼한 자료 조사를 통해 다섯 명의 삶을 철저하게 되살려낸다. 그 과정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그림자가 낱낱이 드러난다. 다섯 명은 잭 더 리퍼에게 살해당했지만 결국 여자는 남자의 부속물이었던 시대에 살해당한 것이다. 알코올중독자였든, 매춘부(실상은 아니지만)였든, 이혼한 여자였든 어느 시대든 어디서든 죽어 마땅한 사람이란 없다.
19세기 영국으로부터 1백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몇 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의 밤거리는 안전하지 않다.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희생자를 잊지 말아야할 이유다.
출판사 인스타그램 이벤트를 통해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