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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일
조성준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9월
평점 :
저자가 3년 동안 천착한 주제, ‘예술가의 일.’ 이쯤 되면 저자도 이미 예술가의 일을 하고 있으며 이 한 권의 책은 훌륭한 문학작품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책을 다 읽고 너무 좋아서 저자가 3년 동안 쓴 기사를 몽땅 찾아 읽었다. 그 중 서른세 명을 고르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술이면 미술, 클래식이면 클래식, 영화면 영화 등 각 분야의 인물만 다룬 책은 이미 여러 권 읽었지만 ‘예술가의 일’의 스펙트럼은 이 모두를 포함하고 훨씬 뛰어넘는다. 글램록의 아이콘 데이비드 보위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재일 건축가 이타미 준, 수수께끼에 싸인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를 한 책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읽는 내내 박학다식한 저자에게 조금 질투가 날 정도였다.
이 책을 읽고 싶어진 결정적 이유는 바로 장국영 때문. 2003년 4월 1일의 하루가 지금도 생생하다. 대학 새내기, 하루 종일 시답잖은 장난을 치며 웃고 떠들다 친구의 문자를 받았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바로 뉴스 검색을 하진 못했고 친구에게 야~ 사람 목숨 갖고 장난치는 거 아니야~ 이러고 말았는데, 친구는 정색을 하며 진짜라며, 집에 들어가서 뉴스 보라고. 그렇게 내 소년기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던 배우는 세상을 떠났고 난 매년 만우절이 되면 그가 나온 영화를 본다. ‘중경삼림’과 ‘아비정전’은 도대체 몇 번을 본건지... 4백 쪽이 가까운 책에서 장국영에게 할애된 분량은 열 쪽 정도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많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위안이었다.
또 한 가지 특이할만한 점은 책에서 다루는 여성 예술가가 열두 명이나 된다는 점! 세상의 반은 여자인데 그동안 우리는 여성 예술가에게 얼마나 인색했는지. 조지아 오키프, 천경자, 수잔 발라동, 프리다 칼로 등 익숙한 이름은 든든했고 박남옥, 다이앤 아버스, 피나 바우슈 등 새로운 이름은 반가웠다. 여성 예술가라서가 아니라 그저 위대한 예술가로서 그들의 성과가 정당히 평가받는 시대가 된 것 같아 참으로 감개무량. 아, 비 오는 밤에 정말 잘 어울리는 독서였다.
네이버 '문화충전 200' 카페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