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죄책 - 일본 군국주의 전범들을 분석한 정신과 의사의 심층 보고서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 또다른우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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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 국가 일본의 참전 군인들을 인터뷰하면서 저자는 그들이 과연 인간으로서 죄책감을 느끼는지 끈질기고 집요하게 물었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지리적 위치와 천황과 쇼군의 2중 체제 속에서 책임지지 않는 문화와 또한 수십 년째 천문학적 금액을 유대인들에게 배상하고 있는 독일을 보면서 자신들도 저런 상황에 빠질까 두려움에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이 죄책감, 후회, 슬픔, 절망, 공포 같은 전쟁에서 보편적이라고 할 만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는 내용에 전율했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 조종사가 포탄을 한 도시에 떨어뜨려 5천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 조종사는 단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버튼을 눌렀을 , 하늘에서 지상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그 지역을 떠났고 나중에야 자신이 누른 버튼으로 인해 한 도시가 초토화된 것을 알고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같은 공간 땅에서 일어난 일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명령 수행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죽었기에 그 조종사는 죄책감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이 책에서도 나오듯 2차대전 독일에서조차 상관의 유대인 집단학살 명령에 많은 수의 군인이 수행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일본군은 수많은 민간인을 죽이면서 죄책감이나 후회, 절망감 등 내적 갈등을 겪지 않았다. 명령 없이도 민간인을 죽이고 식량을 강탈하고 성범죄를 저질렀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살인마가 되고, 패전 후 본국에 돌아와서도 수많은 군인이 우익활동을 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명령 수행으로 정당화하기 급급했다.

일본군에 의한 대량 학살을 겪으면서 중국은 일찌감치 일본군의 습성을 깨우쳤을 것이다. 그래서 따뜻한 햇살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전법을 썼다. 전범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그들에게 가혹한 보복 대신 정성을 다해 돌보고, 그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기를 기다렸다.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포로를 대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자기 가족과 친척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포로들을 수용소에 있는 간수들과 간호사, 의사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삭인 채 그들을 보살폈다. 그래서 전범들은 당황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은 사형 직전이라고 생각했기에, 수용소 직원들의 태도와 말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중국 당국과 수용소 직원들은 더더욱 일본인들과 자신들은 다름을 보여줬다. 자신들은 조밥에 배춧국을 먹으면서도 일본군에게는 쌀밥과 국과 반찬 3~4가지를 곁들여 먹이고, 찬밥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며 갓 지은 밥을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자신들의 원수들을 눈앞에 두고 그런 배려를 한 것도 놀랐지만, 얼마나 진심으로 일본군의 죄책감과 사죄를 원했는지 느껴졌다.

수용소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탄바이서를 작성하며 전범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각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범죄를 사회극(sociodrama)으로 만들어 수용소 관계자들과 동료 전범들 앞에서 연기함으로써 개인의 성찰과 후회에서 더 나아가 객관화시켰다.

 

저자와 인터뷰한 전범 중 쓰치야 요시오와 오노시타의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극빈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가족 간의 온정 속에 자란 쓰치야 요시오는 처음 포로를 고문하고 혐오감을 느꼈다. 그러나 차츰 혐오감, 죄책감 등의 감정이 사라지고 기계적으로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도록 방치했다. 유능하다는 인정받고 그에 따른 계급 상승이 인간적인 감정을 앗아가 버렸다. 이 사례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가 수용소에서 독방에 갇혀 있던 1달 동안 자신이 희생시킨 사람들을 명백히 같은 인간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에 의해 독방에 갇혔던 중국인들이 맨손으로 새긴 글귀들을 보면서, 가족과 삶에 대한 애착,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극심했을 그들의 심정을 목격한 것이다. 희생자들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다른 군인들과는 달리 그는 희생자들을 직접 고문하고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 목소리, 눈동자에 새겨진 절망과 분노를 기억하고 있었다.

가난했지만 정이 넘쳤던 가족 속에서 자란 그는 인정받고, 신분 상승할수록 인간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자기 가족의 모습과 똑같은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인간성을 되찾았다. 그래서 그는 수용소 부소장의 평온한 뒷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행위에 공포를 느낀 것이다.

오노시타의 경우는 쓰치야와 반대였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빨리 입대해서 빨리 제대하자라는 마음으로 자원입대했다. 그곳에서 일본군의 잔혹성을 목격하고 혐오감을 느껴 현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을 같은 인간으로서 대했다. 군인연금도 거부하고 산 그였지만, 그도 민간인 포로를 죽였고, 현지인들의 식량을 약탈했다.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끝끝내 고백하지 못하고 저자에게 속삭이듯 자백했을 뿐이다. 그는 죽인 이를 기억했다. 그 한 번의 살인이 그를 오랜 시간 옭아맨 이유는 자신이 죽인 포로의 어머니가 아들을 찾으러 왔을 때 모르겠다며 시치미를 떼고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죄책감과 후회는 있었으나 사죄가 없었다. 그저 자신은 다른 일본군과는 달리 인간적이었다고 자위하고 살았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고백은 공허한 울림이 되어버렸다.

 

일본인들은 지금도 자신들을 원자폭탄의 유일한 피해국으로 포장하고 산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전범국의 국민이다.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역사책에서 빼버렸지만, 피해국의 국민은 그들의 잔혹했던 행위를 역사책에서 배운다. 일본 정부는 피해국들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별세하는 날만을 기다린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순간 일본 정부와 우익은 전쟁에 참여했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자국 군인들의 죽음도 기다린다고 느꼈다. 증인들이 사라진다고 믿는 것이다. 얼마나 무기력하고 비열한 태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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