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
백사혜 지음 / 허블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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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빛을 얻기 위해 불붙인 이들의 찬란하고 잔혹한 우주
빛나지 않아도 괜찮은 존재들의 마지막 밤,
그것이야말로 이 세계가 놓쳐선 안 될 이야기였습니다.

🔖“삶의 끝은 시적이지 않다. 우리는 그 끝을 시로 바꾼다.” (작가의 말 중)
이 소설집 전체가 시가 되어야 할 삶과 죽음의 이야기라는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신이 이 책을 끝내 덮는 순간, 어쩌면 이렇게 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살아내기 위해 죽는 게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
바로, 이 밤을 지나온 당신처럼.




📌“더는 죽듯이 살지 않을 거야. 살아가듯 죽을게.”

백사혜의 연작소설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는 단언컨대,
이 시대의 가장 강렬한 SF-판타지 문학적 데뷔 중 하나로 기억될 작품입니다. 삶과 죽음, 사랑과 소멸, 권력과 저항이 부딪히는 이 우주의 서사는
그 어떤 찬란한 별빛보다도 뚜렷하게 우리 현실의 그림자를 비춥니다.
그것은 사랑과 존엄, 기억과 책임에 관한 이야기이고,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 자체에 대한 메타적 고찰입니다.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는 자본과 권력이 장악한 미래 우주를 배경으로, 인간성과 존재의 의미를 묻는 여섯 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된 SF동화판타지입니다.
각기 다른 인물들이 폭력과 억압의 시대 속에서도 소멸을 무릅쓰고 사랑하고 저항하며 빛을 남깁니다. 이 작품은 SF적 상상력에 판타지적 서정성과 사회비판을 섬세하게 접목하여, 읽는 이의 감각을 날카롭게 자극하는 서사적 실험이었습니다.


백사혜는 2020년대 중후반 한국 SF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 작가입니다.
단편 "궤적 잇기"로 문윤성SF문학상 우수상,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로 2023 한국SF어워드 단편 대상을 수상하며 일찍부터 장르문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백사혜는 장르적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SF와 동화, 판타지, 사회소설적 시선을 한데 엮는 독창적 세계관을 구축해왔습니다. 그의 글은 거대담론이 아니라 작고 약한 존재들의 감정과 결단에 집중하며, 무너짐 속에서 반짝이는 인간성을 포착합니다. 이번 연작소설은 그의 데뷔작 세계관을 확장한 첫 번째 본격 단행본으로, 장르와 감성의 접점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매우 인상적인 첫인상을 남깁니다.


이 소설집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배경 개념이 있다고 사료됩니다. 책의 배경은 극단적 계급사회로 변한 미래. ‘영주’라는 재벌이 지구를 장악한 세상은 현대 자본주의의 풍자이자 경고로 읽힙니다. 또한 과학기술의 진보로 인해 인간은 우주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개척단은 지구의 신분제를 거부하며 독립합니다. 이는 식민지-중심의 제국주의 구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처럼 장르적 배경 외에도, 이 작품은 ‘누가 인간인가’, ‘삶은 왜 존엄한가’를 묻는 철학적 성찰이 기반에 깔려 있습니다. SF 초심자도 접근할 수 있지만, 감정적으로 예민한 독자일수록 더 큰 공명을 경험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빛나지 않는 사람이 되자.”
이 문장 하나가 작가의 의도를 함축합니다.

작가는 누구도 보지 않지만 끝까지 빛을 간직한 존재들에 주목합니다.
그들이 폭력의 구조에 희생되고, 잊히고, 가려지더라도 — 그 마지막까지 자신을 잃지 않은 태도는 결국에는 인간이라는 종이 지켜야 할 가장 근본적인 품위임을 강조합니다.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는 존엄이라는 불빛을 꺼트리지 않는 자들을 위한 송가입니다. 종말이 닥친 세계에서도, 이야기의 힘으로 저항하고 사랑하고 존재했던 이들의 눈부신 폐허를 그리고자 합니다.


이 소설집은 여섯 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것들이 하나의 유기적인 세계관 속에서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마치 ‘장대한 장편소설의 파편’을 읽는 듯한 깊이를 선사합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끝까지 빛을 안고 죽는”(김초엽 추천사 중)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꽃잎처럼 짤막한 순간을 살아갈 뿐인”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순간을 자신만의 색으로 태워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꽃잎처럼 사라질 운명이라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다면”

연작의 첫 편이자 가장 인상 깊은 '우리는 모두 마른 꽃잎과 같다'는
이 책의 감정적 톤을 선명히 드러냅니다.

📌“유리를 들춰내면 곧장 바스러져 없어질 말린 압화를 만드는 것과 같은 짓을.”

이 비유는 이 책 전편에 걸쳐 반복되는 핵심 정서, 즉 “무의미해 보이는 것을 끝까지 붙드는 존재들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사랑도, 기억도, 존재도 쉽게 지워지는 세계에서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목소리.
그것이 이 책이 가장 잘 다루는 감정의 결입니다.

📌“왕관을 위해 불붙이는 자, 빛을 얻으리라. 그러나 왕관에 불붙이는 자, 빛이 되리라.”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는 바로 ‘소멸 속의 의미’입니다.
‘왕관을 위해 불붙이는 자는 빛을 얻고, 그러나 왕관에 불붙이는 자는 빛이 되리라’는 대사에서 드러나듯, 이 소설은 단지 저항의 서사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서 '존재의 의지'와 '남김'이라는 더 깊은 층위로 나아갑니다.

이처럼 상징적이고 시적인 문장은 이야기의 결을 더욱 촘촘히 엮습니다.
백사혜는 독자의 가슴을 강하게 흔드는 “문장력”을 가진 작가입니다.
그녀는 길지 않은 문장으로, 잔혹하고 슬프고도 아름다운 세계를 지어 올립니다.
이 작품을 단순하게 SF, 혹은 판타지 장르로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유리를 들춰내면 곧장 바스러져 없어질 말린 압화를 만드는 것과 같은 짓을.”

'우리는 모두 마른 꽃잎과 같다'에서는 사랑이 상품이 되고,
감정이 값으로 환산되는 미래 속에서도 마른 압화처럼 덧없는 감정 하나에 고개를 숙이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사랑의 쓸쓸한 숭고함’을 이야기합니다.

📌“아기는 지금 재배양되고 있어요.” “폐기 처분됐어요.”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에서는 인간의 돌봄조차도 매뉴얼화된 세계에서, 한 생명을 지키고자 애쓴 존재의 분투가 슬프도록 처연하게 그려집니다. ‘재배양’과 ‘폐기’의 개념은 너무 차갑고도 익숙해서,
현실의 어느 복지 시스템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사냥은 그냥 사냥이고, 피는 그냥 피였다.”

이 소설집의 가장 뛰어난 점은 ‘잔혹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담아낼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쥬벵 씨의 완벽하지 못한 하루'처럼 일상적인 디스토피아 속에서 웃음과 절망을 공존시킬 줄 아는 능력이며, '피가 시가 되지 않도록'에서 사냥의 순간조차 아름다움이 아닌 책임으로 풀어내는 윤리적 감각입니다.

📌“남은 건 이야기밖에 없잖아요.”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이야기’ 자체로 수렴됩니다. 문자와 기록, 서사의 힘을 다룬 메타적인 요소들이 이야기를 ‘남기는 행위’로 격상시킵니다.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는 읽는 이로 하여금, 누군가를 위해, 어떤 가치를 위해, 소멸을 감수하는 용기에 대해 묻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가장 간절히 필요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더는 죽듯이 살지 않을 거야. 살아가듯 죽을게.”

이 문장은 곧 이 책의 세계관을 꿰뚫는 문장입니다.
소멸의 운명 앞에서도 끝끝내 사랑하고, 지키고, 살아가려는 존재들.
그들의 밤은 세상 누구도 보지 못했지만, 책을 읽은 이는 분명히 볼 것입니다.
그 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이 소설이 놀라운 점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우주와 전쟁, 계급과 권력이라는 장대한 배경을 두고도,
독자의 시선을 끝끝내 “한 사람의 마음”으로 끌어내린다는 것.
이 소설은 거대한 SF 서사이기 전에,
결국 누군가를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또한 작가의 글쓰기는 복잡한 과학적 설명이나 거대 담론을 들이미는 대신,
동화 같은 설정 안에 고통과 진실을 슬며시 숨겨놓는 방식을 택합니다.

📌“쥬벵 씨는 납작 엎드려 오열하고 싶다는 충동을 겨우 이겨내고… 뾰루지는, 곪아버릴 것이다.”

이 장면은 우습고 코믹하게 시작되지만, 문득 삶의 곪아버린 한순간을 연상시킵니다. 책 전반에 흐르는 잔혹한 아름다움, 그것이 백사혜 작품의 정체성입니다. 그로테스크와 서정, 기괴함과 휴머니즘. 상반되는 정서들이 끊임없이 충돌하면서도 이질적이지 않고, 오히려 묘하게 ‘믿고 싶은 세계’로 독자를 설득해냅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쥬벵 씨의 완벽하지 못한 하루'에 등장하는 ‘쓰는 자’로서의 자각입니다. 문자와 책이 소멸한 세계에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는 쥬벵 씨의 여정은 곧 작가 백사혜의 메타포처럼 느껴집니다.

📌“‘입력된 순간부터 수정할 수 없어지는’ 글자에는 힘이 있어요. 부동성이 가지는 힘이죠.”

글을 쓰는 행위가 얼마나 진지하고 아름다운 의지인지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 진심은 마지막 이야기 '피가 시가 되지 않도록'의 제목에서도 드러납니다.
피를 단지 고통이나 상처가 아닌, 시처럼 의미 있게 남겨야 한다는 다짐.
작가가 자신의 소설에 얼마나 강한 책임감을 담고 있는지,
고스란히 전해지는 지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존재들이 서로를 사랑했던 찰나의 기억을 이야기로 엮어,
무력해 보이는 순간의 위엄을 영원히 기록하려는 시도입니다.
백사혜작가의 세계관은 너그러우며, 사려 깊고, 동시에 대담했습니다.
그리고 읽는 이들은 이 이야기를 만난 뒤,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들이 보지 못한 밤은, 나에게는 가장 빛났던 낮이었다."

이 소설은 ‘지금, 여기’ 우리 세계의 메타포이며, ‘이야기’가 끝내 구해낼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신념입니다. SF를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흡입력 있는 세계를,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인간의 본질을, 그리고 삶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끝까지 빛을 안고 죽는 존재’의 위엄을 건네는 작품.
저는 이 책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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