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무기 -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극한 무기의 생물학
더글러스 엠린 지음, 승영조 옮김, 최재천 감수 / 북트리거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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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록 흥미롭고, 놀랍고, 깊은 통찰력까지 갖춘 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동물의 무기라는 제목에 이끌렸지만, 처음 읽는 생물학 분야의 책이고 분량도 만만치 않아 다소 긴장을 하고 책을 펼쳤다. 그런데 좋아하는 최재천 교수의 감수의 말중에 이 책을 너무 무겁게 읽을 필요는 절대 없다. 야외 생물학자의 삶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다. 아프리카에서 쇠똥구리를 연구할 때 하늘에서 쇠똥구리가 마치 비, 아니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는 얘기는 압권이다.” 라는 대목에서 긴장이 확 풀어졌다. 그리고 1장을 읽기 시작했는데 11월의 달밤에 올빼미가 어떻게 쥐도 새도 모르게 4~5마리의 쥐들을 먹어치우는지 펼쳐내는 저자의 글솜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196911월의 밤. 달빛이 나뭇가지에 은빛을 뿌리고, 맨땅에 가느다란 그림자를 드리운다. 작은 철문이 열리고 쥐 두 마리가 튀어나온다. (중략)올빼미가 고개를 돌리고, 아무런 기척도 없이 우아하게 활강하며 발톱을 세운다. 다음 순간, 둘 중 하나가 사라진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증언할 핏자국만 남긴 채.”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스릴과 서스펜스가 가득하다. 그러나 단지 이것뿐이 아니다. 이런 흥미로운 긴장감이 가득한 가운데 저자는 동물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나아가 번식이라는 일생의 궁극의 목표를 위해 어떤 무기를 갖게 되는가를 진화적 차원에서 차근차근 쉽고도 재미있게 서술해 나간다.

 

   저자는 무기의 진화를 아주 작은 동물의 몸 색깔, , 바늘이나 가시, 이빨과 발톱, 턱 등에서부터 차례로 설명하면서 동물의 무기를 이용한 인간의 무기 혹은 도구들을 그때그때 비교한다. 지렛대나 창의 촉, 분업이라는 일의 방식, 심지어 계급구조마저 유사하다. 그런데 더 기막히게 들어맞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태환경에서보다 경쟁상황일 때 오히려 극한 무기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동물의 세계에서 진정한 거대 무기의 대부분은 과잉 경쟁의 산물이라고 말하며 무기는 계속 진화하는데 이는 결국 누가 생존하여 번식하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설명한다. , 이긴 자의 무기가 후대에까지 유전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승자의 대립유전자는 살아남고, 다른 대립유전자는 점차 사라진다.” 이렇게 진화는 변이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쇠똥구리 전문가로서 같은 쇠똥구리 수컷이라도 경쟁상황에 따라 다른 무기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로써 극한 무기를 갖게 되는 상황과 그런 무기가 오히려 방해가 되는 상황이 같은 동물 내에서도 발생할 수 있고, 그 상황에 따라 다른 무기를 갖게 된다는 것을 관찰과 실험으로 증명해낸다.

 

   그 와중에 저자는 재치 넘치는 글솜씨로 다양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저자가 동물 중 가장 거대무기를 소유한 농게를 관찰하면서 해변을 묘사하는 장면은 책을 덮고도 잊을 수 없는 장관이다.

 

   “해변마다 수십만 마리에 이르는 너무나 많은 수의 게들이 끊임없이 떠돌이와 방어자 역을 바꿔 하는 바람에, 해변에는 놀랄 만큼 많은 대결이 벌어진다. 방어자 수컷은 날마다 수백 마리의 도전을 받아 쫓겨나거나 쫓아내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중략) 떠돌이 게의 관점에서, 그러니까 모래 위 고작 2~3센티미터에 위치한 눈으로 바라본 해변 풍경을 상상해 보라. 바라보는 모든 곳에서 집게발이 수평선을 찢을 듯이 홱홱 올라갔다 다시 내려온다. 수없이 거듭 올라갔다 내려오는, 끊임없는 대공사격 같은 동작에 포위된 상태다.”

 

   농게의 눈으로 수십만 마리 농게의 집게발이 수평선을 찢을 듯 움직이는 드넓은 해변의 광경이라니! 그런 해변을 본 적이 있더라도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농게의 눈으로 수평선을 찢는 농게의 집게발을 이렇게 실제처럼 상상할 수는 없었을 터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광경인가! 나아가 저자는 얼마나 신비롭고, 상상력 넘치며, 아름다운 직업을 가졌는가! 생물학과 생물학자에 관한 새로운 시선이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동물의 무기는 오로지 생존과 번식에 기여하며 진화한다. 저자는 동물의 무기와 인간의 무기가 역사적 과정, 무기가 기능하는 환경, 무기 선택의 강조, 시간 경과에 따른 변화 방식 등이 모두 유사함을 밝히는 데 책을 쓴 목적이 있다고 밝힌다. 그런데 이 대응이 어느 시점까지만 유효하다. 오늘날 인간 사회의 대량살상무기는 생물학적 전투의 이해관계와 논리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아주 작은 동물의 무기에서 시작한 이 책은 마침내 현대사회의 과열된 경쟁을 기반으로 개발된 치명적인 인간의 무기에까지 이르렀다. 시작은 생물학이었으나 그 끝은 현대사회를 향한 깊은 통찰이 된 셈이다.

   동물의 무기가 잔인하지만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그 목적이 오로지 생존과 번식이라는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이유일 터다. 그렇다면 인간의 무기가 자연환경에서의 전투논리를 벗어나 이익을 위한 대량살상을 가능하게 하는 쪽으로 발전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책은 재치 있고, 흥미롭고 아름다운 동물세계의 묘사와 서술 곳곳에 인간 세계를 향한 진지한 질문을 놓지 않는다. 인간은 동물이지만 동물의 족속을 넘어서고자 하며, 그런 논리로 동물과 다른 방향의 이익을 추구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번식과 생존이라는 획득해야 할 이익은 인간의 세계에서는 자각, 구원, 권력, 자본으로 시대마다 이름을 바꾸며 등장한다. 그리하여 종국엔 인간 스스로를 멸종시킬만한 위협적인 무기를 만들어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무기의 사용에 관한 인간적인 결단이다.

   살아가면서 여행만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길이 아님을 이 책은 여실히 증명한다.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한 새롭고, 경이로우며 반드시 사유해봐야 할 세계를 만나보고 싶다면, 누구든 우선, 이 책을 펼쳐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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