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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과 감성을 하나로 묶는 미래교회
레너드 스윗 지음, 김영래 옮김 / 좋은씨앗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는 여지것 살아온 세상과는 분명 다른 세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우리는 거부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중심에 있다.
시대가 변했지만 교회는 그 변화를 못따라간다는데에 문제가 있다. 즉 문화적 지체현상이 심각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목회자들의 고민은 어떻게 해야 이 시대를 이끌어 갈 것이가하는 점이다. 그러나 실상은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따라가기도 버거워 보인다.
이러한 시대에 대해 교회는 두 가지 태도를 보일 수 있다. 하나는 목회자들이 교회는 세상을 따라가는 곳이 아니라는 이유를 대고 교회만의 성을 쌓고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세상과 고립되어 죽을 확률이 더 많아 보인다. 다른 하나는 다가오는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고 그 시대에 맞는 길을 찾아서 교회를 갱신하여 새롭게 목회를 하는 것이다.
그 길을 찾기 위한 적합한 책이 여기에 있다. 이 책은 후자를 목적으로 삼고 고민하는 목회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미래를 읽는 힘이 있고, 미래에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은 “Postmodern Pilgrims”이다. 이를 번역하면, “포스트모던시대의 순례자”쯤 될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미래에 어떻게 목회를 하여야 하는가에 대해 자극적인 통찰을 준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EPIC의 시대라고 한다. EPIC의 뜻은 경험(Experiential), 참여(Participatory), 이미지(Image-driven), 관계(Connected) 중심의 문화를 말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우리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살면서 정주하거나 정착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순례하며 교회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이중 청취’(double listening)를 하라고 한다. 이중 청취란 한 귀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른 한 귀로는 하나님의 세계에 귀기울인다는 뜻이다. 이중청취를 바탕으로 미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성경에 기초하고 문화에 상응하는 목회를 위해 EPIC모델을 소개한다. 경험(Experiential), 참여(Participatory), 이미지(Image-driven), 관계(Connected)이다. 21세기의 교회는 예산과 건물로 성공 여부를 측정해서는 안되고, 1세기의 교회처럼 창조성과 상상력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포스트모던 세계에서 복음을 전하며 감당해야 할 문화는 어떤 문화인가 하면,
1) 성경을 믿는 교회에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가득 찬 문화 속에서,
2) 영혼 구원을 핵심으로 여기는 교회에 영혼 구원을 개인적으로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 들이 가득 찬 문화 속에서,
3) 소비주의가 제일 종교가 된 문화 속에서,
4) 디팩 초프라(대중 영성학자), 오프라 윈프리(주부대상 토크쇼 진행자)의 말이 모세, 모하 메드, 예수님보다 더욱 권위있는 문화 속에서,
5) 성경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더 이상 제공해 주지 못하는 문화 속에서,
과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이것이 저자의 물음이며, 이 책은 이 물음의 해답이다.

먼저 서론의 제목이 ‘키스하고 말하라’이다. 저자는 키스를 접촉이라고 비유한다. 문제는 현대 사회의 문화는 접촉하지 않고 작동하게 하는 ‘무접촉의 문화’라고 한다. 그러나 접촉하지 못하는 사람의 정서나 감정은 병들기 마련이기에 교회는 접촉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접촉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 역시 가난한 자, 불상한 자, 죄인과 접촉해서 치유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교회는 ‘접촉의 교회’이다. 기독교는 접촉의 문화이며 촉감의 종교이다. 성경적인 영성은 접촉이라고 말한다.

1장, 경험하고 느끼는 교회
저자가 보기에 서구 기독교는 이성과 간찰의 신들의 지배를 받는 현대라는 세계 속에서 잠들어버렸다고 말한다. 현대는 EPIC의 위기이다. 앞으로 교회가 EPIC의 방향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교회는 지나간 문화의 잔재로 전락할 것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은 삶을 알고 싶어한다. 포스트모던인들은 삶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싶어한다. 중세 신학자인 아퀴나스는 말년에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체험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자기가 지금가지 쓴 글은 모두 지푸라기라고 했다.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과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많은 회사들이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직접 경험해보게 한다. 그 이유는 포스트모던인들은 자기가 직접 경험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험할 때에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는 것이 포스트모던인들이다.
그럼 교회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예배가 사람들로 하여금 강렬하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교회는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현대 교회 역시 계몽주의 산물이다. 즉 합리적인 이성에 호소하고, 이성을 중시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교회는 예배를 통해 총체적인 경험을 맛보게 해야한다. 그는 “목회자는 시대에 관해 설교하도록 부름받은 거시 아니라 시대를 향해 영원한 나라에 대해 설교하도록 부름 받았다”고 말한다. 포스트모던인들은 경험에 굶주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성이나 신비를 추구한다. 현대인들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하지만, 포스트모던인들은 영성과 신비를 추구한다. 영성이나 신비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2장. 참여하고 상호 작용하는 교회
미국의 경매 사이트 이베이가 성공하는 이유는 구매자가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이전에 모든 거래는 생산자가 결정했지만, 전자상거래는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결정된다. 포스트모던인들이 멀티미디어 게임에 집중하는 것은 상호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게임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수 백명이 함께 대화하며 상호 참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호 참여가 포스트모던인들의 두 번째 특징이다. 포스트모던 문화는 상호 참여의 문화이고, 이는 선택하는 문화이다.
교회도 ‘우리는 설교하고 당신들은 듣는다’는 방식에서 모든 회중들이 ka여하는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이제 직업 목사와 의자에 앉아 있는 평신도는 없다. 오직 평신도 지도자를 움직이게 하고 그들이 직접 목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목사만이 존재한다. 모든 ‘참여자’는 전임 동역자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예배도 몸으로 드린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오순절 교회들이 부흥한다. 그들은 움직이는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3장 이미지와 은유로 사고하는 교회
신학자들은 이성과 질서를 종교의 핵심에 놓으면서 지적인 신앙을 창조하려고 했다. 신비와 은유는 지나치게 불명료하고, 모호하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그러나 점점 세계는 이야기와 은유가 핵심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미지는 이미 세계 언어이다. 이미지를 보고 듣고 이해하게 되었다. 코카콜라는 재료나 가격에 경쟁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이미 세계 최고의 음료수이다. 이미지는 이제 세계를 지배하는 화두이다. 저자는 “은유는 사고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예배를 통해 우리는 사용하는 은유를 그리스도께로 연결시키고 삶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던 교회는 회중들을 대중문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이미지의 지배를 받는 건전한 이미지를 만들도록 돕는 것이라고 한다.
현대의 대중문화나 영화나 비디오 게임이나 인터넷에서 파는 것은 이미지이다. 그들이 파는 것은 폭력, 포르노와 같은 저열한 문화의 이미지이다. 교회는 이런 이미지에 대항해서 하나님의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4. 관계가 살아있는 공동체를 세우는 교회
미국에서 인테넷을 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채팅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자신이 어딘가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인터넷에는 관계를 갖게한다. 자기 말을 들어 줄 친구를 찾을 수 있다. 포스트모던인들은 마우스로 말하는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의 ‘나’는 존재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하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회는 ‘관계’와 ‘관계성’을 포스트모던 상황에 적합하도록 새롭게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분산되고 복합성을 띄어야 한다. 즉 선(line)의 조직이 아니라 네트워크(network)의 조직이다. 즉 작고 개별적인 셀 그룹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스트리텔링이다.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은 철저하게 종교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봉사와 사회개혁에 참여하는 예배를 만들어야 한다. 예수님의 삶을 실천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는 구세계 교회와 신세계교회로 나뉘어 진다. 구세계 교회는 현재 문화 안에서 변화시킬 것이 없다고 믿던가, 아니면 문화와 분리된 방식으로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규모를 우상화한다. 그러나 신세계 교회는 세상 안에서 거룩하게 구별되어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교회는 규모가 아닌 속도에 성공의 모범을 둔다. 신세계 교회는 인쇄 시대가 끝났음을 말한다. 그 대신 웹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와 나의 마우스는 주님을 섬긴다”.
포스트모던 순례자들은 새로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다만 영원한 진리를 새로운 눈으로 보려고 한다. EPIC 방법론을 만드는 세 가지 학문은 포스트모던 해석학, 자연과학, 인지 연구이다. 해석학은 지금까지는 이성과 합리적인 것으로 객관성을 추구했지만,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해석학은 ‘참여-관찰자적’인 해석학을 사용한다.
이 책은 결론적으로 포스트모던한 교회는 필연적이며, 앞으로 교회는 EPIC방법론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결국 그릇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안에 복음만 가지고 있으면 되지, 어떤 그릇을 사용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순례자들에게 맞는 목회와 교회관의 정립을 이 책은 촉구한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오늘 우리의 교회는 이 책의 이론이 빠르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결코 빠르지 않다. 지금 우리 교회들은 아직도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둔감하다. 시대에 맞추어 교회를 갱신하자. 이 책은 EPIC 모델을 통해 교회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면서도 복음을 놓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세상에 전하며, 교회가 소금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 책이다. 목회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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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전쟁과 평화주의 한국신학총서 20
박도현 지음 / 예영커뮤니케이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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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의 박사학위논문을 출판한 것입니다. 지금 읽어보면 부족한 면이 많지만, 그 당시에는 아주 심각하게 고민하고 쓴 논문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가 전쟁에 가진 태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평화주의 입장입니다. 그런데현실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기독교의 입장은 모순적입니다. 평화주의와 전쟁 사이에서 분명한 입장을 가질 수 없었던 주류 기독교는 정의로운 전쟁의 개념을 만들어 내고, 그것으ㅗ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 논문은 현대 기독교 윤리학자 가운데 정의로운 전쟁을 주장했던 라인홀드 니버와 평화주의를 주장했던 아나벱스트이기도 한 존 요더의 주장이 기독교 역사속에서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정의로운 전쟁과 평화주의 그 사이에 아주 좁게 난 제 3의 길이 무엇인지 발견해보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였습니다. 이전쟁과 평화는 모든 인류의 고민인 동시에 기독교인에게도 깊은 고민입니다. 제3의 길이 무엇인지는 이 책을 직접 보시기를 바랍니다.

  별 4개를 준 것은 내 자신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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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 -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성취하는 길, 개정판
오스 기니스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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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의 부제는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성취하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소명을 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소명을 알면 내가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 오스 기니스는 (Os Guinness) 중국 선교사의 가정에 태어나 중국에서 나고 자라다 영국 옥스퍼드에서 사회학으로 박사가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공부를 잘 했습니다. 그는 목사는 아닙니다. 신학을 하지 않았지만, 기독교 변증가로, 또 사회 비평가로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글솜씨도 좋아서 이 책외에도 [회의하는 용기], [도전받는 현대 기독교]와 같은 책들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명(calling)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소명에 응답하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이며 인간의 존재 목적의 가장 고상한 근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소명을 안다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요,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보통 천국가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가기 위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잘 살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소명과 맞물려 있습니다. 소명은 주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요, 그것을 찾아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을 박련하고 성취하는 길일 것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Max Weber)는 그의 유명한 저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에서 개신교의 소명 의식이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가톨릭은 은둔적이고 비세속적이어서 세상을 피하려고 했지만, 개신교도들은 칼빈의 예정론에 입각해 소명의식을 가지고 세상에서 바로 살아가려고 했기에 자본주의가 발전했다고 봅니다.
  이처럼 소명은 사회를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즉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우리가 살게 됨으로 세상은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산과 바다가 우리를 가로 막는다고 할지라도 소명을 가진 자는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소명을 알고 실천하는 자에게 주시는 힘입니다.
  이 책이 아주 쉬운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소명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원하신다면 진지하게 읽기를 바랍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은 세상에 달리 보일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당신의 소명을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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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사람들 -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 보고서, 개정판
M. 스콧 펙 지음, 윤종석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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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싸우면 백전백승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평생 싸워야 할 대상인 악에 대해서 정확히 안다면 우리는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악의 실체에 대해 우리에게 분명한 목소리로 알려줍니다. 이 책은 우리가 대면하기 꺼리는 악의 실체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그 악의 실체를 분석하고 파헤쳐서, 이기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기독교인이라면, 특히 목회자라면, 반드시 일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 스코트 펙(M. Scott Peck)은 정신과 의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이 책은 펙이 직접 경험한 환자들을 중심으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학적이지는 않지만, 실제적이며 경험적입니다. 그만큼 설득력이 있고 악의 실체에 대해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펙은 악(evil)이라는 단어는 '산다'(live)라는 말의 철자를 거꾸로 늘어놓은 것이며, 따라서 악은 삶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죽음과 관련된 것입니다. 더 정확한 정의는 그의 또 다른 저서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에 있습니다. 그 책에 따르면, 악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악은 정신적 성장을 피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정치적인 힘의 구사, 즉 공개적이거나 은폐적인 강압을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부과하는 것이다".
그래서 악한 사람의 특징은 남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책임 전가입니다. 악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을 세상에 투사합니다. 자신은 조금도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 속에서는 끝도 없이 악을 찾아냅니다. 그래서 펙은 "자신을 미워할 줄 모르는 것, 자신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악하다고 부르는 책임전가행위의 뿌리요 핵심적인 죄라고 생각한다"고 단언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7:21-23)라고 고백합니다. 바울 역시 인간의 마음에는 선으로 향하는 마음과 악으로 향하는 마음이 함께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악이 자신 안에 존재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을 거스르는 일을 감행합니다. 그 힘은 오직 주님에게로부터 오는 성령의 힘임을 바울은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기성찰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알게되면서 인간 악의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을 의지 않고 주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악의 사람은 자기 성찰을 하기보다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삽니다. 펙은 악성나르시시즘의 특징을 복종할 줄 모르는 자기 의지에서 찾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뭔가 자기보다 높은 존재에 대해서 스스로 굴복시킬 줄 압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자신을 숙이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안에서 빙빙돌 뿐입니다.
일상을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악한 사람들의 전략 가운데 하나는 '희생양을 찾는 것'입니다. 이 희생양은 약한 자입니다. 악이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기보다 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경우 대개 부모와 자식 사이가 되기 쉽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잡혀있기 때문에 부모가 악의 사람이라면 아이들은 그 피해자가 되기 쉽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희생양을 통해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남에게 떠넘김으로서 스스로 죄책감의 고통을 깨끗이 거부합니다. 그래서 펙은 이러한 악을 질병이라고 규정합니다. 악이 질병이라는 말은 곧 악은 치유해야 하며, 그 치유를 위해 악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 이 책의 미덕은 개인의 악뿐만 아니라 집단 악에 대해서도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라인홀드 니버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에서 말했던 것을 이 책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다 착하지만 집단이나 국가의 단위에서 보면 도덕적이지 못한데 그 이유는 바로 집단 안에서 죄를 서로 전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전에서 양민을 학살한 미군의 예를 들면서 펙은 개인들이 집단으로 악에 빠지는 것은 집단 나르시시즘에 빠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현상은 '적 만들기'로 드러나는데, 적이라고 판단되면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그 악을 상대편에게 돌린다는 것입니다. 미군이 베트남 양민을 학살한 것이나, 히틀러가 유태인을 학살한 것은 모두 이 집단 나르시시즘의 한 전형인 '적 만들기'나 '희생양 찾기'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원인은 게으름이라는 것입니다. 도대체가 상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베트남에서 이루어진 악에 대해 미국 정부는 귀찮아하고, 국민들 역시 정부에 맡기고 무관심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악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그것은 펙에 의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의 길이란 반대되는 것들에 대한 역동적인 균형의 길이요, 불확실한 것들에 대한 고통스러우면서도 창조적인 긴장의 길이며, 극단적이면서도 더 빠지기 쉬운 행동 노선들 사이의 쉽지 않은 줄타기 곡예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키우는 것을 보면 잘못된 행동들을 다 받아주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야단치는 것도 아닙니다. 참아야 할 때도 있고 용인해야 할 때도 있고, 받아주어야 할 때가 있고 받아주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역동적인 균형의 길이요, 창조적인 긴장의 길입니다. 악을 이기는 길은 악이 인간 안에서 그냥 질식해서 죽어버리게끔 하는 것입니다. 악의 치유는 개인의 사랑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악의 실체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사실 악에는 누구나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악의 원인을 알고 실체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울처럼, 악의 가능성과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나아가면 치유 받고 덤으로 얻어진 주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가지고 세상에 모든 악과 싸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얻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악의 실체를 아는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개인이 직면하는 악의 문제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 성경에서 말하는 악의 세력에 대해, 그것이 어떻게 전염되고 자라며 확장되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 책은 악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많은 사람에게 중요한 통찰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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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7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모 에티쿠스 - 윤리적 인간의 탄생
김상봉 지음 / 한길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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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고대 철학자들로부터 칸트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이 가꾸어 온 윤리적 이론을 통해 이 땅에서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합니다. 저는 여기서 그 내용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은 보면 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철학책에도 어느 철학자가 말한 이론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책이 가지는 가치는 그런 이론을 쉽게 소개했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가 이 책을 쓰면서 가지고 있는 올바른 사회를 향한 뜨거운 정열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의 핵심은 윤리적 이론을 풀어 놓으면서 중간 중간에 들어가 있는 저자의 이 사회를 향한 외침입니다. 그 외침은 이 부패하고 썩은 사회에서 왜 우리는 윤리적으로 행위를 행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도덕이나 윤리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해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앎과 행위는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모르고 하는 사람보다는 사실 알면서 행하고, 저지르는 사람이 더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윤리적이거나 양심적으로 산다면 - 칸트의 말대로 의무감 때문에 도덕적인 행동을 한다면 - 그 사람은 이 사회에서 올바른 대우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윤리적 지식이 아니라 양심의 말에 귀기울여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양심의 말에 귀기울여서 비도덕적인 사람이나 제도가 고쳐지고 바뀌어 지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삶이 우리에게 최고의 행복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호모 에티쿠스”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 사회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 책의 미덕 가운데 하나 중요한 것은 저자가 참조한 책이 모두 번역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외국의 원전을 자랑스럽게 인용합니다. 참고문헌을 보면 한국책은 별로없고 대부분 원서입니다. 그러면서 자랑스러운 학식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나라 말로 번역된 책은 보지도 않고, 원서로만 보는 학계의 경향에 따르지 않고 당당하게 한국어로 번역된 책들을 인용하면서도 학문적인 수준을 놓치지 않는 책입니다. 그리고 복잡한 철학자들의 이론을 현실에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 책은 그래서 독자에 대한 서비스가 확실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죄와 악함때문에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다투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 역시 경쟁과 싸움과 속임과 찰라적 쾌락을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도덕적인 삶이 곧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명하신 '이웃사랑'의 실천일 것입니다.
    이 책은 이 땅에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쉽습니다.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 번에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행간에 숨은 저자의 뜨거운 의지와 열정을 발견하는 독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비도덕적인 사회에서 도덕적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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