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2004년 나오키상 수상작 <울 준비는 되어 있다>를 만났다. 올해가 2021년이니까 꽤 오래전의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다 보면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꽤 많아서 개인적으로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고 후속작을 기다리게 되는 것 같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녀만의 독특한 문체가 굉장히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목차>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겨지는 것

뒤죽박죽 비스킷

열대야

담배 나누어 주는 여자

생쥐 마누라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

주택가

그 어느 곳도 아닌 장소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잃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는 12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 야요이는 남편과 함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기도 했다.(중략) 남편을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언제 싹텄는지, 야요이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실은, 벌써 오래전부터 삐걱거렸던 것이다. 늘 뻔한 말다툼과 그 후의 화해.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지금 야요이는, 슬픈 것은 말다툼이 아니라 화해라는 것을 안다. 괜찮아, 이겨낼 수 있겠지 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잖아.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기고.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겨지는 것-



연애 시작, 그리고 신혼 초에 보통의 사람들은 남편(와이프)와 함께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건강한 관계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지 알게 되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인생은 위험한 거야. 거기에는 시간도 흐르고, 타인도 있어.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강아지도 있고 아이도 있고"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자, 나는 근거도 없이 안심하려 한다. -열대야-



영겁의 시간의 흐름 속에 나도 있고 수많은 타인들이 존재한다. 어떤 인생을 만들어 나가느냐는 어떤 타인들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인연들을 오래 지켜나가면서 가꿔나가고 싶다.



그것은 누군가의 허물처럼 보였다. 또는 잔해로. 차갑고 텅 비어 있는데 체온과 사람의 기철을 생생하게 상상케 하는 그것은 주인 곁을 떠나 난처해하는 듯 보였다. 거의 수치스러워하듯. "우리 한때는 서로 사랑했는데, 참 이상하지. 이제 아무 느낌도 없어" 시호가 말했다. "당신, 그거 어떻게 생각해?" -골-



슬프다. 영원한 건 절대 없는 것일까? 한때는 그렇게 서로 사랑했는데 이제는 아무 느낌도 없어지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다. 트렁크에서 발견한 짐이 누군가의 허물처럼 그것도 차갑고 텅 비어 있는데 좀 전까지 사람의 온기와 형태가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 주인을 떠나 난처한 그 잔해처럼 느껴지는 기이한 느낌. 왠지 알 것 같다.



'나는 혼자 사는 여자처럼 자유롭고, 결혼한 여자처럼 고독하다.'


내일 또 시스코(시어머니)와 함께 탕에 몸을 담가야 한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다다미방에서, 화장 안 한 얼굴을 마주 보면서 아침을 먹는다. 시즈코는 틀림없이"정원을 산책하고 싶다"라고 하리라. 나츠메(며느리)는 내일 일까지 눈으로 보듯 상상할 수 있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숲 사이 오솔길을 빠져나와, 뒤죽박죽 음악을 틀어놓고 차를 몰리다. 도중에 휴게소에 들르면, 시즈코는 화장실에 가리라. 도쿄에 들어서면 도로가 혼잡할지도 모른다. 느릿느릿 차를 몰면서, 껌을 너무 씹은 나는 턱이 아프리라. 시즈코는 꾸벅꾸벅 졸고. 그 모든 것을 우리 둘은 무리 없이 해낼 것이다.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 여기에서 요이치는 시어머니에게는 아들, 주인공에게는 남편의 이름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입장에서 단둘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위에 문장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웃음) 시어머니의 이 한마디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에 모든 의미가 다 들어있지 않은가.



조심하고 주의하고, 그래봐야 어리석은 짓이다. 당연하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다면 조심 따위 내던지고, 흥분하고 들떠서 영원이니 운명이니 이 세상에 없는 온갖 것을 믿으면서 당장에 동거든 결혼이는 임신이든 해버리는 것이 좋다. -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일. 누군가에게는 무엇보다 쉬운 일이며, 그 누군가에게는 무엇보다 어려운 일 일 것이다. 나에게는 어려운 일인데 아무리 조심하고 주의해봐야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큰 의미 없다. 하지만 신중하게 그 좋아하는 감정을 지켜나가야 한다.



나의 여행은 늘 그런 식이었다. 나 스스로 갈 곳을 고르고,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모으고, 혼자 여행하면서 끝내는 우울해지고 만다. 추위와 더위에 진저리를 치고, 고독을 고통스러워하고, 이런 곳에는 두 번 다시 안 온다고 다짐한다. 그런데도 일본으로 돌아와 얼마 있지 않으면,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갈 곳을 정하고 돈을 모으고, 필요한 것들만 꾸려서 집을 뛰쳐나간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여행. 이 두 글자가 주는 설렘이 참 좋다. 코로나가 어서 종식되어 혼자 하는 여행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껏 다니고 싶다. 혼자 하는 여행은 고독하기 때문에 다음에는 꼭 사랑하는 사람이랑 여행하리라고 다짐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본인의 자리에 돌아왔다가도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다.



아직은 어린 나츠키가 언젠가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한다면, 더 강해 주기를 기도했다. 여행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한껏 사랑받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기를 기도했다. 좋아하는 남자가 전화를 걸어 그런 말을 해도, 꿋꿋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잃다-



부모의 마음은 이렇지 않을까, 언젠가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한다면 더 강해져주길, 그리고 소중한 추억들을 많이 쌓고 심신이 건강한 사랑을 하기를 기도할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연인의 말에도 제정신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가지고 즐겁게 인생을 살기를.



유한한 삶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장소를 지나다니며, 다양한 기억과 추억을 안고 살아간다. 예상했든, 예상하지 못했든 그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울음의 행위는 준비가 필요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러내렸었다. 나이가 들수록 울음의 빈도는 적어졌고 가능하면 울고 싶지 않다. 그래도 가끔은 울 준비가 되어 있다. 이번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울 준비는 되어 있다>는 주말 저녁 샤워 후 와인 한 잔과 함께 읽으니 그 문체의 매력이 극대화되었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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