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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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즈음  베르나르의 <기억>을 읽었었다. 전생, 환생, 최면 등 독특한 소재의 소설로 총 2권 약 800여 페이지의 장편소설이었지만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10월에 만난 신작 <심판> 은 전작인 <기억>보다는 얇은 책이라 부담 없이 수월하게 읽었다. 분명 <기억>의 장르는 희곡인데 소설 같은 느낌이었고,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상상력과 유머에 흠뻑 빠져 읽었다.

희곡 <심판>의 간단한 목차와 등장인물을 살펴보면,

[구성]
1막-천국 도착 / 2막-지난 생의 대차 대조표  / 3막-다음 생을 위한 준비
[등장인물]
아나톨 피숑: 피고인 / 카롤린:피고인 측 변호사 / 베르트랑 : 검사 / 가브리엘: 재판장

 

천국에 있는 법정을 배경으로 판사, 검사, 변호사, 피고인이 펼치는 설전이다. 주인공은 아나톨 피숑으로  폐암 수술 중 사망했다. 그는 자신이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이자 가장 좋은 직업을 가졌었다고 주장했지만 검사는 생각지도 못한 그의  죄를 들춰냈다. 그리고 그는 무관용 원칙에 따라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주인공 아나톨 피숑이 천국에 도착한 듯한 장면에 웃음이 피식 났다. 물론 죽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메릴린 먼로, 존 레넌, 아인슈타인을 만난 것이다. 천국에서 셀럽을 만나다니.  설정이 그럴듯해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만약 언젠가 하늘나라에 가서 셀럽들을 만난다면 그냥 지나쳐가긴 좀 아깝고, 인증샷을 찍어도 사인을 받아도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음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면 속이 좀 시원해질까? 죽어서 만난 셀럽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뭐랄까 잠시 동안 책을 읽으며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다.(웃음)

베르트랑 : 진실을 들려주면 못 견디는 거. 이게 바로 멍청이들의 근본적인 특성이지.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면 오죽하겠어. 진실을 알려 주면 알려 준 사람을 원망하면서, 마음에 담아 두고 절대 잊지 않아. 그래서 멍청이들과 얘기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야. 칭찬. 멍청이들은 칭찬이라면 죽고 못 살아. 칭찬을 듣는 순간 상대를 좋아하게 돼.  칭찬에 약하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을까?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간파하고 있는 천사 검사 베르트랑의 캐릭터는 송곳 같았다.

가브리엘: 삶이란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가 죽는 거예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그렇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천국에서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아나톨은 지상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떠돌이 영혼이 될 위험도 있다. 천국 재판장에서 설전은 계속되었다. 사실  그는 아나톨 피숑이기 전에 이미 무수한 삶을 거쳤다. 고대 이집트 궁궐의 여인, 카르타고 항구에서 생선 내장을 빼던 사람, 앵글로색슨족 전사, 일본 사무라이 등등. 또한 음주운전 317 차례, 다른 운전자들을  향한 용설 587차례, 저속한 제스처 1733차례, 불장난해서 태운 우체통이 15개, 펑크 낸 타이어 26개, 새해맞이 파티를 한답시고 망가뜨린 자동차가 11대, 노상방뇨와 공공장소 낙서 등 살아생전 비도덕적인 행위들도 전부 카운팅 되고 있었다.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호언장담할 수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산사람들은 그저 상상할 뿐이다. 그런데 진짜 나의 모든 것들이 카운팅 되고 있다면? 이 역시 있을법한 설정에 나는 과연 어떤 무수한 삶을 거쳤을지, 알게 모르게 어떤 비도덕적인 행위들을 했을까? 잠시 책을 읽다가 진지해졌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디 쉬운가? 아나톨의 변호사인 카롤린은 그를 열심히 변론한다. 

카롤린 : 진심이에요. 내가 바라는 건 오직 당신의 행복뿐이고, 나는 늘 당신 편에서 행동했어요. 그러니 날 믿고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여요. 날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해서. 당신 영혼의 진화를 위해서 말이에요. 영혼의 진화라. 무수한 삶을 거치면서 영혼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진화되는 것일까?

" 피숑 씨, 당신은 배우자를 잘못 택했고, 직업을 잘못 택했고, 삶을 잘못 택했어요. 존재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포기했어요. 순응주의에 빠져서!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만 했죠. 당신에게 특별한 운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당신이 그걸 직업으로 삼지 않은 게 바로 잘못이에요. 어떤 일이 어려워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베르트랑: 지나치게 평온하고 지나치게 틀에 박힌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등한시하고, 운명적 사랑에 실패함으로써 피숑 씨는 배신을 저질렀습니다. 결국은 자기 자신을 배신한 셈이죠.

카를린  : 잘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선택들이란 뜻입니다.

베르트랑 : 용기보다 비겁함을,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편안함을 택한 거죠.

죽게 되면 생각보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지상의 태아로 환생을 해야 하는데 천국의 법정과 전생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잃게 된다. 하지만 다시 태어날 태아에 대한 성별, 국적, 부모, 직업, 자신의 강점과 핸디캡, 사랑의 방식, 죽음 등 삶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천국의 법정에서 정하게 된다. 주인공 아나톨 피숑은 다음 삶을 위해 과연 어떤 선택들을 할까? 책을 통해 다음 생을 위한 판사, 검사, 변호사, 피고인이 펼치는 설전이 꽤 흥미로웠다.  만약 진짜 천국 법정이 있다면  꼭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과연 몇 번이나 환생을 했었을까. 태어나기 전 성별부터 국적, 부모, 직업, 남편, 사랑, 죽음 모든 것을 정하고 태어나면 과연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번 생에 좋았던 선택들은 다음 생에도 그대로 가져가고, 후회했던 선택들만 다시 정해서 다음 삶으로 환생하고 싶다면 욕심일까?(웃음)
작품 마지막에 나오는 다음 피고인 골프 치다 벼락을 맞은 아제미앙 교수와 아나톨 피숑의 만남으로 많은 여운을 남기며 유쾌하게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었다. 그 둘은 할 말이 많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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