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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선의 -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
이소영 지음 / 어크로스 / 2021년 5월
평점 :

“착한 척한다고 비난하면 달게 받겠다.
나는 냉소보다는 차라리 위선을 택하려 한다.”
책 띠지에 쓰여진 이 글귀를 보고 왜 마음이 울렁거렸을까.
그래, 위선이면 뭐 어때. 냉소로 가득 찬 세상보다는 차라리 위선이라도 있는 세상이 나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도 거리 위의 차들은 서로 앞다투어 빵빵 거리고, 상대방을 헤아리지 못하고 ‘너 잘못이네’ 하며 서로를 힐난하고. 인터넷 뉴스의 댓글에도 세상을 향한 사람들의 분노가 가득하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내가 상대방을 헤아리지 못했던 모자람은 생각하지 못하고 언제든 피해자가 될 ‘나’만을 또 이기적이지만 생각한다. 내가 또 상대방을 헤아리지 못할 것을 걱정하기는커녕.
이 책은 사소한 배려나 작은 마음 씀이 별것이 아니라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작가가 겪은 50여 편의 이야기를 통해 알려준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울컥해진다. 맞다. 힘들게만 보였던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고 아니, 무너졌더라도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웠던 것은 나에게 결코 작지 않은 마음 씀을 내주었던 내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런데 간사하게 그걸 잊고 살아온 거다. 악의로 가득 차 보이는 세상일지라도 사실은 한 사람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마음 씀을 내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이 사회가 유지되어 올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본다.
‘별 것 아닌 선의’로 보일지라도 그 별 것 아닌 선의를 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이미 많은 마음 씀이 필요한 거였다. 우리 모두 ‘별 것 아닌 선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그 마음 씀에 고마움을 표현하고 우리 또한 ‘별 것 아닌 선의’를 많이 내보여줄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배려심 깊은 말 한마디, 세심한 귀 기울이기. 사소해 보일지라도 그 마음 씀에는 언제나 큰 마음이 들어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되길.
<인상깊은 구절>
26p.
가난했던 나는 그 미소한 배려들이 얼마나 세심히 마련되었을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주는 대로 받아 가졌다. 받아 가진 자로서 무얼 하면 될지, 은혜 갚은 까치의 시점에서 골똘히 생각해본다. 생의 여정 중 맞닥뜨릴 고단한 이들에게 몸을 누일 열차 칸을 그때그때 내어놓는 것, 그리고 주는 대로 받아 갖는 누군가를 만나거든 나 또한 ‘그럼에도 재차 뭘 내미는’ 것. 이는 일생을 두고 행해야 할 작업이므로, 일단 오늘 밤엔 하늘의 별처럼 많은 고마움들 가운데 하나를 글로 옮겨 사람들과 나누기로 한다.
92p.
이 글을 쓰던 중에도 또 한 건의 아동학대에 대해 들었다. 극악한 부모라는 자들에게 더 무거운 형이 언도되길 바라는 청원에 목소리를 얹기보다는 가정폭력을 겪은 아이가 “그러니까 집안 내력이 중요한 거야”, “아무튼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과 사귀어야 해”라는 식의, 선량한 이웃이 무심코 던진 말과 시선에 상처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손을 보태고 싶었다. 그게 더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 내겐 그게 더 절실하게 여겨져서다. 그 과정에서 분노가 쉽사리 나의 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예의 잃은 정의감이 너무 자주 목도되는 지금 이곳에서.
100p.
가진 자들이 얼마나 더 소유했는지에 분개하지 않는 나는, 덜 가진 이들이 나만큼이나마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을 놓지 않으려 한다. 말하자면 그건 ‘만족한 자’의 윤리적 책무가 아닐까. 이를 저버리는 순간 나는 물욕 없음을 내세우며 안빈낙도 운운하는 배부른 한 사람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167p.
관계의 밀도가 영원히 동일하지 않다고 해서 기억들이 휘발되는 것은 아니다.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영원히 남는다.
182p.
사람을 막연히 동경하는 것은 상대의 매력과 장점 때문일지라도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연히 보게 된 빈틈을 통해서였다. 누군가의 세련된 매너에서 어색함을 감추려는 몸짓을 읽었을 때, 냉소 이면에서 뜨겁고 서투른 열정을 보았을 때, 강인해 보였던 이가 실은 심약한 ‘새가슴’임을 느꼈을 때.
가끔 그게 안되기도 한다. 이해관계가 대립할 경우 누군가의 단점이 빈틈임을 알아도 너그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한편 아예 빈틈을 찾을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이리 보고 저리 살펴도 근사하기만 한 거다! 짐작하건대 내 고집스러운 선망이 그의 약함마저 멋짐으로 채색했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충돌하는 이의 빈틈을 연민하고, 선망하는 이의 빈틈을 알아차릴 수 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의 빈틈에도 조금 너그러운 마음을 품으면 좋겠다.
사람을 막연히 동경하는 것은 상대의 매력과 장점 때문일지라도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연히 보게 된 빈틈을 통해서였다. 누군가의 세련된 매너에서 어색함을 감추려는 몸짓을 읽었을 때, 냉소 이면에서 뜨겁고 서투른 열정을 보았을 때, 강인해 보였던 이가 실은 심약한 ‘새가슴’임을 느꼈을 때.
가끔 그게 안되기도 한다. 이해관계가 대립할 경우 누군가의 단점이 빈틈임을 알아도 너그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한편 아예 빈틈을 찾을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이리 보고 저리 살펴도 근사하기만 한 거다! 짐작하건대 내 고집스러운 선망이 그의 약함마저 멋짐으로 채색했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충돌하는 이의 빈틈을 연민하고, 선망하는 이의 빈틈을 알아차릴 수 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의 빈틈에도 조금 너그러운 마음을 품으면 좋겠다. - P182
관계의 밀도가 영원히 동일하지 않다고 해서 기억들이 휘발되는 것은 아니다.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영원히 남는다. - P167
가난했던 나는 그 미소한 배려들이 얼마나 세심히 마련되었을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주는 대로 받아 가졌다. 받아 가진 자로서 무얼 하면 될지, 은혜 갚은 까치의 시점에서 골똘히 생각해본다. 생의 여정 중 맞닥뜨릴 고단한 이들에게 몸을 누일 열차 칸을 그때그때 내어놓는 것, 그리고 주는 대로 받아 갖는 누군가를 만나거든 나 또한 ‘그럼에도 재차 뭘 내미는’ 것. 이는 일생을 두고 행해야 할 작업이므로, 일단 오늘 밤엔 하늘의 별처럼 많은 고마움들 가운데 하나를 글로 옮겨 사람들과 나누기로 한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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