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휴먼카인드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평점 :
품절

“만일 어떤 것을 아주 깊게 믿는다면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믿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만일 우리가 대부분의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모든 비극은 인간은 악하다는 본성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책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정말로 책을 읽으면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은 이런 느낌을 한 번 더 느꼈던 적이 있는데, 비록 300페이지 남짓밖에 못 읽었지만 몇 년 전 유발하라리가 쓴 <사피엔스>를 읽었을 때였다. 유발하라리가 자신의 책에 도전하는 책이라고 열렬히 추천사를 써 준 이 책은 확실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온 상식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사피엔스>와 마찬가지로 뒤통수를 한 대 맞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말하면 <사피엔스>와 비교를 안할 수가 없는데 일단은 내가 기억하는 선에서의 차이점을 말해보겠다. 두 책이 집중했던 한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을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특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 유명한 <사피엔스>를 통해서 이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우리들의 선조인 호모사피엔스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다른 인간 종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우리, 호모사피엔스뿐이다. 우리는 박물관을 지었지만, 다른 인간 종인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은 박물관 안에 전시되어있다. 우리보다 뇌용량도 훨씬 커서 영리했고, 몸집도 더 커서 힘도 셌던 네안데르탈인은 왜 지구상에서 멸종했는가.
<사피엔스>에서는 ‘인간을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특성’으로 ‘상상력’을 꼽았다. 우리가 ‘국가’를 발명하고 ‘사회질서’를 만들고 ‘화폐’를 만들고 ‘종교’를 만들어 모두가 추종할 수 있는 사회체제를 만든 배경에는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우리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위와 같은 것을 발명해내어 ‘협력’을 이뤄냈고 생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피엔스>에서도 결코 인간을 선한 존재로서 풀이하지 않았던 것 같다. 호모사피엔스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은 왜 전부 멸종했는지에 대해 무시무시한 가설을 보았던 것을 기억하면 말이다.
이 책, <휴먼카인드>는 우리의 선조인 호모사피엔스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더 원초적인 특성을 제시했다. 인간은 ‘더 친화적인’ 사람만이 생존할 수 있게 스스로를 길들여왔다고 말이다.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 유인원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추방되었지만, 가장 친화적이고 상냥한 성격의 유인원은 더 많은 자식을 갖고 더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생존했다. 유치원의 어린아이들이 노는 모습만 보아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아이들의 장난감을 빼앗고 양보하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구는 아이는 다음번 놀이에 끼워주지 않는다. 반면 주위 친구들에게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으며 공감을 잘 해주는 아이는 어딜가나 인기가 많다. 우리 종의 진화는 ‘가장 우호적인 자의 생존’에 근거를 두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게 된 배경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네안데르탈인이 호모사피엔스보다 더 영리했지만, 마지막 빙하기에서 서로 협동하며 혹독한 기후에 잘 적응하기에는 사회적 친화성이 떨어졌을지 모른다고 추측할 뿐이다.
인간은 본래 폭력적이고 악하고 잔인한 본성을 가진 존재라고 말하고 싶을 때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이 저질러온 수많은 전쟁과 학살들을 얘기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수렵-채집 시절의 우리 선조들은 결코 전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존재라고 말하며, 우리가 전쟁을 최초로 하기 시작한 때는 농경사회로 들어서 울타리를 치고 ‘내’ 구역과 ‘네’ 구역이 생기고 사유재산이 생기면서부터라고 말한다. 이는 결코 인간이 악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며, 인간이 악한 존재가 되는 데에는 사회적, 환경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만을 가리킬 뿐이다. 실제로 수많은 전쟁 중 병사들은 최대한 총을 쏘기를 거부했으며, 인간이 악하다면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데 즐거움을 느껴야하지만 실제로는 깊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도 말한다. 또한 인간은 모든 동물을 통틀어 악한 행동을 할 때 수치심을 느끼고 볼이 붉어지는 유일한 동물이다.
<휴먼카인드>는 이런식으로 책 전반에 걸쳐서 인간은 결코 악하지 않고 선한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과학적 증거로, 역사적 사례를 보여주며 설파한다. 아직도 인간은 성선설이 아니라 성악설에 기초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길 바란다. 그리고 나의 서평 제일 처음에 발췌했던 글을 마지막에도 쓰며 마치고 싶다.
“우리가 믿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만일 우리가 대부분의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악하다는 신념을 꼬옥 쥔 채, 우리 서로를 그렇게 바라본다면 우리가 원하는 유대감 있는 사회는 결코 이뤄내지 못할 것이다. 믿음 없는 사회가 초래할 결과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