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설의 수문장
권문현 지음 / 싱긋 / 2021년 2월
평점 :

▪️《전설의 수문장》, 이 책 한 권으로 44년간 호텔에서 일하신 지배인님의 인생을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듯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재밌었다. 권문현님은 70년대, 전자결재 시스템이 없어 각종 서류를 승인받아 해당 부서에 전달해주는 ‘페이지 보이(page boy)’로 입사해 ‘호텔 벨보이’와 ‘호텔 도어맨’으로 일하셨다. 지배인님의 발자취를 따라 읽어가다보면 영화 <국제시장>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때 그 시절, 조선호텔에서 근무하시면서 바라보고 겪으셨던 일들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게 다가왔다.
▪️조선호텔에서 외국인이나 외신기자들을 태워주곤 했던, 이제는 영화 <택시운전사>로 모두가 알고 있는 ‘김사복’씨에게 광주에 있었던 일을 직접 전해 들으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던 일. 조선호텔에서 일하면서 1987년 6.10 민주항쟁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어야만 했던 일.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호텔에 팁 문화가 있어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와 수행원들이 호텔에 오는 날이면 그 당시 두 달 치 월급에 가까운 돈을 받았던 일. 70-80년대에는 밤에 신문을 찾는 고객들의 전화가 많았다면, 요즘에는 밤중에 스마트폰 충전기를 찾는 전화가 많은 일도. 한 호텔에서만 줄곧 자리를 지켜오신 권문현 지배인님이 겪어오신 삶의 이야기들은 들을수록 재밌었고 값진 시간이었다.
▪️한 가지 직업으로, 한 호텔에서 정년퇴직까지 하시면서 오래 일하신 점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계속 서 있어야 하고, 추운 날도 더운 날도 밖에 있어야 하며,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을 제일 처음 맞이하는 벨보이, 도어맨. 그런데도 권문현 지배인님은 자기 일에 대한 애정을 뛰어넘어, 고객들과 제일 먼저 인사를 나누고 친분을 쌓을 수 있는 ‘도어맨’의 자리가 좋다고 하신다.
‘누군가를 반갑게 맞이하는 그 환대의 순간, 내가 당신을 기다렸다는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 나는 참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지배인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 시간여행을 하고 온듯한, 권문현 지배인님의 인생의 일부였던 44년 호텔 인생을 들을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명함을 받고,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설명해드린 것이 전부인데 고객들의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 그러고는 언제 트러블이 있었냐는 듯이 또 호텔을 찾아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진상 고객’이라는 단어보다 ‘애정 고객’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애정이 있어야만 지적도 한다. 애정 고객은 또 찾아올 고객이다. 관계라는 것은 투명해질 때 더 견고해지는 것 같다. 명함을 받고 당신과 내가 잠시라도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 관계가 한 겹 더 두터워지고 단단해지는 마법이 일어난다. - P57
나는 한 번이라도 우리 호텔을 방문한 고객은 최대한 특징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기억이 곧 디테일한 서비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험으로 축적된 서비스들은 고객의 얼굴을 보면 자연스럽게 연상이 된다. 예를 들어 항상 차 안에서 신발을 바꿔 신고 내리는 고객의 경우 차가 정차한 후에도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연다. 고객의 성향에 따라 문을 닫는 세기도 달라진다. 문 닫히는 소리에 예민한 고객들은 각별히 더 신경을 쓰는 식으로 말이다. - P81
나는 후배들에게 웃는 모습과 당당한 모습을 항상 유지하라고 얘기해주었다. 모든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그렇겠지만 호텔직원이라면 기본적으로 웃는 인상이어야 한다. 그리고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라는 말은 고객을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되 내적으로는 항상 모든 인간은 같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라는 의미였다. - P86
젊은 시절에는 에어컨 나오는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야말로 소위 말해서 ‘더울 때 덥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는 직업’ 아닌가. 그래도 내가 잘하는 일이고, 보람을 느끼는 일이니 묵묵히 벼텨왔다. 그런데 중년이 넘으면서 가만히 보니 앉아서 일하던 친구들은 하나둘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하루 만 보 이상 무조건 걷는 나는 허리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살도 찔 틈이 없었다. 지금은 친구들이 오히려 나를 부러워한다. 출근할 곳도 있고 건강해 보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나보다. 인생은 길게 보면 공평하다고. - P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