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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한국, 미래는 있는가 - 이해관계자 복지의 모색
고세훈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복지한국, 미래는 있는가?
부제 : 이해관계자 복지의 모색
고세훈 지음
출판사 : 후마니타스
복지국가 위기론은 이데올로기 공세에 불과하다.
부제에서 볼수 있듯이 저자는 '이해관계자 복지'가 한국 복지 담론의 대안이라 주장한다. 저자는 성장과 효율,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담론'과 이에 따른 '복지국가 위기론'이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복지국가의 길을 걷다 복지지출의 비대, 복지 의존층의 증대, 저효율의 국가재정 등을 이유로 사회민주주의적 복지 모델에 회의를 품고 있는 유럽의 여러나라도 실제로는 '위기'로 표현될 만큼 국가재정에서 차지하고 있는 복지예산이나 그 내용이 하락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한국의 경우는 이렇다할 복지 정책과 그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복지국가의 위기' 운운하는 것은 일종의 넌센스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이데올로기인지 아니면 현실에서 대세적으로 작동하는 '사실'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한국은 이미 복지국가를 경험하고 그로 인한 부작용이 현실화되어 복지국가가 위기에 처했다 할 만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국가 재정에서 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있고, 심지어는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보다 적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마당에 '복지'의 증대가 복지의존층을 양산하고, 저효울적이며, 경쟁력에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코메디에 가까운 것이다.
양극화의 시대, 국가의 역할은 증대되어야 한다.
저자는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 등의 이름으로 진행됐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중심에 있었던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거를 통해 일침을 가한다. '작은 정부', '규제완화', '최소정부' 따위의 이름으로 신자유주의는 경제영역에서의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저자는 빈부의 문제가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서는 교정될 수 없음을, 이윤을 최대의 목표로 삼는 '시장'이 자신의 기능을 통해 시장을 교정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아니 더나아가 빈부격차 문제가 신자유주의가 부흥하기 시작하면서 더 사회문제화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는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거가 아니라 그 반대로 '국가'의 교정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논증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2MB 정권이 경쟁과 효율을 최우선으로 하며 자본을 위한 '규제완화'를 입버릇으로 떠드고 있는 지금, 88만원 세대, 20:80사회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복지한국의 미래, 이해관계자 복지를 모색하자
저자는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저자는 한국의 복지 전망에 대해 그저 장미빛 청사진만을 제공하지 않는다. 진보정치 경험의 일천성, 노조운동의 분열과 약화, 보수정치 담론의 유행 등을 이유로 그길이 험난함을 예고한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 복지 대안을 갖는 것은 유익하며 그를 위해 지금부터 준비하고 노력해야 함을 주장한다. 저자는 그 대안이 '이해관게자 복지'라 말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실질화를 이루어야 하고, 정치가 소수에 의해 운영되기 보다 '사회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중심에 '국가'가 있어야 함은 자명하다.
'대안없는 진보정치'는 분명 실패할 것이다. '구호'와 '선언'의 정치는 이미 국민으로 부터 멀어진 과거의 정치이다. 신자유주의 양극화시대에, 시장이탈자 양산의 시대에, 400만원 등록금의 시대에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지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하다. 저자가 말한 '이해관계자 복지'가 한국의 복지 모델로 적합한지 아닌지는 더 토론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한국의 복지문제를 총체적으로 펼쳐보인다.
"우리는 쇠락할 좌파 정당도, 위기에 부딪칠 만한 국가복지도 빈약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쇠락조차 과분할 정도로 낮은 정치적 제도화 수준은 시민사회의 부실한 구조적 여건과 맞물려 도약 가능성을 더욱 암담하게 만든다."('복지한국, 미래는 있는가' 중에서)
저자의 위 말이 그저 암울한 묵시록으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