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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 - 우파는 부도덕하고 좌파는 무능하다??
조지프 히스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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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태어나서 아버지에게 한번 맞은 적이 있다. 중학교 때 유흥비를 마련하겠다고 아버지 지갑에서 돈을 좀(많이)훔쳤을 때도 한 대도 맞은 적이 없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고, 늘 그렇듯 아버지와 나는 함께 집에 오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집에서 가장 한가한 사람은 나와 아버지였다. 동생은 재수생이었고, 어머니는 매일 밥 먹듯 야근을 했으며, 나는 학교를 휴학하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티브이에 나오는 사이좋은 부녀처럼 매일 아침 함께 나갔다가, 해질 무렵 집에 와서 함께 어머니 몰래 맛있는 음식들을 해먹었다. 우리에게 그날도 그런 날 중의 하나였다. 아버지는 비 때문에 운전하기가 쉽지 않다며 약간 짜증을 내셨다. 나 때문에 차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불평하며,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으며 사이좋게 티브이를 봤다. 늘 그렇듯 아버지가 즐겨보시는 뉴스를 시청했으며,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지만,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걸로 봐서는 그저그런 내용들이었던 것 같다. 아니, 민노당의 시위 내용이 담긴 영상이 잠깐 스쳐 지나갔던 듯도 싶다. 다만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봐라, 네가 지지하는 저 민노당인가 뭔가 하는 것들이 저렇게 데모질이나 해대니, 정치가 될 리가 있겠냐.” 그때 나는 밥을 먹다가 밥알을 채 넘기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아버지에게 그 ‘데모질’을 왜 하는지, 왜 해야만 하는건지, 저건 ‘데모질’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냥 화를 내고, 상을 엎었으며, 급기야는 아버지가 화를 내며 나를 한 대 때리셨다. 나는 설명도 하지 못하고 밥먹다가 아버지에게 맞았다는 것에 분해서 옆에서 돌아가고 있던 선풍기를 발로 차버렸다. 그리고 아버지는 밥을 먹다가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티브이를 발로 한번 찬 뒤,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게 우리 부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싸운 기억의 단편이다. 앞으로 더 싸울 일이 없다고는 보장할 수 없지만 어머니와 싸웠던 횟수보다는 현저히 적을 것이다.

당시 나는 우리 집의 투표권자중 유일한 민노당 지지자였으며, 유일한 운동권출신 대학생이었고, 집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읽던 책 어디에서도 내가 왜 그당시 민노당을 지지할 수 밖에 없었으며, 뉴스에 나오는 그 말도 안되는 소리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지지하던건 민노당의 사상이 아니라 그냥 막연한 좌파의식이나, 사상교육의 효과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아니, 신문사에서 매일매일 행하던 사상교육에서도, 나는 왜 우리가 한총련 집회에 가야하고, 노동자를 도와야하는지, 조국의 통일은 왜 앞당겨져야 하는지,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때 나는 신문을 읽으면서도 어딘가가 무척 답답했고, 왜 답답한지 몰라서 더 답답한채 얼굴을 찌푸리고 다녔다.

이 책이 조금 더 일찍 나와서, 이 책을 읽은 다음에 아버지와 논쟁을 벌였다면, 그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데모질’이라고 하는데 뭐였는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이 책을 그때 읽었다면 내가 왜 신문을 읽을 때마다 답답해 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경제학 책을 제대로 한권도 읽지 않은 내 잘못도 클 것이다.

난 경제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경제학 공부를 해야 문학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어느 선배가 말해준 적이 있었지만 소설책 읽기에 바빠서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우리 모두가 희생해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라는 말이나 ‘경제력을 살리기 위해서’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는 말들에 대해서, 그 ‘희생’과 ‘경쟁력’ ‘경제’라는 추상적인 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준 건 이 책이 처음이었다. 돈을 열심히 벌어도, 절대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극빈층은 사회보장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극빈층으로 삶을 마무리 하게 되는지와 같은 것들을 쉽고 간단하고, 좀더 작게 생각할 수 있는, 국가간의 무역을 빵집에 비유를 해서 설명을 한다던가, 보험의 구조를 수렵사냥꾼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나는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무언가가 그려지지 않으면 책을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책은 ‘경제력’ ‘희생’ ‘도덕’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구체적인 비유와 도표를 이용하여, 쉽게 설명하고 있다.

소설가 박형서는 「논쟁의 기술」에서 논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아는 주제가 아니라 내가 잘 알고 있는 주제를 찾아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대방보다 유리한 주제를 찾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무슨 책을 읽었는지, 전공이 무엇인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이제, 나는 “취직만 시켜준다면 운하를 파도 좋고, 용산을 파헤쳐도 좋아”라고 말하는 그 누군가에게 당신이 생각이 왜 잘못됐는지, 이제 더 이상 선풍기를 발로 차지 않고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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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바스 바디밀크(정말 순한 타입) - 450ml
아모레퍼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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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나름 부드럽고, 

흡수도 잘 되긴 하는데,  

저한테는 냄새가 좀 거슬리네요. 

약간 분냄새 비슷한게 나는데 좀 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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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이 잔뜩!


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사랑의 기하학
존 치버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15,500원 → 13,950원(10%할인) / 마일리지 770원(5% 적립)
2009년 06월 16일에 저장
품절
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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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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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흐트와 아들
빌렘 얀 오텐 지음, 유동익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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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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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첫 문학과지성 시인선 345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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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첫,  

제목도 제목이지만 시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시인의 생각, 마음, 느낌의 진실함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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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현대문학 테마 소설집 1
하성란.권여선.윤성희.편혜영.김애란 외 지음 / 강 / 200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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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소설가가 말하는 서울. 

소설도 소설이지만, 

각각의 소설가가 바라본 서울의 모습이 너무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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