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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나는 아닌 줄 알았는데;
나는 이주민에 대한 혐오발언을 하지않으려 노력하고, 동성애를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장애인 문제에 나름의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아닌 줄 알았다. 차별주의자도 선량한 차별주의자도.
그렇게 자신있에 읽어내려간 이 책은 내가 차별주의자임을 깨닫게 했다.
하루는 친구 생일파티에 가는 버스 의자에 앉아 이 책을 읽었다.
‘그래그래 맞아 이렇게 하면 안되지, 세상엔 참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많네‘
이 때까지, 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에게 열심히 혀를 내두르며 생일파티 장소에 도착했고,
아쉽게 읽어내려가던 책을 포개어 가방 속에 넣어두었다.
생일파티는 정말 재밌었다.
‘복고‘가 컨셉인 생일파티었고, 우리 모두는 복고 의상을 준비해왔다.
사진도 찍고 케익도 먹었다. 단연 그날 메인으로 해야할 일은 ‘사진 많이 남기기‘.
생일 당사자인 두 친구 빼고는, 미리 주문한 요상한 소품을 장착했다.
안경이었다. 그 소품 안경은 쓰면 도수가 심한 안경처럼 눈이 굉장이 커보이거나 작아보인다.
소위 ‘바보 안경‘이라고 불리는 인싸가 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나도, 친구들도 그 안경을 썼다.
사진찍으며 깔깔 댔다.
넌 진짜 바보같다며 웃었다.
너무 재밌었다.
그날 한참을 재미있게 웃고나서는 나는 다시 집에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다시 책을 펼쳤고, 나는 내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임을 확인했다.
(책 내용 중)
...어떤 유머에 대해서는 별 문제의식 없이 익숙한 상태로 지낸다. 장애인을 낮추어 부르는 ‘병신, 바보‘라는 말을 특별히 즐기지도 않지만
일상적인 사용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어떤 유머는 유희로서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어떤 집단을 놀이의 소재로 삼아도 되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분명 서로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도 병신이란 말은 쓰지 않는다. 병맛이란 말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생일파티에서 난 ‘바보‘라는 말을 특별히 즐겼다. 유희로서 적극적으로 사용했을 뿐더러, 장애인을 놀이의 소재로 삼았다.
그 안경을 쓰고, 웃긴 표정을 짓고, 사진을 찍고, 해맑게 놀았던 것이 부끄럽다.
이렇게도 빨리 내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임을 깨달을 줄은 몰랐다.
너무 아쉽다.
저 내용이 나와있는 페이지까지 읽었더라면,
그 페이지를 읽고나서 파티에 참석했다면,
만약 그랬다면..
그 안경을 소품으로 시키고, 바보안경이라며 즐거워하는 친구들에게 적극적인 비판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 상황을 즐기지 않았을 것이다.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고, 웃음기 뺀 얼굴로 나름의 시위를 했을 것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바로 나임을 깨달은 지금,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이 책을 살땐, ‘얼른 읽고 다시 중고장터에 팔아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두고두고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며 내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임을 끊임없이 확인할 필요를 느꼈다.
김지혜 교수님이자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내가 선량한 차별주이자임을 더 늦지않게 깨닫게 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