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책 -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물건의 역사
키스 휴스턴 지음, 이은진 옮김 / 김영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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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싸고 가볍고 편리하다고 해서 전자책이 종이책을 밀어낼수 있을까?

손에 잡히는 질감과 종이의 냄새, 바스락거리며 펼칠때 나는 소리를 전자책에서는 느낄수 없다.

책속의 내용을 읽기 전부터 애서가에게는 책은 묵직함으로 전하는 매혹적인 사물 그 자체이다. 책다운 책을 소유하는 것으로 절반의 만족을 준다. 키스 휴스턴의 <책의 책 The book> 부제가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있는 물건의 역사'이다. 책은 존재의 무거움이다.

튼튼한 판지에 남다른 디자인과 컬러가 시선을 잡고 있어 서재에 꽂혀 있으면 요즘 쓰는 말로 '있어빌리티' 하다.

펼쳐 읽기도 전에 서점, 도서관, 가정 서재의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면 영혼이 살찌는 기분이다.

책의 탄생과 역사부터 책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있는 꽤 묵직하며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외관을 지닌 책이다.

키스 휴스턴은 문장부호 뒤에 숨겨진 특이한 이야기에 관하여 글을 쓰는 작가소개가 인상적이다.

이 책에 대하여 '종이 책을 향한 러브레터, 책에 바치는 오마주, 가장 책다운 책'이라는 여러 매체의 찬사가 있다.

책에 관한 책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에 남은 작품은 책을 불살라버려서 책이 없는 끔찍한 세상을 그리는 소설 <화씨 451> 이다. 책이 타는 온도로 지은 제목이지만

종이 책은 전자책과 공존할수는 있어도 영원히 사라지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사라지길 바랄수 없는 애틋한 것이다.

종이가 양피지를 대체하고 가동 활자가 필경사라는 직업을 없애고 코덱스 즉 제분한 책이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제쳤듯이 컴퓨터와 전자책이 아주 빠르게 종이책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p14

종이와 잉크 판지 풀로 이뤄진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장치로서 이제껏 우리와 함께 했고 우리가 오랫동안 신뢰했던 유형의 책에 관한 책이다. 질량과 냄새가 있고 책꽂이에서 꺼내면 손에 들리고 내려놓으면 쿵 소리를 내는 책에 관한 책이다. p15

책의 역사와 제작에 관한 것부터 책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종이책만의 고유한 특성을 사랑한다면, 책의 촉감과 냄새와 책장 넘기는 소리를 사랑한다면, 책이 사라지는 일은 오지않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면, 혹은 애서가라면 기대와 호기심에 들쳐봐야 할 책이다.

"파피루스에 글씨를 쓰는 경험이 불만스럽더라도 파피루스를 생각해낸 것 자체가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없었으면 책이란 것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 유럽 기독교인 사이에서는 파피루스를 폄훼하고 종이를 양피지에 비교하며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나님이라면 습지에서 자란 골풀같은 저급한 재료보다는 숫양과 염소 가죽으로 만든 책을 읽지않았겠냐며. 하지만 결국엔 종이의 승리다.

"피비린내나는 제조 과정이 만들어낸 핏기 없는 순결한 물질 수세기 또는 수천년 동안 사막의 더위와 유럽의 냉기를 견뎌낼수 있는 우아한 필기 재료 고대와 중세의 작가들이 그 시대에 가장 중요했던 종교 문학 과학 주제의 글을 기록한 매체 그게 바로 양피지다."

1부 '종이'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서 시작해 양피지를 거쳐 종이에 이르기까지의 변천사이다. 2부 '본문'은 문자의 출현부터 인쇄기 발명까지의 이야기를 한다. 3부 '삽화'는 책 디자인과 제작에 스며든 예술과 기술을 다루며 4부에서는 책의 겉모습 속에 감춰진 뒷이야기가 펼쳐진다.

"앵크 십자가는 부적을 지닌 자가 오래 살게 해주었고 호루스의 눈인 우자트는 부적을 지닌 자를 지켜주었다 마지막으로 수성잉크를 쓰던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깨끗이 씻어 거기에서 나온 물을 마시면 두루마리에 적혀 있던 비밀이 그 사람에게 전해진다고 믿었다"

이같이 신성문자를 새긴 부적은 그 기호가 의미하는 바대로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허먼 멜빌이 <모비 딕>에서 고래분류법을 이해하기 쉽게 책의 판형에 빗대어 설명했다는 것도 재밌었다.

책의 탄생과 2천여년 역사에 대해 책의 뒷이야기까지 깊이 있고 상세하게 탐구하여 전달하고 있는 <책의 책>은 다 읽고나면 책에 관하여는 아마도 박사가 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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