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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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만난 앤리스먼로의 거지소녀는 단편집이나 로즈의 일대기로 장편소설로 봐도 무관해 보인다. 제목에서 풍기는 거지소녀란 타이틀이 신데렐라의 다른 버전인가 싶어 식상함을 우려했으나 그렇진않았다. 가난한 아가씨에게 멋진 백마탄 왕자가 나타나 사랑을 하고 행복하게 살거라는 낭만적인 이야기는 이제 매력이 없다. 거지소녀에도 낭만적인 사랑이 나오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지않고 파경을 맞는다.

주인공 로즈의 시골 생활은 가난해도 너무 가난하다. 캐나다의 시골 풍경이 아름답지않다 전혀. 충격적일만큼 야만스럽고 원시적이고 비루하다.
그리고 로즈의 아버지와 새엄마가 보여주는 행태는 그 가난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 로즈에 대한 연민이 왜 안생기겠는가. 그러나 로즈도 만만치않게 요물로 보인다. 오만하고 기만이 뒤섞인 그 모든 묘사와 서술이 더더욱 아름답지않다. 곳곳에서
인물들이 보이는 노골적인 더러운 행태가 가히 추악하고 잔인하다. 캐나다의 시골이 우리나라 못지않게 아니 더 심한 추악함을 본다.

이때 이후로 로즈는 살인과 살인자에 대한 궁금증을 품었다. 끝장을 봐야하는 이유는 결국 부분적으로는 어떤 효과를 얻기 위해서 인걸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일어나지 못할 일은 없다고, 가장 무시무시한 허튼짓도 정당화될 수 있고 그 행위에 어울리는 감정도 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한 사람의 관객에게 -교훈을 깨닫더라도 깨달음을 표시할 수도 없을 상대에게 - 증명하기 위해서일까? p37

그들이 보여주는 지극히 과장된 연극적인 행태는 인간을 모조리 조롱하며 태연하다.
아버지의 매질이 장엄한 매질이라니 장엄한이 어울리는 용어인건가. 무섭다고 하기엔 그 매질이 가벼운건지. 폭력의 무게가 가혹해서 장엄한이 어울리는 듯도 하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가 싶다. 그가 보여준 매질은 이해하기에 벅차나 그런 일은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일어나지 못할일은 없다며 조롱하듯. 동시에 기분 나쁜 과거의 나의 추억도 소환한다. 애린스먼로도 실제로 이런 일을 당했다니 힘없는 어린아이에게 무자비하고 가혹한 처벌이다. 심적으로 더 깔아뭉개는 새엄마 플로는 어떠한가. 오만함을 꺾으려고 가해지는 폭력의 말, 말들.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이 말은 로즈에겐 오히려 긍정적 자극이 되지않았을까. 한찮은 존재이나 오뚝이처럼 강인하다. 플로는 인간적인 면이 있고 솔직하다. 로즈에게 자존심을 꺾는 말을 해서 결국엔 플로가 로즈를 강하게 키운듯하다. 그런면에서 플로가 밉지만은 않다. 콩쥐팥쥐의 나쁜 역만 맡은 계모와는 다르다! 또한 이 소설의 누구도 전형적이지 않은 개성이 뚜렷한 입체적 인물들이라 좋다.


그녀의 진짜 냄새는 무엇일까? 찌푸린 듯 자만한 인상을 주는 그녀의 다듬은 눈썹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기억하고 알고 영원히 간직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건 무슨 소용이었을까? 코라를 생각하면 로즈는 중심부가 녹아내리고 태운 초콜릿의 냄새와 맛이 나는, 결코 가닿을 수 없는 빛나는 흑점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런 지경에 이른 사랑을, 이토록 무력하고 가망 없고 미친듯 몰두하는 사랑을 어찌할 수 있을까? 제대로 깨져야만 할 것이다.p69

로즈는 어린 시절 우상처럼 동성에게 느끼는 묘한 동경과 사랑이 있었고 혼자만의 열병을 바보같이 들켰고 처참하게 끝났다. 로즈의 어린 시절은 무질서에 참혹하리만큼 원시적인 가난이다. 그러나 그런 시골의 더럽고 야만스러운 세계에서도 누군가는 여왕처럼 특권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인생은 로즈에겐 놀라운 사건들의 연속이다. 오히려 전쟁이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시설은 단정하게 개선이 되어 전시부흥기를 맞는다. 시골의 가난도 조금은 벗어나게 된다. 로즈는 장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오고 부자인 교수의 집에 머무르는 행운을 얻기도 하며 부자집 도련님 패트릭을 만난다. 도서관에서 낭만적으로. 로즈가 비로소 가난과 부유함을 견주게된 계기가 된 시기의 표현도 공감이 간다.

혠쇼 박사는 가난을 그저 불우함이나 결핍정도로 생각하는 듯했지만 가난은 그런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흉한 막대기 모양 전등을 사용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의미했다. p131

그가 그녀를 보고 낯을 찌푸렸다. 진정한 혐오감과 맹렬한 경고를 담은 얼굴. 유아적이고 제멋대로이지만 정확히 계산된 표정이었다. 역겨움과 증오의 때맞춘 폭발. 믿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보았다.
때로 로즈는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낯을 찌푸리고 싶은 욕망을 감지하곤 했다.p179


아름답지만은 않은 결코 낭만적이지도 않은, 그러나 인간의 면면을 세밀하게 통찰하여 미화하지 않고 있는그대로 냉정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거지소녀의 매력이다. 미묘한 심리는 극과극을 오가서 독자를 당황하게 한다.경악하면서도 깊이 빠져들고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하고 온전히 동화되어 버리기도 한다. 앤리스먼로의 초기작품인것이 다소 놀랍다. 심리 묘사가 특히 섬세해서 멋지다.

로즈는 이른 결혼을 하지만 10년만에 이혼한다. 아내라는 아름다운 환상을 꿈꾸었기에 순종하는 척도 했으나 그녀의 체질에는 맞지 않은 어울리지 않은 옷이었다. 가식에서 벗어나야 자유가 올까. 그러나 여전히 비루하고 잔인하고 조롱하는 삶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때 소름이 돋는다. 오만한 로즈도 증오의 눈길로 찌푸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패트릭이 얼마나 섬뜩했을까. 한때 사랑했던 패트릭도 예전의 그가 아니다. 누구도 미화하지 않고 오히려 치부가 더 노골적으로 비춰지는 게 현실에 더 맞아 공감한다. 읽는내내 불편한 지점도 분명 많았으나 동시에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아름답지 않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한번 읽고 버려지지 않을 소장하고 있다가 어느 날 다시 꺼내 읽고 싶어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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