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협려 8 - 화산의 정상에서
김용 지음, 이덕옥 옮김 / 김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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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었다. 방 오른편에는 그가 처음 고묘에 들어가 내공을 수련하던한옥 침상과 비슷한 모양의 침대가 있고, 방 가운데에는 기다란 줄이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은 사부 소용녀가 잘 때 쓰던 것이 분명했다. 창앞에 있는 작은 탁자는 그가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사용하던 것이었다.
방의 왼편에는 나무를 대충 맞추어놓은 옷장이 보였는데, 문을 열어보니 나무껍질로 만든 어린아이의 옷이 있었다. 자신이 어렸을 때 소용녀가 만들어준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양과는 방을 둘러보고 가구들을매만지면서 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커다란 두 눈에서는쉴 새 없이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때 갑자기 부드러운 손이 머리카락을 가볍게 어루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쁜 일이라도 있었어요?"
이 목소리, 이 말투, 그리고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이 손길은 자신을위로하는 소용녀의 것이 틀림없었다. 양과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눈앞에 나타난 여자는 눈부신 피부에 꽃처럼 아름다운 소용녀였다.
16년 동안 꿈에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던 그녀가 갈색 옷을 입고 양과의 눈을 가득 채우고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가만히 선 채 말을 잇지못했다.
"아!"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꽉 부둥켜안았다. 너무나 가볍고 부드러운 몸이었다. 이것이 정말일까? 이게 꿈이 아니고 생시일까? 그렇게 한참을 안고 있던 양과는 그만 목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용아,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요. 난…… 나는 이렇게 늙어버렸는데."
소용녀는 눈을 들어 양과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 P232

그러고 보니 아까 연못 아래에서 무슨 불빛을 본 것만 같았다. 분명뭔가 이상한 빛이었다. 양과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 어찌 된 일인지 사연을 밝혀내고 말겠다. 용이의 유골을 찾을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겠어!"
양과는 그대로 연못으로 뛰어들어 아까 가라앉았던 곳까지 들어갔다. 깊이 들어갈수록 물은 차가웠다. 한참을 들어갔으나 주위는 갈수록컴컴해질 뿐이었다. 양과는 내공이 강해 추운 것은 견딜 수 있었으나 강한 부력은 당해내기 힘들었다. 아무리 힘을 써 들어가보려 해도 결국 바닥까지는 닿을 수 없었다. 점차 숨이 가빠진 양과는 연못 밖으로 나와숨을 고른 후, 커다란 바위를 들고 다시 뛰어들었다. 양과의 몸은 아까와 달리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다. 눈앞이 환해지는 순간 얼른 바위를 놓고 빛이 나오는 쪽으로 헤엄쳐 갔다. 그러자 어떤 기운이 몸에 부딪쳐오는 듯했다. 그는 계속 헤엄쳐 빛이 나오는 곳까지 접근했다. 가고 보니역시 동굴이었다. 그는 손발을 휘저어보았다. 동굴 안은 비스듬히 위로올라가는 얼음굴이었다. 양과는 망설이지 않고 굴로 들어가 떠내려가는 대로 몸을 맡겼다. 잠시 후 세찬 물소리와 함께 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눈앞이 환해지며 꽃향기가 풍겼다.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양과는 물에서 나올 생각은 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꽃들은 만개하고 풀이 뒤덮여 있는 것이 마치 커다란 화원처럼 보였다. 양과는 놀 - P230

라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마음속은 반가움으로 벅차올랐다. 몸을 솟구쳐 물에서 나오는데 10여 장쯤 되는 곳에 작은 초가집이 보였다. 그러나 사람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양과는 기운을 내어 달려갔다. 3~4장쯤 정신없이 내달리던 양과의 걸음이 갑자기 느려졌다.
후 저 초가집에서도 용이의 흔적을 찾지 못하면 어쩌지? 그러면 난어찌해야 할까?‘
초가집이 가까워질수록 양과의 걸음이 느려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마지막 희망이 물거품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솟아났다. 초가집으로 다가간 양과는 우선 귀를 기울여보았다. 주위가 너무조용해 자신의 숨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옥봉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양과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열었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집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양과는 팔을 뻗어 문을 살며시 밀어보았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성큼 걸음을 옮겨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던 양과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집 안에 있는물건과 배치는 간단하고 소박했지만,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방안 에는 탁자 하나와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탁자와 의자가 놓인 방향이 양과의 눈에 너무나 익었다.
이고없이 고 - P231

"혹시 무공이 없어진 건 아니에요? 못 올라가겠다면 내가 업고 갈게요."
소용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16년 동안 진보는 없었지만, 전에 배운 무공은 모두 남아 있어요."
양과도 마주 웃어 보이고는 왼손을 들어 밧줄을 잡았다. 힘을 주는가 싶더니 그의 몸은 어느새 오 장이나 올라갔다. 소용녀도 그 뒤를 따라 올라갔다. 두 사람은 금방 계곡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나란히 단장애 앞에 선 두 사람은 과거 소용녀가 석벽에 새겨놓은글자를 바라보았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듯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그간의 안타까움은 모두 사라지고 벅찬 기쁨이 가슴을 채웠다. 양과는16년 전에 그랬듯이 용녀화를 꺾어 소용녀의 귀에 꽂아주었다. 그 모습이 예전 그대로 아름다워 보였다. - P241

‘이 휘파람 소리! 환청인가?‘
곽양은 가슴이 떨려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살폈다. 이 소리는 그때양과가 맹수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든 그 휘파람 소리가 틀림없었다. 휘파람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서북쪽의 몽고군이 나뒹굴며 양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그 위에 두 사람이 칼과 창의 숲을 뚫고 마치 큰배가 물결을 가르듯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두 사람 앞에서는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두 날개를 펼쳐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오는 화살을 모두 떨어뜨렸다. 이 커다란 새는 바로 양과의 신조였다.
곽양은 반색을 하며 그 두 사람을 응시했다. 왼쪽 사람은 푸른 관에황포를 입은 양과였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흰옷을 펄럭이는 미모의여자였다. 두 사람은 모두 장검을 들고 춤추듯 하얀 검광을 펼치며 신 - P253

상곽부는 양과 앞으로 다가가서 공손하게 절을 했다.
"양 오빠, 제 일생 동안 오빠에게 미안한 짓만 했는데도 이렇게 넓은 아량으로 과거의 허물을 덮어주니….…."
99곽부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메었다. 과거 양과가 그녀의 목숨을 여러 차례 구해주었으나 곽부는 끝내 그와 감정이 좋지 않았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양과를 미워했다. 오히려 그가 자신의 무공을 믿고 그것을 과시하기 위해 도와주는 것이지결코 진심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남편까지 구해준 양과에 곽부는 비로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생겼고, 지난날의 잘못을PesoI
"동생, 우린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어. 비록 이런저런 일들이 있기는했지만, 그래도 남매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날 미워하고 싫어하지만TO곽부는 할 말을 잃었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뉘우쳤다.
양과는 손을 저었다.
않는다면 난 괜찮아."
리를 스쳐갔다. - P267

황약사
"노완동, 정말 대단하시구려. 나나 일등대사도 명예를 헛된 것으로여기지만, 노완동은 마음을 완전히 비웠구려. 명예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이니 역시 우리보다 한 수 위입니다. 동사, 서광, 남승, 북협, 중완동中童이 어떻습니까? 천하오절 중 노완동이 최고이십니다."
모두들 ‘동사, 서광, 남승, 북협, 중완동‘ 이라는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도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참으로 적절하고도 재미있는 별칭이었다. 한동안 즐거운 대화를 나눈 일행은 사방으로 흩어져 화산 곳곳의 절경을 감상했다.
양과는 옥녀봉을 가리키며 소용녀에게 말했다.
옥녀검법을 배운 우리가 옥녀봉을 구경하지 않을 수 없죠."
"맞아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옥녀봉 정상에 올랐다. 옥녀봉 정상에는 작은 사당이 있었는데, 그 옆에는 석마石馬가 한 필 세워져 있었다. 그 사당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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