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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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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우화라는 이름은 정말 익숙하게 들어왔지만, 이 우화를 엮었다는 이솝에 대한 얘기는 들어보지도 찾아보지도 않았었다. 그저 이솝이라는 사람이 쓴 동화 같은 이야기인가 보다 싶었던 것이다. 우화의 뜻도 사실 잘 몰랐다. 누군가가 “우화의 정확한 뜻을 말해주세요.”라고 했다면, 아마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화란 인간 이외의 동식물이 마치 인간과 동일한 동기와 감정으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처럼 묘사하면서, 풍자를 통해 교훈이나 처세술을 가르치는 설화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솝우화 해제 p.426)

이솝은 무려 기원전 620년 경의 사람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보다도, 플라톤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 보다 더 오래전의 인물이라니, 왜 나는 그냥 중세 시대쯤에 살았을만한 사람을 상상했을까. 내가 다 궁금하다 정말. 어딘가에 편견이 있었나 보다.

그리스의 대중연설가들처럼 언젠가는 이 이솝우화들을 써먹을 생각에 두근대며 글을 읽기 시작했다.

한동안 책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체력에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살아오다 보니, 책 다시 읽기 시작할 동기가 필요했는데, 한 편이 500자를 채 넘길락 말락 하는 분량의 이솝우화는 부담감을 확 줄여주었고, 한 권을 다 읽었다는 성취감마저 주고 있었다. 지금 시기에 딱 고마운 책이었다.

이솝우화를 읽다 보면 우화의 마지막 부분엔 이 이야기는, 이처럼, 이런 식으로 교훈을 주는 내용을 적어두었다. 이는 이솝이 직접 한 말이 아니라 이솝 우화를 수집하고 전승하던 사람들이 덧붙인 말이라고 한다. 한 이야기에 반드시 하나의 교훈이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내용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나에게 모두 교훈이 되지는 못했다는 점인데, 지금으로부터 무려 2640여 년 전의 이야기들이라고 하면... 내가 지금 모두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끄덕여지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 사회가 참 변함없이 비슷한 일들과 문제들이 발생하는 사회라는 것일 거다.

그래도 모처럼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도 나고, 어린 마음으로 돌아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수용적인 태도의 나를 느껴볼 수 있었다.

언젠가 조카들에게 훈계 아닌 훈계를 하게 될 때에 이 이야기들을 활용해도 좋겠다 싶었고,

성인이나 나이 드신 분들에게도 직접적인 이야기로 전달하기보단 이솝 우화를 활용해서 말해볼 생각에 신이 나기도 한다. 나는 대체 얼마나 써먹을 수 있을까.

이솝우화를 마치 실용서 대하듯 하는 내가 참 재미있게 느껴지면서도 나도 이솝우화를 전승하는 입장에서 교훈 부분에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솝도 왠지 이해해 줄 것 같다.
같은 이야기로 여러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않을까.

총 358개의 우화로 이뤄진 이 책은 책 읽기 힘들거나, 완독의 성취 경험을 꼭 가지고 싶은데 마음의 여력이나 체력이 부족할 때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무려 435페이지를 한 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은 얼마 없지 않나. 추천
.
#현대지성 #어른동화 #이솝우화 #고전문학 #현대지성클래식 #책추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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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들의 이상한 과학책
신규진 지음 / 생각의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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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과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정도를 가지고 좋아한다고 말해도 돼?란 생각도 있다.
내가 어렸을땐(라떼는 말야~) 초등학교 다닐때 자연이라는 교과목이 있어서 과학을 처음 만날 수 있게 했다. 연두색 표지에 개구리 사진 같은게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나에게 있어 과학은 자연이었고, 하늘과 물과 불이었고, 공기였고, 내가 살고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해왔다. 그건 아마도
고등학생때쯤 과학의 여러 과목들, 생물, 물리, 화학, 지구과학 등 이게 뭔지도 모른채 외우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근본적인 원인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그것은 수학.
이 책을 읽으면서 수학과 과학은 뗄레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학은 과학을 언어화한 것이라는 말이 마치 처음 듣는 말처럼 느껴졌다.
내가 수학을 기점으로 물리와 화학을 점점 등한시하면서 과학을 멀리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 이런 책이 있었다면... 나는 정말 과학을 조금은 더 사랑했을것이다. 그리고 이해도도 더 높았을 것이다.


이 책은 약 400페이지로 28명의 과학자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엔 '아, 과학자들 이야기구나. 과학자들의 인생사나 업적 같은 것들이 대체적인 줄기겠군.'이라고 얇팍하게 생각했는데, 좀 색달랐다.
그들의 연구 이론도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과학자들과 얽혀있는 다른 과학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게다가 학교 다니면서 외우던 여러가지 공식들, 그리고 그 공식들의 이름이 붙여진 유래 같은 것도 한꺼번에 확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시나 아쉬운건 이 책이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 나와줬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이냐다. )
위대한 과학자라며 위인전처럼 쓰인 글이 아니라 좋았다.
과학자 그 찌질한 사람들이란 부제가 붙어도 좋을만큼, 그들은 대단한 업적과 함께 매우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났다.
자세한 그림설명과 공식, 그리고 각주 등을 통해 이해도를 한껏 끌어올리는 책이다.
400페이지가 넘지만 곳곳에 그림과 사진이 포진하고 있어 그렇게 부담스러운 분량의 내용도 아니다.

제목이 왜 "최고들의 이상한 과학책"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좀 생기지만, 내 생각엔 이상한 과학자들이지만 최고의 과학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아 그리고 화가 나서 빨간색으로 플래그를 붙이던 곳이 있는데, 여성 과학자 "리제 마이트너"에 대한 이야기 중이었다. 당대 유명한 과학자들이 "자연은 여자를 어머니와 주부로 설계했다."라고 생각했던 것도 짜증났고,'여자는 머리가 길어서 실험하다가 불이 붙으면 위험하다'라고 하며 실험실에 못들어오게 한것도 화가났다. 게다가 단독연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논문 제 1저자에 남자 이름을 끼워넣어야지만 발표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명성은 남자가 가져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 화가났다.
가난한 사람, 학업의 기간이 길지 못했던 사람, 신분의 차이가 있었던 사람의 이론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사례들도 무척 분개할 만한 내용이었다.
지금도 남녀 뿐 아니라 여러가지 부분에서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부분이 많이 발견되지만, 과거 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사회라는 것이 생각보다 젠틀하고 멋지지만은 않았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을 많이 알려줘서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과학적 결실들이 맺어졌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여러가지의 근원적 바탕이 되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도 든다.

이 책은 마냥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어려운 내용을 참 쉽게 썼다고 본다. 그러므로 의미없이 배웠던 과학의 세계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괜히 배운게 아니라는 생각을 원한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과학자의 인생 스토리도 재미있고, 잊고 있던 여러 이론들을 마주하게 되어 새록새록 기쁠 수 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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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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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만 읽으면 모든 게 다 용서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미치 앨봄의 책은 처음이다. 하지만 이 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유명한 책을 쓰신 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고등학생 때 책 많이 읽던 친구 책상 위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사실 꽤 많은 친구들이 읽고 있어서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읽었다니....

작가의 삼촌 에디에게서 영감을 얻어서 쓴 작품이라고 한다. 게다가 그의 전작이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인데.. 이 소설 내에서도 천국에서 다섯 사람을 만난다.

전작도 무척 궁금하다. 거의 비슷한 내용일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없으니 말이다.

 

"인생에서 너무 젊다는 게 뭘까." 가장 먼저 그었던 한 줄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애니라는 서른 살의 여성이다.

그녀는 간호사이고, 갓 결혼을 했고, 결혼하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는 시간이 되기까지를 카운트하며 소설은 흘러간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부터 "애니, 실수하다."라는 주제로 그녀의 과거가 그림처럼 그려진다. 그렇게 그녀의 실수가 과거로부터 시간 순으로 총 아홉 번 전개된다. 애니는 자신의 실수를 되돌아보며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실수들로부터 용서를 받기도 한다. 다 괜찮다고, 그런 실수는 인간이라면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이 책에서는 죽은 후의 사후세계에서는 다섯 명의 내 인생과 관계된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들로부터 괜찮다는 말을 듣게 되는 과정을 거쳐 천국에 간다.

 

애니의 첫 번째 사람은 애니의 손을 고쳐준 의사, 사미르.

그녀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첫 시작을 함께 해주며 가르침을 준다.

상처를 통해 연결된 인연이다.

"말해봐요, 애니. 당신이 태어나면서 세상이 시작됐습니까?"

"물론. 아니죠."

"그래요. 당신이 태어나면서도, 내가 태어나면서도 세상이 시작된 게 아니에요. 그런데 인간들은 지상의 '우리'시대를 뭐라도 되는 듯 대단해합니다. 그 시절을 따지고 비교하고 묘비에 기록하지요."

사미르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우리 시대가 다른 시대와 이어진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우린 한 시대에서 옵니다. 또 한 시대로 돌아가고요. 연결된 우주는 그런 식으로 이해되는 겁니다."

-중략-

"이걸 기억해요, 애니. 우리가 뭔가 세울 때는 앞서간 이들의 어깨 위에서 세우는 겁니다. 우리가 산산이 부서지면 앞서간 이들이 우리를 다시 붙여줍니다."

"나를 알든 모르든 우린 서로의 일부입니다."(p.77~78)

 

 

두 번째 만남은 친구, 클레오였다. 애니의 어릴 적 반려견 클레오. 그녀의 상처받고 외로운 마음을 채워준 친구.

외로움은 슬픈 상처일 수도 있지만 그 외로움에 이끌린 소중한 연을 이어갈 수 있었음을 전해준다.

"애니, 우린 외로움을 두려워하지만 외로움 자체는 존재하지 않아. 외로움은 형태가 없어. 그건 우리에게 내려앉는 그림자에 불과해. 또 어둠이 찾아오면 그림자가 사라지듯 우리가 진실을 알면 슬픈 감정은 사라질 수 있어."

"진실이 뭔데?"

애니가 물었다.

"누군가 우리를 필요로 하면 외로움이 끝난다는 것. 세상에는 필요가 넘쳐나거든."(p.113)

세 번째 만남은 엄마 로레인. 애니가 어렸을 때엔 엄마의 삶이 어땠는지, 왜 그런 훈육 방법을 선택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천국에서 만난 엄마의 눈을 통해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

"그 모든 규칙? 내가 부과한 모든 제한과 귀가 시간? 다 그날 때문이었어. 다시는 실수하고 싶지 않았거든."

"그런 것들이 엄마를 미워하게 만든걸요."

애니가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날 더 미워했지. 난 너를 보호하지 못했어. 너를 혼자 뒀지. 그 후로 다시는 날 좋은 엄마로 생각할 수 없었단다."

"너무 창피했어. 내가 나를 닦달할 때면 너를 닦달하게 됐지. 후회에 눈이 머는 법이란다, 애니. 자신을 벌주는 사이 다른 누구를 벌준다는 걸 모르지."(p.163)

 

네 번째 만남은 애니가 어렸을 때 사고에서 목숨을 구해준 어른, 에디.

그는 애니를 구하고 목숨을 잃었지만, 애니를 구하는 것으로 구원받았다.

 

"다섯 사람을 만나고 나면, 네가 다른 사람의 다섯 중 한 명이 되는 거야. 그런 식으로 천국은 모두 연결되지.("p.211)

마지막 만남은 애니의 남편 파울로.

애니의 폐를 이식받아 잠시 숨을 쉴 수 있었지만, 결국 천국으로 가버리고 만다.

애니에게 할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는.

 

천국으로 가는 길에 다섯 사람을 만났지만 애니는 다시 살아난다. 자신이 할 일이 남아있다는 것을 인지한 채 말이다.

그리고는 파울로와의 사랑의 결실과 자신의 인생이 의미 있음을 깨닫는다.

 

이 글을 지은 미치 앨봄은 영감을 얻었던 에디 삼촌으로부터 이런 말을 항상 들어왔다고 한다.

자신은 해놓은 일 없는 하찮은 존재라고 말이다.

저자는 아마도 그렇지 않다고 세상에 하찮은 존재는 없다고,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다는 것을 따뜻하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삶의 의미가 불분명해지고, 자신의 실수만 생각나는 그런 날.

이 책을 읽는다면, 어쩌면 조금은 의미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언제 천국을 다녀와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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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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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은 첫 장을 바라보며 바로 알 수 있었다. 가정의 일상이 주황색 빛처럼 시작이 되어 어떤 단란한 가정의 일상사를 따뜻하게 그린 소설이겠구나라며 대뜸 정해놓고 읽고 있었다. 뻔할 것이라는 이상한 편견은 대체 어디서 가지고 온 것일까. 나중에 혹시라도 내용이 기억 안 날까 봐 기억의 꼭지들을 표시해 두었다.

더 잘 기억하고 싶어서 영화처럼 구도도 잡아보고, 대사도 여러 느낌으로 처리해보고, 무척 즐거운 소설 읽기였다.

내용은 너무 슬펐는데, 내가 유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많이 아프고 답답했는데, 결과적으로 소설로는 무척 재미있게 읽어버린 것이다.



유원은 이 사회에서 기적의 또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다. 또한 마땅하게도 항상 고마워해야만 한다고, 그렇게 살면 어떻게 하냐는 거북한 시선들 앞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을 무덤덤하게 단련해왔다. 그러던 유원이 예상치 못한 친구 수현을 만나면서 점차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답답한 의문들에 마주 서게 된다.

입 밖으로 내지 않는, 표현하지 않는 슬픔과 의문이란 것이 삶에 있어 얼마나 큰 장벽이 되는지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더 밝고 맑고 긍정적일 수 있는 나를 박탈당한 기분이 어떤 것일지 느껴진다. 그 박탈의 반대편엔 왜 악의가 크게 보이지 않는지, 그래서 마땅하게도 죄책감을 짊어져야만 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내가 발견되었다.

읽는 내내 유원에게 동화되어 나는 교복을 입은 채 고등학교에 다녔다. 옥상에 올라가는 것으로 숨을 조금 더 쉴 수 있었다. 그것이 그나마 가장 좋은 방법 같았다.

담담한 수현, 직설적인 수현,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수현, 이 책을 단숨에 읽게 하는 데에는 수현이의 공로가 컸다. 수현이 넌 대체 어떤 사람이니라며 찾아 헤매다 보니 결국 마지막 문장을 읽고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언니와 항상 존재하고 있는 언니, 그 언니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고민되는 것조차 무거운 돌에 깔려 숨을 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원래 계속 자는 애를 '처음으로' 깨우는 수현처럼, 유원 또한 자신을 깨우고 관계를 깨나가는 것으로 성장한다

이 소설을 통해, 따뜻한 응원의 한 마디가 그렇게 비수처럼 느껴질 수가 없었다. 평소에 해오던 감정이 덜 담긴, 아주 의례적이기 그지없던 그 한 마디들이 날카롭게 꽂힐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다짐한다.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큰 손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어디론가 숨고 싶어진다.

- P28

나는 왜 아저씨의 냄새에 예민해지고 아저씨의 말투와 사소한 습관을 판단하는지 나는 왜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대상에게 사나운 마음을 갖는지.

나는 텅 빈 어둠 속을 노려보다가 거실에서 들려오는 엄마, 아빠의 웃음소리를 듣고 뜨거운 것에 덴 것처럼 놀랐다. 웃음소리에 웃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웃음을 듣고 있다 보니 몸이 저며져 종잇장처럼 얇아지는 듯했다. - P43

그날 이후, 이전에 나를 몰랐던 사람들조차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나를 위로하고 축복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웃을 때면 생전 처음 보는 풍경처럼 낯설어 하고 약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행복을 바랐다면서도 막상 멀쩡한 나를 볼 때면 워낙 뜻밖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 당황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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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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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여행을 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기행문을 읽는 것은 꽤 행복한 여행 방법이 아닐까 싶다. 유홍준이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은 앞선 1,2편을 먼저 읽고 읽는다면 좀 더 큰 그림이 그려질 수 있겠지만, 3편만 읽는다고 해서 손해 볼만한 내용은 절대 아니다.

여행의 시작이 어디 점이 찍혀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내가 시작하는 곳이 시작점이지.

이 책은 실크로드를 여행한다. 중국 서안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시리아에 이르는 총 6,400킬로미터를 실크로드라고 말한다. 실크로드는 크게 동부, 중부, 서부로 나누는데 3편은 실크로드의 중부 구간을 여행하며 썼다고 한다. 오아시스 도시들을 여행한다.

항상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와 비단을 실은 상인들을 상상하면서 인간은 참 무모하지만 대단하다라고 여겨왔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을 건너갈 생각을 한 최초의 사람이 있었기에 길이라는 것이 생기고, 그에 따라 문화도 섞이고, 거기에 삶의 터전도 생긴 것일 테니까.

정말 인간의 생존능력은 지구 곳곳에서 발휘되지만 사막에서는 더더욱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유홍준과 일행의 실크로드 답사는 다 합쳐서 2주 정도에 걸친다. 2018년에 8박 9일, 2019년에 5박 6일.

이 답사단에 함께 하고 있었다면 나도 그들이 보고 느끼는 문화의 숨결을 엇비슷하게라도 공유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무척 부러웠다.

유홍준이 말하길, 젊었을 때는 모두 화려하고 발달된 문명을 경험해보고 싶어 해 파리, 런던으로 떠나는 배낭여행을 선호하고, 중년에 접어들면 유명한 박물관과 역사 유적을 찾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를 여행하고, 중늙은이가 되면 역사고 예술이고 골 아프게 따지지 않는 자연관광이나 온천여행을 선호하며, 노년에 가까워지면 티베트, 차마고도 등 인간이 문명과 덜 부닥치며 살아가는 곳을 보고 싶어한다고 했다. 그 이유로 인간의 간섭을 적게 받아 자연의 원단이 살아 있는 곳에 대한 그리움이 노년에 들면서 깊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여행의 맛을 아직 잘 모르고 살고 있고, (사실 알면 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시작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도 한데..) 앞으로도 강렬하게 여행을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 현재는 자연관광이나 온천여행 같은 것이 당기는 것을 보니 중늙은이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기회만 되면 어떤 여행이든 땡큐다.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대에 참여할 수 있다면 열일 제쳐두고 따라가볼 거다.

중국편이라고 하고, 지금도 중국이지만 이 중국편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중국이라고 하기엔 중국색이 옅다.

게다가 꽤 오랜 시간 손을 타지 않은 곳도 많기에 자연 소속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만 같았다.

도굴당한 오아시스 도시들을 보면 세계 강국이라고 하는 몇몇 나라들의 민낯이 드러난 것 같아서 부끄러워하라고 지적해 주고 싶었다. 지금 발견되었다면 좀 더 소중하게 발굴될 수 있었을까?라는 아쉬움도 생겼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도 꽤 여러 점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 참 멀리까지 가서 가지가지 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아시스 도시들엔 우리나라와 연관된 이야기들도 꽤 많았다. 고구려의 후예가 묻힌 장지가 드러나기도 하고, 강제 이주 당한 흔적도 발견된다.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혜초 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도 잠깐 등장하고, 몇 십 년 전에 배운 국사 시간 수업이 갑자기 소환되기도 했다.

오랜만에 역사에 대한 글을 읽다 보니 어디에 밑줄을 그어가며 기억해야 할까 고민도 되었다.

다른 책들보다 밑줄 긋는 부분은 현격하게 줄었지만, 나는 사막을 걷고 있었다. 기원전 후의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모래를 발로 밟고 상상할 수 있었다.

짧은 여행이지만 답사를 위해 사전에 꼼꼼히 준비하고 계획한 결과물로 나의문화유산답사기가 나왔다. 과거를 꼼꼼하게 다 알 수는 없지만, 여행을 통한 역사 맛보기로는 알짜배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은 사진도 꼼꼼하게 보길 바란다. 보면서 사진 잘 찍으셨네..라는 생각도 많이 들게 했다.

유적지도 유적지지만, 유물들도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매혹적인 느낌들이 많이 발견된다.

책을 읽으며 기원전의 이 세계도 꽤 많은 문명이 발달되어 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자, 중국 여행 말고, 사막과 오아시스, 오아시스에서 발견된 옛 삶의 흔적들을 함께 탐험해보고 오자. 나중에 이 답사 일지랑 비슷하게 여행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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