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 들어가는 중입니다
김도영 지음 / 봄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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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라는 장소를 생각하면 수감되어 있는 수용자들이 먼저 떠오르는 건 사실이다. 밖에서 떠드는 인권 어쩌고 하는 것들도 범죄자에 대한 것만 논의되고 거기서 근무하고 있는 교도관들은 마치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교도관들의 근무환경이나 겪는 고충들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교도소가 배경인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드라마도 있지만 사실상 교도관들에게 주목했던 것이 아니라 수감된 수용자들에게 감정이입 되도록 만들어진 드라마였으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죄를 짓고 교도소로 들어가는 범죄자들이 교도소 안에서 교화된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이다. 성악설 같은 것을 주장하는건 아니나 과연 본인 스스로의 깨달음 없이 강제적으로 행해진 행위로 반성같은걸 할까?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열악한) 환경에서 자라온- 만들어지다시피한 그 일그러진 인격들. 본인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죗값을 받으러 교도소에 들어가 놓고 그 안에서 출소한 뒤의 또다른 범죄를 계획하는 인면수심의 인간들.
물론 진심으로 반성하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겠다. 많아야 10에 1정도. 책 속에서도 저자는 많은 범죄자들을 만나지만 그 중 눈물로 참회하며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한 명이었다. (물론 책 속에선 등장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지만)
인권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없고 그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소실될 수 없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것을 이용하며 타인의 위로 군림하려는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성범죄자에게 당한 피해자가 저자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들은 교도소 안에서 반성을 하나요...?" 실상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기에 할 말이 없었다고. 이 상황이 정녕 맞는건가요.

군대를 다녀온 이후 교도관을 목표로 꿈을 키웠다는 저자가 대단하다. 환경이란것은 쉽게 무시 할 것이 못 되서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고 일하는지에 따라 사람의 성격까지 달라지고는 한다는데, 벌레가 득실거리는 노후된 건물에서 근무시간동안 외부와의 모든 접촉도 차단되고 범죄 이력만 훑어도 피가 거꾸로 솟는 범죄자들과 오랜시간 함께 하는 그의 모습은 책 속에서 꽤나 힘들어 보인다.
내비게이션에서도 검색되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근무하고 있을 교도관분들께 담백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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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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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 자체가 허구이긴하지만,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모르겠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이든 허구이든 1930, 40년대 헝가리의 소도시가 배경이라면 어쨌든 참혹한 시대였을 것이다.

총 3부작으로 나눠져있는 책은 쌍둥이 형제인 '그들'의 유년시절로 시작하는데, 읽는 페이지마다 한숨을 쉬게되는 구간이 있다.
글은 수식 없는 간결한 문체로 쓰여졌는데 1부 비밀노트의 '우리의 공부'에서 어렴풋이나마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잘했음'이나 '잘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이 소도시는 아름답다'라는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소도시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욕구를 우선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철저하게 상대방이 원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데 이 부분이 상당히 기이하다. 작품해설에서 저자는 그 쌍둥이 중 클라우스를 본인이 그토록 좋아하고 따르던 오빠를 생각하며 썼다고 되어있는데 그녀의 입장에서 오빠는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해주고 들어주는 인물이었을까. 그래서 이런 캐릭터가 탄생한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배고픔과 욕설 추위와 가난에 익숙해지려고 매맞는 연습을 한다던가, 단식을 하는 하루를 보낸다던가 하는 그들의 나이는 고작 10살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읽다보면 자꾸만 나이를 까먹게 된다.
엄마를 잃을때도, 아빠를 잃을때도 그들은 덤덤하게 상황들을 읊어낸다. 하지만 처참한 전시상황을 그대로 그려내기에 읽으며 고통스러운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들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뿐.

1부는 그들의 유년시절 이야기였다면 2부부터는 홀로 이곳에 남은 루카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2부 막바지부터 이어지는 3부는 혼란스럽다. 난 무엇을 믿어야할까? 무엇이 '현실'인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연일 뉴스 메인을 장식하는 요즘,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서민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책을 읽으며 지금 나의 이 '평화로움'에 새삼 감사한다. 물론 우리도 언제 이 평화를 잃게 될지 알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키는 모든 이들에게 천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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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82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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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냄새'로 가득한 소설. 18세기 프랑스의 악취가 실제 코로 느껴지는 기분이다.

시작부터 강렬하다. 훗날 살인자가 될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의도치않게) 참수시킨 것을 시작으로 그는 곧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몸에서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인데, 그의 주변에서 맴도는 사람들은 자신의 체취를 그 조그만 아이가 모두 빨아들이는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함께 강한 혐오감을 느낀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에 대한 소재로 독자를 이렇게나 매료 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치 이것은 실제로도 충분히 일어날수도 있는 일이다-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사람은 일반적으로 눈, 코, 입, 귀, 손 등의 기관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접한다. 그런데 저자는 인간은 실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스스로의 결정으로 그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모두 착각일 뿐이며, 냄새로 심지어 인기척까지 숨길 수 있다고 실제 독자들을 믿게 만든다. 읽는 중 나 스스로도 의심하는 순간이 있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것들이 냄새에 속아 나도 모르게 판단하고 다른 기관들이 독립적으로 인지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은 깊이에의 강요, 좀머 씨 이야기에 이어 세번째다. 깊이에의 강요때도 느꼈지만 흡인력이 대단하다. 등장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탁월하게 묘사해 내는데, 읽다보면 어느새 공감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끝도없는 지질함과 비열함, 한마디로 구역질이 나는 내면의 모습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결국 그 혐오스러운 인간들은 모두 그르누이와 작별하고 바로 죽어버리는데, 그들에 대해 사전에 늘어놓은 구역질나는 모습들로 인해 그다지 동정심이 느껴지지 않는 점도 작가에게 설득 당해 버려서 그런 걸까.

약 15년간 우리집 책장에 꽃혀있던 책을 이제야 다 읽었다. 왜 그런지 매번 챕터 1부 5장? 정도까지만 읽고 덮었던 것 같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소설가 김영하는 읽을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책장에 꽃혀있던 사놓고 안 읽은 책을 시간이 지난 뒤 읽었을 때 명작이면 이렇게나 만족스러울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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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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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과 데이비드가 처음 만난 시기에는 혼전 성관계, 혼외정사, 이혼과 같은 것들이 마치 일반적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으나 사실 지금의 한국사회는 '고지식한' 해리엇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현실감있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래서 일까.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 그러니까 방이 여러개 있고 다락방도, 정원도 있는 3층짜리 큰 저택에서 아이를 최소 8명 이상은 낳고, 가족 친척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부활절에 큰 파티를 몇일, 몇달간 벌이고... 축제는 계속 이어지고 모두 즐거워하는... 그런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의 철없는 이상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얽혔고 모든 일은 틀어졌다.

개인적으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에 특히 두려움과 책임감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가족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애초에 8명(?!)이상을 낳아 큰 저택에서 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모두 '행복'할 것이며... 와 같은 계획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가장 큰 이유 두가지는 그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과 아이는 내가 원하는대로 태어나고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덜컥 사버린 분수에 넘치는 큰 집과 당장의 욕망으로 제대로 피임하지 않아 생긴 첫째 아이를 시작으로 이미 그들의 불행은 예정되어 있었다고 본다.
둘째, 셋째, 넷째 아이까지 낳고 기르며 금전적으로든 아니든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엄마, 아빠 모두가 소환되었지만 감당할 수 없었다. 본인들이 원하는 가정의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돈, 에너지를 썼다.

글은 삼인칭 시점으로 쓰여졌지만 해리엇이 느끼는 고뇌는 그대로 전달된다. 그녀는 벤을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상한 아이'로 취급하며 고통스러워 한다. 이 이상한 아이가 날 공격한다고. 저자가(해리엇이) 묘사하는 벤은 겉모습부터 예사롭지 않은 도깨비, 요괴같은 아이지만 한편으로 이런 의문도 든다. 정말 벤은 괴물이었을까? 단지 해리엇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이'가 아니라서. 뱃속에서부터 '이미 괴물로 단정되어버려서' 그렇게 그려진것은 아닐까. 사실 남들에 비해 힘이 세고 발달이 늦는 것 뿐이었는데.
마지막까지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의심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행되는 내내 벤은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니까. 그렇지만 해리엇이 처음부터 그린 허상을 생각하면 아주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닌 듯 하고.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원하고 동시에 절대 불가능한 것이 각기 다른 인격체들을 가진 타인을 내가 원하는대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일거다.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계획한 가정의 모습은 그 말도 안 되는 노력 위에 그려졌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 같은 무계획'을 무조건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난 남들과 똑같이 그저 성실하게 살아왔고 그저 소박한 소망이 있을뿐인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같은 물음은 나도 당신도 하는 일일테니.
해리엇은 매일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 왜 내 뱃속에서 벤 같은 아이가 태어난거야?... 왜냐고?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벤의 종족은 위쪽 땅 위에서는 빙하시대가 진행되는 동안 땅속 동굴속에 살면서 어두운 심연의 강물로부터 생선을 먹거나 냉혹한 눈 위로 몰래 나가 곰이나 새를 잡았던 종족>이 아닌, 그냥 조금은 특이한 아이가. 어쩌다보니.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모든 일은 그렇게, 그냥 일어나기도 한다. 불행을 하나의 벌, 하다못해 기억도 나지 않는 전생의 업보 따위로 엮기엔 너무 가혹해보인다.

책에서는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내린 크고 작은 결정들이 상세히 그려져있어 어리석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며 쉽게 손가락질 할 수 있지만, 그들이 그린 전통적인 가정의 모습은 21세기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확실히 20년, 10년전보다는 달라지긴 했으나 '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야지. 아이는 몇명을 낳을까? 둘만 낳자. 첫째는 아들, 둘째는 딸이 좋겠어.' 와 같은 막연한 대화를 하는 사람들을 해리엇, 데이비드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도리스 레싱의 작품은 '풀잎은 노래한다' 이후로 두번째인데 첫 책을 읽을 때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서 미묘하게 변하는 등장인물의 심리묘사가 특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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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 - 가장 민주적인 나라의 위선적 신분제
이저벨 윌커슨 지음, 이경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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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 중 단연 최고다.
제목만 보면 인도의 이야기인가 싶기도 한데 인도의 카스트제도뿐 아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뿌리깊은 미국의 인종차별, 독일 나치의 인종주의, 그밖의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에 대해 카스트체제라고 명명하고 낱낱이 파헤친다.

노예해방 후 흑인 노예들은 자유로워졌지만 결국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기에 계속해서 백인들의 노예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표면적으로만 해결된 것처럼 보일 뿐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나빠졌다. 흑인들에 대한 혐오는 갈수록 심해져 린치가 자행되고 관련한 다양한 사건 사고들이 최근까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건 카스트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스스로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부분 ‘나는 차별을 하지 않아. 모두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라고 하겠지만 백인, 흑인 둘이 동시에 범죄 현장에서 목격되었다면 본능적으로 머릿속에서 흑인이 범인일 것이라고 단정지어버리는 것. 저자가 말하는 것도 이런 것이다.

•여성은 회의·회사·국가를 이끌 능력이 없다고, 유색인종·이민자는 권위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여기는 것. 누군가를 보며 특정 지역에 거주할 수 없다거나, 특정 학교에 다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개인의 상처·충격·분노·불공평에 고통스러워하는 것. 하위 계층의 사람이 예상보다 훨씬 더 좋은 직업·자동차·집을 소유하며 명문 대학엘 다니고 권위 있는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며 불쾌해했단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다가, 또 노인네들은 소프트웨어 개발보다는 보드게임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 카스트가 우리의 의식 속에 절묘하게 코드화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반증이다. 카스트에 젖어 있다 보면,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게 된다.

사실 한국에 사는 우리는 인종차별을 직접 겪을 일이 많지 않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사건들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개개인의 일상속에서 직접 겪지 않는 한 피부로 크게 와닿지는 않을거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카스트를 인종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여성,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성 소수자, 노약자 등으로 확대를 하면 어떨까. 이렇게 본다면 카스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동 급식 카드로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는 아이를 본 한 중년여성이 지원받아서 먹는 주제에 사치스럽다고 항의했다던 글이 떠오른다.)

저자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카스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나의, 내 이웃의, 그리고 국가 안에서의 카스트에 대해 이해하고 만연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카스트에 대한 태도를 추천사를 쓴 장혜영 국회의원의 글을 빌려 말하고 싶다.

•시민을 서열화하고 수직 계층화하는 낡은 카스트를 방치하면, 결국 그 대가는 고스란히 모든 이의 고통이 된다. 사회 구조의 취약성은 약자를 가장 먼저 덮치고, 그 약자가 무방비로 방치될 때 사회의 위기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지금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당장 해야 할 일은 서로를 규정하는 낡은 카스트를 부수고 함께 공정해지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이토록 당연하지만 못 본 척했던 사실을 강렬하게 일깨운다. 우리를 옥죄는 카스트를 깨기 위해, 먼저 우리는 카스트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카스트》는 우리 안의 불평등을 직시하기에 최적인 적외선 카메라다. 책에서 만난 가장 강렬한 질문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져보고 싶다.

“당신은 어느 카스트에 속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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