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 휘청거리는 삶을 견디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법
캐서린 메이 지음, 이유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약 1년간 걷기 여정과 혼란스러운 스스로의 내면을 유려하게 그러나 거리낌없이 드러낸 글이다. 목적지를 정하고 그 곳을 정복하고자 하는 걷기가 아닌, 어딘가를 걷고자 하지만 길을 잃으며 발길이 닿는대로 떠나는 조금은 특이한 걷기다. 물론 길위의 방랑자처럼 잠을 아무데서나 자거나 하지는 않는다. 남편인 H는 아내의 여정을 지지하며 차를 타고 데려다주고 데리러오는 일을 1년 넘게 반복한다. 거기에 어린 아들인 버트도 함께. 꽤 현실적이기도 하다. 결혼한 상태의 아이 있는 엄마인 저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발이 닿는대로(물론 걷기 시작할때 목적지는 분명히 정해두었지만) 마음이 흘러가는대로 독자도 함께 길 위를 걷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가 묘사하는 주변 풍경, 바람, 냄새, 촉감,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동행하는 기분.

사전에 아무런 정보 없이 보았다면 그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어린시절을 보낸,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시선으로 자신과 주변을 보는 사람이라고 여겼을것이다. 저자 스스로도 마치 운명같은 그 라디오 방송을 듣기 전까지는 혼란스러운 유년과 사춘기를 보내고 사람들과 섞일 수 밖에 없는 사회생활을 하며 사회성을 ‘습득’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를 갖고 낳고 기르는 매 순간- 나는 왜 남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일들이 어려울까, 왜 이렇게 힘들까, 왜 이렇게 참지못하는 것들이 많을까, 심지어 자식과의 신체접촉까지도 어려워하며 스스로의 모성애를 의심하고 자책하는 시간을 보냈을 테다. 결국 아주 우연히 들은 그 방송으로 인해 스스로 이것은 일종의 질병이나 장애가 아닐까 그제서야 인지한다.
저자는 이후 본인의 ‘상태’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심리적인 과정까지 세심하게 글로 표현해냈다. 지금까지 특정 부분에서 너무나 힘들었던 삶, 남들은 전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문제들이 나에게만 힘들었던 이유가 내가 ‘이상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아스퍼거 증후군 때문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끼는 대목에서는 그가 그동안 받았을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느껴져 아득해졌다.

•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변호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어쩔 수 없음을 알고서,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참을성을 발휘할 수 없음을 알고서, 사람들이 나를 조금이라도 더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좀더 나은 인생 이야기, 내 산탄총 같은 삶을 마침내 하나의 의미로 묶어주는 일관되고 간결한 기승전결을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삶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쳇바퀴 돌듯 반복된다고 느끼는 그 상황을 나중에는 결국 이해하고 싶어진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동안 반복되며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그것을 억지로 감당하고 받아들이는 삶을 살다보면 그 원인에 차라리 이름이라도 붙여서 정리하고픈 마음이 든다고.

책의 마지막, 약 1년간의 걷기를 끝내고 의사에게 찾아간 저자는 결국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기뻐한다.’

• “참 재미있어요. ASD라는 진단을 받고 사람들이 늘 기뻐하거든요. 다른 진단은 다 나쁜 소식으로 여기면서.”
“모든 게 이해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남들에게도 설명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위안이 되니까요.“

약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는 홀로 이 모든 것들을 견뎠다. 이제는 더이상 휘청거리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봄을 맞이하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