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82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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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냄새'로 가득한 소설. 18세기 프랑스의 악취가 실제 코로 느껴지는 기분이다.

시작부터 강렬하다. 훗날 살인자가 될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의도치않게) 참수시킨 것을 시작으로 그는 곧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몸에서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인데, 그의 주변에서 맴도는 사람들은 자신의 체취를 그 조그만 아이가 모두 빨아들이는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함께 강한 혐오감을 느낀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에 대한 소재로 독자를 이렇게나 매료 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치 이것은 실제로도 충분히 일어날수도 있는 일이다-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사람은 일반적으로 눈, 코, 입, 귀, 손 등의 기관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접한다. 그런데 저자는 인간은 실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스스로의 결정으로 그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모두 착각일 뿐이며, 냄새로 심지어 인기척까지 숨길 수 있다고 실제 독자들을 믿게 만든다. 읽는 중 나 스스로도 의심하는 순간이 있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것들이 냄새에 속아 나도 모르게 판단하고 다른 기관들이 독립적으로 인지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은 깊이에의 강요, 좀머 씨 이야기에 이어 세번째다. 깊이에의 강요때도 느꼈지만 흡인력이 대단하다. 등장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탁월하게 묘사해 내는데, 읽다보면 어느새 공감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끝도없는 지질함과 비열함, 한마디로 구역질이 나는 내면의 모습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결국 그 혐오스러운 인간들은 모두 그르누이와 작별하고 바로 죽어버리는데, 그들에 대해 사전에 늘어놓은 구역질나는 모습들로 인해 그다지 동정심이 느껴지지 않는 점도 작가에게 설득 당해 버려서 그런 걸까.

약 15년간 우리집 책장에 꽃혀있던 책을 이제야 다 읽었다. 왜 그런지 매번 챕터 1부 5장? 정도까지만 읽고 덮었던 것 같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소설가 김영하는 읽을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책장에 꽃혀있던 사놓고 안 읽은 책을 시간이 지난 뒤 읽었을 때 명작이면 이렇게나 만족스러울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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