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 다르지만 똑같은, 31명의 여자 이야기 밝은미래 그림책 37
엘렌 델포르주 지음, 캉탱 그레방 그림, 권지현 옮김 / 밝은미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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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되려 미안한 낯빛으로
접시에 김치를 더 덜어 내고 계신다.
미안해, 엄마.


모처럼 부모님 댁에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이 모였다. 미리 연락 드리면 이것저것 준비하실까 봐 엄마 나이 칠순이 넘어서는 출발 전이나 가는 중에 연락을 하곤 했다. 평생을 딸로, 며느리로, 엄마로 살아온 내공을 계산하지 못한 오판. 자녀들이 이동하는 시간에도 엄마는 충분히 반찬 수를 늘릴 수 있는 능력자였다.

여느 때처럼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데 보기만 해도 맛깔스런 김치가 눈에 뛴다. 김치라면 또 우리 엄마지! 살짝 덜 익은 아삭한 식감의 열무물김치. 국물은 시원하다 못해 이미 충분한 입맛을 더 돋우기에 충분했다. 모처럼 식탁 위에 오른 고구마줄기 김치는 양념의 비주얼만 보더라도 균형 잡힌 비율. 맛은 장담하리라! 모두가 한목소리다. 엄마 김치는 반찬 가게 열면 줄을 설 거라고. 어떻게 배울 수 없겠냐고. 나중에 저 맛이 그리워지면 어쩌냐고.

바쁘셨단다. 자식들이 온다는데 반찬 할 시간이 없으셨단다. 평이 좋은 반찬 가게를 찾으셨단다. 김치가 입에 맞아 사 오셨단다.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겨우 외식하는 엄마. 농사지은 국산 고추를 사 오셔서 마른걸레로 닦고 고춧가루를 내 자식들에게 건네는 엄마. 간장, 된장, 고추장은 직접 만들어야 성에 차고, 손자(손녀)가 어디서 맛있게 먹은 음식이 있다면 뚝딱 만들어 내는 엄마였다. 특히나 김치에 일가견이 있는 엄마가 난생처음 김치 반찬을 사셨다니 이만으로도 놀랄 일인데 세상에나! 엄마의 손맛을 구별 못 한 자식들이라니.

아!.. 짧은 탄식 후에 젓가락이 바쁘게 입으로 향할 뿐이다. 다시 양념 비율을 확인하겠다며 눈이 바쁠 뿐이다. 엄마는 되레 미안한 낯빛으로 접시에 더 김치를 덜어 내고 계신다. 미안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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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는지 몰라. 누구의 여자가 되는 거."

인상 깊었던 여주인공의 대사.
사랑할 줄 모른다던 그녀는 더 어려운 일을 몰랐던 모양이다.

"누구의 엄마가 되는 거."

세상 어려운 일을 해내는 이들이 있다.
나와 당신과 그리고 우리의 엄마..

당신의 기억 속 엄마를 불러올 책. 당신의 엄마를 다시 보게 만들 책. 당신의 엄마를 이해하도록 도울 책. 그러니 우리 충분히 엄마를 사랑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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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살았다. ‘여자’로.
아이를 낳고는 제약이 생겼다. ‘엄마’니까.

가끔은 여자와 엄마 사이에서 불평이 일고 혼란스러웠다.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조금만 알아주었다면 우울했던 혼란은
조금 일찍 잠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사랑. 내 아이에 대한 사랑이었을 테다.

그림책 <엄마> 속엔 31명의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가 흐른다. 아니지. 다른 엄마가 아니라 같은 ‘엄마’의 이야기다.

시 같이 느껴지는 정서적인 글이 있는가 하면 일기 같은 독백의 글 혹은 누군가의 기록이 될 만한 서사적인 글도 만날 수 있다.
내가 경험한 (우리) 엄마, 내가 열심히 수행 중인 엄마 (역할), 또 누군가가 경험할 (미래의) 엄마 이야기가 읽는 이의 눈과 마음과 손을 붙잡으니,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가 없다.

세대를 불문하고 남녀노소 따져 묻지 않아도 모두의 감동이 되고 뭉클한 시간을 보장할 만한 책 여기. 빌려 읽고 나니 더 소장하고 싶어졌..

[그림책추천 엄마/ 다르지만 똑같은, 31명의 여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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