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곳을 떠날 때 할머니에게 선물할 작정인 책,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에 나중에 이렇게 써넣는다. 사람은 이야기에서 거짓말을, 기억 에서 허위를 깎아낼 수 있는 정직한 대패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나는 대팻밥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 P359
그리고 1991년 8월25일의 9.86초 동안 세계신기록을 세우는 일에 내 마법의 힘을 모조리바닥내버린 칼 루이스를, 그래서 할아버지를 위해 쓸 힘은 하나도 남겨놓지 않은 그를 과연 나는 용서할 수 있을까? 그날 저녁, 메그단 산에서는 누구도 한 어머니가 자기 아들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수 없었을 것이다. 네게는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할아버지가 있었지. 할아버지는 이제 돌아오시지 않을 거야. 하지만 우리에 대한 할아버지의사랑은 끝이 없고, 그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단다. 알렉산다르, 이제 넌 영원한 할아버지를 갖게 된 거야.할아버지랑 나는 이야기에 관해서 약속을 하나 했어요, 엄마. 그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는 모자와 지팡이도 없이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아주 쉬운 약속이에요.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절대멈추지 않겠다는 약속이요. - P39
마르크스주의 이념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나 자치적 사회주의와 티토의 외교정책, 또는 물고기를 가장 잘 손질하는 방법은 할아버지와 내가가장 좋아한 대화 주제였다. 아버지하고는 그런 대화를 나누기가 무척어렵다. 아버지는 그것도 나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말이지만 그런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데 있어서 자신의무능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온갖 방법을 궁리해내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유고슬라비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대신에 어느 이름모를 왕국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그 왕국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지칭하는 낱말들이 있고, 어떤 낱말로도 지칭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는곳이다. 그 왕국에서는 누군가 어느 이름 없는 존재에 대한 낱말을 발명해내면 그 벌로 어떤 섬에 보내지는데, 그 섬 역시 적당한 이름이 없어서 그냥 섬‘이라고 불린다.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능력은 유전되는데, 그 능력은 꼭 한 세대씩 건너뛰어 전해지는 게 문제다. - P101
네가 집을 나갈 필요는 없어. 네 탁자에 앉아 그저 듣기만 해.아니, 귀 기울일 필요도 없고, 그저 기다리기만 해. 아니, 기다리지도 말고, 오롯이 침묵을 지키며 홀로 있기만 해. 그러면 네가 그 베일을 벗길 수 있도록 세상이 네게 다가올 것이고, 세상은 달리 할 수 없기에, 경탄해 마지않으며, 네 앞에서변형되기 시작할 거다.프란츠 카프카, 죄, 고통, 희망, 진리의 길에 관한 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