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순수한 관계를 지향할수록 우정은 쉽게 좌초한다. 우정은 연애처럼 안전한 정박지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우정은 맹세의 말이나서약의 징표, 의례와 기념일, 증인과 보증인, 시작과 끝을 공식화하는서류들을 알지 못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만의 관계로 머문다(반면 결혼은 하나의 계약으로, 모든 계약이 그렇듯이 그 효력을 보증하는 제삼자를 포함한다). 우정을 지탱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억뿐이다. 그런의미에서 우리는 우정을 순수한 시간으로 환원할 수 있다. 이는 우정이그만큼 많은 결별의 계기들을 품고 있다는 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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