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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평점 :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우리에게도 거기 버금가는 단절을 불러온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만 놀랍다. 누구나 자신이 격렬히 슬퍼하리라는 사실, 한동안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이성적으로는 예상할 수 있다. 작가인 헬렌 맥도널드 또한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들은 뒤 자신이 “애도의 정상적인 광기”를 보내고 있다고 믿는다. “책에는 상황을 부인한 이후에 슬퍼하는 단계가 찾아온다고 나와 있었다. 분노, 혹은 죄책감. (……) 과정을 분류하고, 순서를 정하고, 납득이 되게 만들고 싶었다.”(36페이지) 그러나 그녀는 예상보다 더 오래 거꾸러지고 마침내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조차 잊는다. 짧게 사랑에 매달리고, 연인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두려움과 슬픔을 가늠 못해 허우적거리던 작가는 매 중에서도 가장 사납고 까다로운 참매를 길들이기로 결정한다. 나는 새매와 참매는커녕 송골매와 참매의 차이도 모르므로, 작가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 상상할 뿐이다. “솟구쳐 오르는 참매의 둘째 날개깃의 멋진 곡선은 참매가 새매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24페이지) “갈라진 부싯돌과 분필 같은 색깔, 등 위로 날렵하게 교차된 날개, 하늘을 향해 치켜든, 볏이 서 있는 검은 얼굴. 송골매는 전문가다운 호기심을 갖고 머리 위로 날아가는 스핏파이어 전투기를 지켜보고 있었다.”(50페이지)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과 지식을 지닌 참매 전문가였다. 그녀는 이미 여러 번 매를 날려보았고, 참매를 어떻게 훈련시켜야 하는지, 먹이는 얼마나 줘야 하는지도 안다. 그럼에도 작가는 참매를 데려오면서 흥분과 공포에 사로잡히고,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시정 가능한 사소한 일로 참매가 자신을 외면한다고 느끼며 절망한다. 비이성적인 감정의 고저가 반복되는 나날들이다. 참매를 바깥 세상에 적응시키기 위해 함께 산책하며 자신이 야생동물이 된 것처럼 인간에게 적의를 품기도 하고,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면 참매가 자신을 다시 봐주지 않을 거라는 비이성적인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참매가 하늘에서 한순간 내리꽂혔다 날아오르듯, 낙차가 큰 감정이 마구 오간다. 참매의 살육 본능과 까다로움은 또한 작가의 슬픔과는 전혀 별개로 존재하며 끊임없이 실제적인 문제를 인식시킨다. 메이블이라는 소박하고 다정한 이름과 달리 참매를 길들이는 과정은 이토록 어렵다. 말이 통하지 않는 대상이기에 메이블 길들이기가 더욱 지난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단순하고 인간의 감정과는 동떨어진 참매를 선택했기에 작가는 마침내 천천히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메이블 이야기>는 무엇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결국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는 점에서 아름답다. 작가는 아버지를 잃고 느끼는 외로움을 메이블을 통해 극복한다. 메이블과 친해지기 위해 그녀가 선택하고 의식한 또 다른 매개체는 작가 화이트와 그의 참매 고스다. 작가만큼이나 외롭고 정에 굶주린 화이트는 고스라는 참매를 데려오지만 결국 매를 길들이는 데 처절하게 실패한다. 고스를 믿지 못하고 먹이를 줬다 굶겼다를 반복해, 고스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날아가버린다. 화이트의 책 <참매>에는 그 실패의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매를 사랑하던 작가는 고스가 부당한 취급을 당한 데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화이트를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그리고 이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작가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싸움에 시달리고, 성정체성 탓에 괴로워한 화이트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민할 수 있게 된다. “나를 가장 속상하게 하는 것은, 고스가 그를 향해 걸어오기로 결심했을 때 화이트가 달아났다는 사실이다.”(205쪽) 물론 화이트는 실패했지만 작가는 많은 번민과 감정의 고저에도 불구하고 메이블을 훌륭하게 길들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작중 그 성공은 끊임없이 화이트의 먼저 기록된 발자취, 사랑을 믿지 못해 실패한 발자취와 함께 비교된다. 그리고 둘의 비교는 차이보다 오히려 다시 사랑을 얻고 사회로 편입되기 위한 화이트의, 그리고 헬렌 맥도날드의 눈물겨운 노력을 두드러져 보이게 만든다. 참매를 길들인다는 낯설고도 특이한 경험이 결국 이런 보편적 진리로 귀결된다는 데 <메이블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작가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메이블이 안타깝게도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고 쓴다. 상실은 새로 겪어도 몹시 깊고 강력하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슬픔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온 메이블을 길들이며 보낸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리라 느낀 덕이다. 온 마음을 쏟은, 그러나 결국은 나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생물을 돌보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내게도 위로를 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