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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미친 16인의 조선 선비들 - 조선 최고의 공부 달인들이 알려주는 학문의 비법
이수광 지음 / 해냄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수없이 많은 자료조사 품이 들어가지만 막상 책으로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은 겨우 겉핥기식이 될 수밖에 없는 책, 난 이런 책은 많이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전공을 하고 일에 필요한 책 위주로 읽기 시작하면서 이런 책을 읽은 지도 무척 오래되어서 더 그런 취향이 강화된 것 같다.
딱히 공부하는 태도에서 도움을 받으려고 이 책을 산 것은 아니다. 독서법, 학습법과 같은 부제에 끌릴 수도 있는 어린 시기에 한 번도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주변에 책이 부족해서 문제였고 성장 시기에 맞춰 책을 추천해줄 사람이 없어서 문제였던 것 뿐이다. 그냥 있는대로 내 나이와 맞지 않는 책이라도 닥치는대로 읽었고 지금에 와서는 가치가 없으면 빨리 덮어버린다는 것 말고는 어느정도 글자 중독인 면은 여전하다.
이 책은 순전히 2부의 조선 시대 여성 학자 편 때문에 샀는데 뒤로 갈수록 재미있다. 앞부분 성리학자들 편은 역시 지루했다. 아무리 그들이 좋은 학습 태도를 지녔었다해도 어쨌든 그들은 천재 철학자들이라 그 공부 태도마저 본받을 엄두가 안 난다. 그들의 고민이 생생하게 드러난 실학자들 편이 더 재미있고 옮겨진 자료 내용도 풍부하다. 제일 기억에 남는 이는 아무래도 가난한 처지 설명이 많았던 이덕무였고, 옮겨진 부분글을 보고 홍대용의 의산문답을 온전히 읽고 싶어졌다. 의산문답은 어렵고 깊이 있는 주제를 정말 재치있게 쓴 글인 것 같았다.
책제목대로 딱 주제를 제한했고 서술이 헐거운 편이라 역사적 사건들 모르면 읽기가 어려울 거 같다. 이 책에선 유학자들의 논쟁이나 사화 등 사건이 소개가 되지만 간략하다. 조의제문, 회퇴변척, 노소론 분당의 계기가 된 윤증과 송시열의 일 등, 사화와 당쟁까지 기본적인 역사적 사건은 알고 있어야 무슨 소리인지 알고 읽을 것 같은데, 그렇게 보면 어린 친구한테 추천하기도 그렇고 좀 목표 독자층이 애매한 책이다.
이런 책을 읽어도 문제는, 어쨌든 독서 습관은 어릴 때 잡지 않으면 고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몸을 깨끗이 하고 의복을 정제하고 독서를 하는 그들의 모습이 서술되어 있어도 나는 이 책을 침대에서 딩굴어가면서 읽었다. 10살 때 삼국지도 그렇게 읽었고 대학 때 미적분학도 그렇게 읽었는데 이제 와서 고쳐질 리가 있겠나. 이런 책 읽고 자신의 습관이 바뀔 것이라는 그런 기대는 자신에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저 마지막에 저자가 붙여둔 대로 공부에는 열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되새기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 열정을 되살리는데는 참고문 혹은 다른 책의 길라잡이 역할 정도에 그치는 이 책보다는 차라리 이 책의 감상문(http://blog.aladin.co.kr/772334164/5608927)을 올리신 이 분과 같이 주변의 어른들에서 모범을 찾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일면 무시무시해보일 수도 있는 남명 조식 같은 유학자의 예에서보다 평생 계속 공부하는 이웃집 어른이나 부모님에게 더 감화받는 게 우리 보통의 사람들이다.
덧 잡설: 이언진처럼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하늘에서 내린 천재는 오만방자해도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세상엔 그게 아닌데도 오만방자한 인간들이 참 많아서 문제이지. 이언진은 진짜 천재답게 27세에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