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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평점 :
그리스 신화에는 티토노스라는 왕이 있다. 자신의 아내인 에오스 여신이 제우스에게 부탁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은 이 인물인데, 정작 영원한 생명을 이야기하고 영원한 젊음은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죽지는 않으면서 늙어는 가는 인물이다.
이 외에도 역사적으로 진시황은 불로초, 즉 늙지않음으로서 죽음에서 벗어나기를 바랬는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영원한 삶이라는 것은 영원한 젊음이 따라와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타깝게도 <죽음의 정지>에서 보여주는 죽음은, 진시황이 원했던 불로의 개념이 아닌 티토노스의 불멸을 뜻한다, 죽음만이 정지하였을 뿐 늙어가고, 병들고, 심지어는 심하게 다쳐서 손 쓸 방법이 없음에도 죽지만 못하는 경우인 것이다. 소설은 이러한 일이 한 국가에만 발생하였을 때 어떠한 일이 국가적, 개인적, 조직적 차원에서 벗어나는지 보여주고 있다.
또 이 책은 죽음의 정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의 방향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도 단순히 죽음이 끝났다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향을 보여줌으로서 죽음과 삶에 대해서 신선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라구미의 전작들을 읽어보고 이 책을 읽어본 결과, 슬슬 그의 문법에 질리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사람들의 대화는 구별되어 있지 않고, 쭉 그려놓는 듯한 일상의 에피소드는, 처음 사라구미의 책을 접했을 때의 신선함은 어느정도 퇴색되어 버렸다는 느낌이다.
그 외에도 정부는 그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권력만 놓치지 않으려 하는지 보여주는 등, 권력은 어떻다는 등의, 소재는 신선하지만 내용 자체는 <눈먼 자들의 도시> 시리즈를 하나로 섞어 놓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마지막의, 너무 신선하다 못해서 충격을 주기까지 하는 주제변환은, 한번 적응 못하면 그냥 중간에 책을 내려놓을 지..는 않겠지. 역시 재미는 있으니 말이다.
한가지 추가로 이야기하자면, 여기서 굳이 죽음과 삶의 철학적 사고방식을 느끼지는 말고 죽음이 정지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마음으로 읽어보는 것이 중요할 듯. 옮긴이도 그렇게 말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