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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는 요일 (반양장) ㅣ 창비청소년문학 121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이거 이거, 지금 딱 봐도 보통 드라마가 아닌디.” p.427
네. 악어 씨. 악어 씨 말대로 이 책은 진짜 보통 드라마가 아닌 것 같습니다.
진짜, 이 깊디깊은 사랑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애정도 증오도 모두 사랑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강지나와 현울림’은 증오와 복수로, ‘현울림과 강이룬’은 애정과 그리움으로, 그리고 ‘현울림과 김달, 젤리’는 우정과 헌신으로 각자 서로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 몸을 일곱 영혼(뇌신경?)이 공유하는 신체 공유의 시대에 이뤄진 보디 메이트(신체 공유자) 살인사건인데, 이 희소성 넘치는 SF 적 포인트 세계관에서 (‘사람의 영혼을 공유한다고? 지구 자원을 아껴야 해서? 근데 그 뇌 데이터를 모으고 공유하는 시스템도 에너지가 필요할 텐데. 그 에너지 생성과 소비에 탄소가 더 많이 발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혼란할 때) 아날로그적 포인트인 감정을 기반으로 한 사건이 일어나자 내 뇌가 급속도로 집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죽은 이후에도 영혼(뇌신경?)은 데이터 보관소에 저장되어 있어서 자신을 죽인 살인자를 쫓을 수 있다는 점이 더 흥미를 돋우었는데, 이 과정에서 만나는 신체 브로커와 무국적자들 그리고 회상되는 과거 이야기들로 인해 쉽게 페이지를 닫을 수 없었다. (책 읽으러 간) 카페가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야 간신히 몇 장 안 남은 책을 덮고, 다 식은 커피를 목구멍으로 흘려 넣고, 파워워킹으로 집에 도착해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다시 책장을 열었지.
진짜 어떻게 이런 소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책 내용을 되뇔수록 작가가 너무 대단하게 느껴진다. 본인은 전형적인 트리플 T형 인간이라 이런 놀라운 SF 요소는 떠올릴 생각도 못 하는데, 여기에 지독한 사랑의 이야기를 몇 갈래로 베리에이션 해가며 풀어놓았다는 것이 더 놀랍다.
진짜 악어 씨. 당신의 말대로 이건 보통 드라마가 아니에요.
전작인 ‘스노볼’에서도 복제되어 태어난 존재들의 각자의 정체성과 존엄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었던 작가는 이번 작품 ‘네가 있는 요일’에서도 신체(외면)와 정신(내면)의 분리와 결합을 통해 인간성 및 영원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다. 신체 공유 7부제에 등록한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과 이유로 공유하는 몸이 바뀌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다른 공유자들이 쓰도록 내주기도 하는데 등장인물들은 결국 바뀐 서로를 알아본다. 또한 스스로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상공간인 ‘낙원’에서는 모두가 영원한 사랑을 찾아 헤매면서도 영원한 사랑에 정착하는 존재는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끝없는 사랑’을 약속하는 존재들은 있다.
“몸을 빼앗기고 기억을 잃어도 너와 나는 틀림없이 서로를 알아보고 어김없이 서로를 사랑하게 될 거야.” p.430
아, 이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어이할까.
매일 영혼이 바뀌어 7일에 한 번, 정해진 요일밖에는 오프라인 활동을 할 수 없는 7부제 인간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에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 오래도록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 또한 모든 게 생각하는 대로 이뤄지는 정신세계인 ‘낙원’에서도 자신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꾸미고 살아가는 한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모든 외적인 부분들을 내려놓고 마음으로, 정신으로 교감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외양이 어떻건, 살아가는 환경과 조건이 어떻건, 결국 서로를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버린다.
이 책의 중반부까지는 보디 메이트 살해자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독자의 눈을 사로잡고, 후반부부터는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사랑의 이야기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렇게 매일, 밤에 잠들 때마다 자꾸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과 여운에 이 책이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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