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부터의 도피 -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일련의 사회현상을 심층 분석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5
에리히 프롬 지음, 원창화 옮김 / 홍신문화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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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고

 

 

옛날부터 대학교는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고 지식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있어서 가장 발전된 교육기관이었다. 그렇지만 요즘의 대학은 인문학은 사라지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취업사관학교로 변모해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중앙대의 철학과 폐지라던지, 인문학부에대한 대학의 정원축소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한 면에서 사고와표현 같은 인문학계열 수업은 요즘세태에 대응하여 꼭필요한 수업이라 할 수 있다. 그 수업에서 내준 과제, 인문학적인 사고를 키워줄 수 있는 책이 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생각된다.

 

이 책의 주제는 자유. 자유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자유는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기술하며, 또 역사속에서의 자유부터 민주주의 같은 사회제도에 깃들어있는 자유까지, 심오한 주제로서 자유를 사용하고 있다. 먼저 이책을 읽는 동안 굉장히 어려웠다. 사실 이책을 100프로 이해했다고는 절대 말 할 수 없고 한 30~40프로 정도를 이해 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철학적 사유에 대한 개념들의 각주와 어디서 보긴 봤지만 뜻을 이해할 수는 없는. 그러한 단어들의 나열로인해 읽는 내내 숨을 끝까지 이어가긴 힘들었다. 어쨌든 중요한 과제라 어떻게든 참으며 꾸역꾸역 읽어 나갔다.

 

이 책에서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자유에 관한 정의인데, 과연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다시 비자유적인 사람들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려 할까? 같은 자유의 양면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교황이 황제 위에있던 시대를 지나서 칼맑스의 도래, 그리고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슬슬 자유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유에 대한 갈망의 시작은 민주주의의 기틀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에 대한 갈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전체주의 파시즘등의 한 공동체를 위한 부속품이 되기를 기꺼이 허락했다. 내생각으로는 이러한 현상은 절대 인간이 미개하거나 아니면 지적생명체로서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어서라기 보다는 자유에 대해 따라나오는 것은 그에 따른 책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보다 상당히 자유로워진 현재, 인간은 자유를 취할 수 있었지만,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쟁체제에 따라 그 체제에서 뒤쳐진 사람은 다시 국가의 울타리에 귀속되기를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자유란 인간이 끊임없이 갈구하는 것이면서도 또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책제목에서 주목해보자. 자유로부터의 도피. 인간의 자유에대한 열망과 갈망 또 그로 인해 긴역사 동안 이어져온 자유를 찾기 위한 노력등, 강력한 자유의지에 대한 서술을 하였다. 하지만 인간은 오히려 그 자유로 부터의 도피를 원하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동물로서 혼자스스로 세상을 살아가기란 불가능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주변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이책에서는 그러한 현상에 대해 결정적인 답을 제공하진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안정된 삶과 정신적인 만족감을 때로는 자유보다 더 갈망하기도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책은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우리도 현재 과거보다는 많은 부분이 보장되고 있는 자유속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산소가 우리주변에 넘쳐나 그 소중함을 알 수 없듯이, 자유또한 정신적인 산유물로서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 쉽게 간과할 수 있는 개념중 하나인 것 같다. 이번 책을 계기로 어쩌면 그냥 지나쳐 생각하기 힘들었던 자유에 대한 이해를 완벽히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읽게 지도해주신 김주언 교수님에게 많은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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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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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어렸을 적부터 많이보고 자랐을 법한 작품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정작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로미와 줄리엣? 정도 얘기 할 수 있겠다. 실제로 나도 그 작품 하나만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많은 영화 작품이나 드라마에 모티브가 되었으며, 노래제목으로도 차용이 되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많이 전파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후 1학기 경에 서양음악과 문학의 이해라는 강의를 접하면서,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에 대해 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셰익스 피어의 4대비극에는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라는 작품이 있다. 나는그중 에서 이번 사고와 표현 수업시간의 과제로 인해 오셀로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일단, 이책의 구성은 일반적이 책들과는 조금 달랐다. 일반적인 책의 나열식 기술의 구성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대사가 하나씩 기록되어있는, 어찌보면 뮤지컬 스크립트 같은 구성이었다. 나같은 경우 독서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뮤지컬의 경우 자주 즐겨보는 편이기 때문에, 독서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쉽게쉽게 눈이 이야기를 따라 움직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작품은 사랑의 이야기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신뢰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다. 여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하는 행동은 인간세상의 신뢰에 대한 문제를 소규모로 압축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흑인으로서의 오셀로에 대한 브라반시오의 편견에 의한 불신과, 10년동안 오셀로를 모셨지만, 다른의미로는 그 스스로는 배신을 당했다고 느끼는 순간이나, 작은 계략에 빠져 자신의 아내까지 의심을 하게 되는 오셀로나, 그리고 심지어는 딸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는 아버지 브란 반시오의 불신이까지.. 어찌보면 모두 현대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오셀로는 나중에 데스데모나에게 폭력까지 행사하게 되고, 그녀를 죽이고 자신이 불신의 감정에 의해 이성적인 행동을 못했다는 죄책감에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된다. 그리고 이야고도 모든 비극의 시작으로서 처형을 당하게 된다. 결국에 작품 <오셀로>의 모든 비극은 서로의 신뢰문제 사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셰익스 피어의 4대비극에서 불신을 주제로 한 비극이 작품 전체를 이끌어 가는 것을 보면 이렇듯 신뢰의 문제는 인간사이의 유대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거론 된다.

 

내 주변에서도 이런 신뢰의 문제는 쉽게 관찰 할 수 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서로를 바라본지 어언 30년 가까이 되가시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에 관한 불신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는 것을 나는 지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주변에 친구들이나 또는 여자친구를 대할 때, 왠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인 적이 있엇는데, 이 작품을 읽고 생각 해보니, 이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그런 불신을 가진 것 같다. 이사람과 나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감, 그것이 나를 친구,또는 여자친구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한 것 같다. 이 작품에서도 작품해설을 보면, 왜 오셀로가 이야고의 유혹에 넘어가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게 되는지 나와있다. 그것은 바로 데스데모나 그 여자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여자가 자신에게 보여준 동정의 감정에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또한 데스데모나도 오셀로 그자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가 겪은 위험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 사랑의 시작은 비극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둘의 만남은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얇은 감정의 종이 위에서 시작했고, 오셀로는 질투와 사랑이라는 단순한 감정에 의해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데스데모나에대한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질투와 사랑이라는 감정은 둘의 사랑을 잘라버리기에 충분히 날카로웠다. 결국 오셀로는 질투와 사랑 이분법적인 감정을 뛰어넘지 못하고 데스데모나를 죽이기에 이른다.

여기서 시사점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대할 때 단순히 그사람에 대한 감정에 휘둘려선 안된다. 본질을 볼 수 있어야한다. 사랑을 할때나, 친구를 만날때조차도 그 사람의 본질을 볼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본질을 볼 수 있으면, 아무리 상황이 믿을 수 없게 돌아가도, 알맹이를 볼 수 있게 만든다. ‘아 저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머리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본질을 볼 수있게 하는 것은 오랜 시간동안의 관계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오셀로에서는 이런 본질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사이에서는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비극이 일어났다고 본다. 아마 오셀로와 데스데모나가 좀더 서로의 본질을 사랑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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